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지층이 선호하던 인물에서 극우 음모론자로

정권과의 대립 속에 음모론에 빠지고 가짜뉴스에 젖어

(사진합성·일러스트=연합뉴스 / 윤혜리)
(사진합성·일러스트=연합뉴스 / 윤혜리)


과거 검찰에 ‘대윤(윤석열)’, ‘소윤(윤대진)’이라는 말이 있었다. 두 사람의 절친함을 나타낸다. 윤대진은 학생운동 출신이며, 그의 매형은 한 운동권 그룹의 이데올로그였고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의장도 지냈다. 윤대진의 정치 이념이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지만, 윤석열이 극우 음모론자가 된 것은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이후의 일일 것이다.   

2019년 7월 12일 CBS-리얼미터가 실시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찬반’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86.4%가 찬성을,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82.1%가 반대를 표했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조국 수사’였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윤석열의 미움은 사태 초기에는 점진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여러 각도에서 나온 증언을 종합하면 그때만 해도 윤석열의 입장은 “조국만 도려내겠다” 정도였다. 하지만 뒤에 검찰 수사는 청와대의 유재수 전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2020년 초 추미애 신임 법무부장관은 대검찰청 인사들을 대거 정리했다. ‘윤석열 라인 숙청’처럼 여겨졌지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의 존재로 확인되듯 윤석열의 의중이 완전히 무시된 인사는 아니었다. 이 직후 추미애는 20년만에 대검찰청을 방문한 법무부장관으로서, 그럭저럭 괜찮은 분위기에서 윤석열과 차담을 가졌다. 윤석열 검찰은 총선 전까지 정권 관련 수사와 공판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투표일이 임박한 4월 초, 검찰에서 흘러나온 자료가 제1야당 관계자에게 흘러 들어가는 ‘고발 사주 사건’이 일어난다. 문재인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제기한 검언 유착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이 윤석열에게 새로운 긴장을 주었을 국면이다. 민주당 정권을 향한 윤석열의 증오는 떨어지다가도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과정을 거듭했을 가능성이 크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윤석열은 민주당 의원들과 일전을 벌였다. 조국 수사 중이던 2019년도 국감 때와도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급기야 총선 직후 ‘대통령의 메신저’가 자신에게 “검찰총장직을 계속 수행하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고 털어놓는다. ‘끊든지 맺든지 끝장을 보자’는 심산이었을까?

그 전에 이미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격화되어 있었다. 힘을 잃은 윤석열이 문틈에 손을 찧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필자도 언론계에 있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복수의 루트로 가장 많이 들은 후문은 “윤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본다더라.” 요즘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과거 한 팟캐스트를 진행했고 최근에도 X(옛 트위터)에서 전투를 치르는 한 논객이 있다. 조국 사태가 터지기 직전, 조국에 대해 냉소적인 방송을 하며 ‘곧 큰일이 터질 것’이라 예고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만 해도 국민의힘 성향이 아니었다. 자신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의 충신”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이 논객은 점점 민주당 반대쪽으로만 돌더니 어느새 ‘국민의힘보다 더 국민의힘 같은’ 성향이 되었다. 분노가 켜켜이 쌓여 그랬을 수도 있고 강경 보수로 가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원자력 정책이 전공이라는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특히 헐뜯었다. 문 정부 시기에 원전 용량은 오히려 늘어났고 원전 비중도 그리 줄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계엄 이후에도 친윤으로 남아 별의별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민주당 정권의 일부만 증오했지만, 그 뒤에는 그 모든 정책과 행위에 음모가 있다고 믿게 되었고, 끝내 그 뒷배경까지 지어내고 말았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음모론은 더 고조되었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가정보원의 지적을 수용해 시스템 개선을 했는데도 그는 정반대로 알고 있다. 국회에서 삭감되지 않은 원전 예산을 두고도 삭감되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부정선거론에 손을 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의 초기 지지층에는 소위 ‘수개피언’이 들끓었다. 그런데 이재명이 부정선거 이야기를 한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치고 빠지며 이용하는 것을 비난하려면 아예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은 그러나 ‘민주당 놈들이 가짜뉴스 퍼뜨린다’며 스스로 가짜뉴스 끝판왕이 되었다. 적을 증오하다 극악무도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항복’이다. 

사실과 순리로 승부할 때, 상대가 무엇을 하든 나는 반칙하지 않을 때, 고독하고 괴로워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지킬 때, 인생은 가치 있게 빛난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영화 <도가니>)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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