권영하(Christian Kwon) 작가는 꿈에서 본듯한 장소, 살며 공부한 여러 도시 공간들이 섞인 기억 속 흐릿한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가져온다. 꿈과 현실은 종종 헷갈린다. ‘거리에 서서 내가 아는 이와 대화를 하며 버스를 기다리는데…’를 인식하는 순간 꿈이라는 자각은 글이든 그림이든 표현 본능을 자극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기억과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형상을 찾는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럽기조차 하다. 종이나 캔버스에 이를 풀어내 형체를 만들고 색을 입힌다. 둥그런 벽체가 인체와 같은 느낌으로 와 닿기도 하며, 손, 발 등 신체 일부를 화면의 프레임 안 특정 위치에 애써 그려 넣는다.

작품 <Disguised>, 복도 공간에 둥그런 벽체를 가운데 두고 의자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던 이가 커튼 뒤로 숨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며 찾아와서 일 수도 있다. 화폭 속 공간은 탈출이 불가능한, 벗어날 수 없는 곳임을 암시한다.

Disguised, 61x91.4cm, acrylic on canvas, 2022


권영하가 공간을 탐미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금붕어’이다. 중고 통합 과정의 서울 용산국제학교 졸업을 불과 수개월 앞두고 미술대학으로 진로를 정하였다. 학원에서 한번 들은 입시 개요를 참고삼아 만든 미국 뉴욕의 대학 입학 원서 포트폴리오도 금붕어 작업이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과 싱가포르에서 다섯 군데 학교를 옮겨 다녔다. 중화권 도시는 대형 어종인 아시아아로와나, 금붕어 등을 관상용으로 사육한다. 홍콩에는 비닐 봉지에 금붕어를 넣어 파는 거리도 있다. 금붕어는 대형 크기의 수족관이나 유리 항아리에서 사람과 함께 산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생명체 금붕어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 너머를 지향하는 뻗어 나가는 기운이었다. 작품 <In the End>는 화면 크기에 비해 거대한, 비늘 없는 금붕어가 창으로 들어오고 있다. 침대에는 사람이 누워있는듯 손이 뻗어 있다.

 In the End, 65.1x50cm, acrylic on canvas, 2021.
 In the End, 65.1x50cm, acrylic on canvas, 2021.


작품 제목에서 연상되는 경구가 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1929~1968)은 “결국(In the End), 기억에 남는 것은 원수의 저주 담은 말이 아닌 ‘친구의 침묵(the silence of our friends)’이다”고 말했다.

작가는 ‘침묵’이라는 언어가 우리 삶에 방문하여 평화를 이루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이전 작품들은 침대나 의자가 놓인 공간에 벌레가 등장하곤 한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로서 작가의 시선은 늘 화면 바깥에 위치하며 공간을 해석하는 일관된 태도를 지닌다. 화면 속 드러나는 신체 일부는 화자의 도플갱어, 분신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공간의 다른 가구와는 다른 주목할 오브제의 역할이 강하다.

1950년대 근대건축의 새로운 방향이 모색될 즈음 루이스 칸(Louis I Kahn·1901~1974)의 언어는 날것인 감정과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각광받았다.

사람이 느끼는 감각은 오로지 침묵과 빛(Silence and Light)만이 흐르는 내·외부가 구분되지 않은 볼트(Vault·둥근 천장) 구조에서 극대화된다.

 Within, 76.2x122cm, acrylic on canvas, 2023


볼트는 전통적으로 독립된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이다. 볼트는 외부에서 유입된 자연광이 내부에 머물게 하고,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When will it be? II, 25.5x34.5cm, colored pencil on paper, 2024


작품 <When will it be? II>는 볼트형 천장 구조를 가진 공간의 싱크대(수납대) 아래 숨어든 듯 무릎 구부린 사람 하체가 보인다. 프레임을 달리하지만 <When will it be?>는 실내가 어둡다. 두 작품은 창 밖의 구름 모양이 사실상 같아 실내의 현실과 바깥은 같은 시간대 세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배경처럼 보이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눈에 보이는 공간이 부유하는 듯한 장치이며, 그 자체로 화면 속 공간 주인공이 된다.

알지 못할 공간에 신발 한 켤레가 남아있다. 누군가 어디로 떠났다는 흔적이다. 고속철도 철로 위를 지나는듯한 하늘과 구름 배경의 연속된 철제 프레임은 그림 속 주인공이 다른 시간대의 세상으로 넘어갔음을 암시한다.

그 세상은 종교적으로는, 구현되지 않은 곧 도달할 미래임을 암시한다.

Desert, 71.1x56cm, acrylic on canvas, 2022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야서 43:19>

Beneath, 50.8x40.6cm, acrylic on canvas, 2022


사람이 테이블 아래 기이한 나무들이 둘러싼 연못 아래로 테이블보에 휘감긴 채 늘어져 가라앉고 있다. 꿈 속, 무의식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Remnants, 60.96x81.3cm, mixed media, 2020
 Remnants, 60.96x81.3cm, mixed media, 2020


꿈의 종착지에서 만나게 될, 연못과 수면 위 빙빙 도는 듯한 물고기는 창을 넘어 들어오고 또 다른 세상으로 수직강하 한다. 마치 무장 군인들이 레펠 타고 건물 벽면 창으로 침투하듯 한다.

권영하 작품 세계에는 쫓는 자가 있고 쫓기는 자가 있다. 역으로 시간이 흐르기도 하며, 작품마다 설정된 공간과 공간은 서로 맞닿아 있고,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기에  쫓기는 자는 숨고, 쫓는 자는 사라지기도 한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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