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9시46분-환경시계>에서 ‘9시 46분’은 2020년 기준 지구 생태 위기 시각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간이 2시간 14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작가 김정아(54)는 경남 거제도 해변에 상륙한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 인간이 만든 날 것 그대로의 플라스틱류를 오브제 삼아 모든 게 사라지는 ‘시간의 종말’을 화면에 펼쳐 놓았다.
작가가 해변에 상륙한 색 바랜 플라스틱류 해양쓰레기에 천착하게 된건, 강한 햇볕에 바래고 낡아진 색들은 웬지 익숙해서이다. 서울에서의 대학과 대학원 시절, 사물의 의미와 감각의 영역 사이에서 골라 쓴 그 색들이었다.
김정아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모퉁이, 구석진 자리에 관심을 가졌다. 미국 철학자 케이시(Edward S. Casey·1939~ )의 관점에서 장소는 몸을 중심으로 지각되는 영역이다.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장소는 몸이 인지하는 ‘경계’의 영역이면서 공간이나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다.
25년전 당도한 거제도는 생경하였다. 남편의 5년간의 방산업체 의무 근무 기한이 끝나고 정착하기로 결정하면서 거제도가 온전히 삶의 터전이 되었다. 정을 붙일 수 없었던 아포리아(aporia·막다른 곳에 다다름)에서 맞부닥친 파레르곤(parergon·장식)이 본질에 귀속한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워내면서 체감하였다. ‘파레르곤’은 ‘에르곤(본질) 옆에 있는(par) 것’이다. 파레르곤은 에르곤에 속하면서 에르곤의 ‘경계’를 이룬다. 원과 같은 어떤 도형의 경계가 원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과 매일 바닷가에 나가 놀았다. 해변의 물은 얕았고 백사장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다 건너 어디선가 떠밀려온 쓰레기더미들이 쌓였다. 어느 해부터 해수욕철 해변가에 해파리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라스틱류는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녔을까. 그들이 떠돌아 다닌 시간과 자신의 지나간 시간이 겹쳐졌다.
‘경계’에 살며 몸으로 느낀 해양 생태계 문제에 작가가 본격 눈을 뜬 계기는 2011년 바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생물 피해 세미나에 참석하면서이다.
지난해 10월, 작가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OSEAN>은 해양 플라스틱 오염과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연관성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플라스틱이 처음 생산되기 시작한 1950년대의 생산량은 150만 톤이었는데, 2000년에는 연간 2억3,400만 톤으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2019년에 연간 4억6,000만 톤이 되었고, 2060년에는 12억3,000만 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플라스틱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정한 지구 3대 위기(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오염)의 중심에 있다. 생산, 가공, 폐기 등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며, 생태계를 교란하고 종을 위협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발견되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한다. 세 가지 위기가 결합되면 지구는 예측 불가능한 곳이 된다.
2019년 4억6,000만톤중 폐기물은 3억 53만 톤으로 추정된다. 폐기물 중 대부분(72%)은 매립하거나 환경에 방출된다.
보고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량을 줄이는 데 둔다. 석유 화합물로 만든 플라스틱의 생산자책임확대제도(EPR, Expanded Producers Responsibility)를 강조한다.
<오션>은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게 플라스틱 오염 완화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핵심임을 주지시킨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는 부산에서 열린 ‘INC(정부간협상위원회·Intergovernment Negotiation Committee)-5’ 주최국으로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에 유엔환경계획은 금년 상반기 내 ‘INC-5' 2차 회의를 개최해 협약을 성안할 계획이다.
김정아는 일상에서도 구석진 장면에 눈길이 간다. 숱한 만남과 모임들, 식사 자리와 파티, 테이블에 잘 차려진 음식 사진들은 흔하지만 취하고 흐트러진 사람들의 모습은 잘 없다. 어느 날 불현듯 만찬의 후식으로 나온 과일이 사라지고 꼬다리만 남은 빈 접시가 애잔하고 예뻐 보였다. 사람들끼리 부대낌과 대화의 열정이 사라진 빈 시간과 공간에 들어온 사라져 갈 사물이며 흔적들이었다.
작가의 드러나고 숨은 생동감 가득한 화면 구성의 대상들을 보면 생경하다. 블랙홀과도 같은 바다를 거쳐온 인간이 생산해낸 익숙한 사물들을 매개로, 다가올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작품 ‘픽처레스크’는 아름다운 노을 지는 수변에 쓰레기가 캔버스의 프레임 밖으로 흘러 넘친다. 필자는 이 작품에 대해, ‘파멸을 말하는 신의 계시(啓示·divine revelation)로부터 구원을 호소하는 한 인간인 작가의 원시적 영성(靈性)이 부딪치는 기이한 풍경’이라고 썼다.
그림에서 프레임은 ‘파레르곤’이다. 김정아 작품에서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사물 덩어리 오브제는 에르곤이기도 하다. 파레르곤은 에르곤의 옆에 함께 있는 것이지,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도시에 사는 인간으로 향하는 ‘에코사이드(생태 살해·ecocide)’의 직접적인 도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팔뚝만한 잉어’가 노니는 대도시 하천은 칸트가 말한 파레르가(parerga)-파레르곤의 복수형-이다.
예술가는 그저 자신과 함께 존재하는 것들의 단편을 제시하는데도 강렬한 메시지를 발산한다.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1903~1969)는, "오늘날 예술 작품의 해석은 작품이 완성된 후에 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의 성립 자체에 참여한다"고 했다. 김정아는 육지와 바다가 걸쳐진 ‘경계’ 거제도에서 온 몸으로 예술을 해 오고 있었다. 모두가 살기 위한 예술을.
김정아는 ‘예술로 바다지키기’ 주제로 대학, 단체, 바다를 생업수단으로 삼는 동남아의 유관 공무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지속해 왔다.
해변에서 놀며 쓰레기를 줍던 아이들은 성장해서 바닷가를 떠났다. 20여년전 해양 쓰레기는 해변에 구릉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 지금은 그 때만큼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몇 배로 증가했다. 15년여 전만 해도 해양쓰레기는 그것이 당도한 바닷가 주민들의 삶을 불편하게 하였으나 지금은 지구적인 문제가 되었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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