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가이아(Gaia)의 게르니카- 육근병' 전시, 교토 ‘KIKA 컨템포러리 아트 스페이스’에서 2월 16일까지

지난 12월 10일 육근병(Yook keun byung·67) 작가는 SNS에 영문 글을 올렸다. “저는 육근병입니다. 저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가슴에 품고 교토로 향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려는 일이 궁극적으로 한국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곧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작가는 곧 전시장에서 만날 일본인들이 한국의 대통령과 측근 군인들이 일으킨 내란에 대해 무엇이라고 설명할지를 고민한 것이다.

13일 전시 준비중인 작가와 연락이 닿았다. “일본인들은 윤석열과 김건희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한국인의 저항의식과 일본인의 자국 정부에 대한 무관심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자세에 놀라운 반응입니다.”

출국 전 남긴 SNS글에 대해 물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거운 마음으로 교토에 오면서 나라가 잘되길 기원하였습니다.”

지난 11월 27일,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다. 작가 만나러 작업실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이 작가및 작품론을 구성하는 필자에게도 나름의 쳇바퀴 돌 듯 하는 생활이 있다. 수년째 겨울의 초입이면 중앙경의선을 타고 설국(雪國)의 한 가운데를 관통한다. 아신역 앞으로 ‘옥천택시’를 불러 용천리 육선생님 댁으로 가자하였다. 작가는 작업실에 이르는 고바위 길 눈을 치워놓았음을 미리 기별하였다. 차창 밖 눈발은 계속 휘날렸다.

올겨울 첫 눈이 대설(大雪)이 되었다. 시인 최승호의 표현처럼 백색의 산들은 해일처럼 굽이쳤고 그 해일을 넘어오는 듯한 먼 산의 몰려오는 듯한 범선(帆船)군단의 구리피막 돛대는 눈부셨다. 작가 스튜디오 뒤 소나무 숲의 나무 가지들은 눈더미의 무게로 부러질 듯하였다.

작품 설명하는 육근병 작가 / 제공 = 육근병
작품 설명하는 육근병 작가 / 제공 = 육근병


육근병은 백남준의 ‘TV 붓다’에서 영감받은 평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관불수행’을 언급했다. ‘관불(觀佛)’은 부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내 앞에 부처가 나타났다 생각하고 영상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면, 처음에는 영상이 다음에는 실제 부처가 나타나는 수행법이다. 작가는 관불은 해탈(解脫)과 다르다고 한다. 해탈은 어떤 구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3월 양평에 춘설(春雪)이 내린 날, 막 완성된 작품 <메신저의 초상·Portrait of a messenger>을 일견하였다. 육근병은 아티스트 백남준을 학자로 본다. 한국 전통의 위대한 학자(대제학)의 옷과 신들린 무당의 모자를 씌웠다. 작품 왼쪽에 나열된 글자들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퍼포먼스들을 기록하여 놓았다. 오른쪽 문장 백남준이 쓴 “문화 혁명은 예술 혁명을 전제로 한다” 글을 프린팅 하였다.

백남준은 굿판의 무당 갓을 쓴 모습으로 영락없는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는 매개자, 영매(靈媒)로 보였다. 육근병은 가톨릭의 성화 제작 방식을 따랐다고 했다.

메신저의 초상 2024
메신저의 초상 2024
‘칸의 귀환’ 드로잉- 페인팅전 단계 2023
‘칸의 귀환’ 드로잉- 페인팅전 단계 2023


1963년 백남준은 바이올린을 끌고 '걸음을 위한 선'을 타이틀로 선보였던 퍼포먼스, 동료 연주자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1933~1991)과 1976년에 발표한 TV첼로 퍼포먼스를 디졸브(Dissolve)한 오마주한 작품이다.

육근병에게 일본은 특별하다. 백남준(1932~2006)을 1991년 11월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1992년 카셀 도큐멘타 본전시에 한국인으로는 백남준 다음으로 초대가 확정된 직후였다. 백남준이 육근병에게 전화를 걸어 도쿄행을 요청하였다. 백남준은 처음 만나는 육근병이 자신을 잘 알아보도록 약속 장소 바깥에 나와 있었다. 이 날 도쿄에 첫눈이 내렸다. 백남준은 1989년 육근병이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언론은 육근병을 ‘제2의 (소리와 영상을 뒤섞는 미디어아트 작가)백남준’이라고 불렀다.

육근병에게 작가로서 활동을 넓혀 준 곳도 일본이다. 1994년, 1995년 연속으로 히로시마 지역의 대규모 설치 프로젝트에 초대되었다. ‘시랜드 스카이랜드(Sealand Skyland)' 작업은 댐 건설 이후 수몰되는 수목과 화초들을 뿌리가 흙에 묻힌 상태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올려 자연보전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2000년 일본 에치코 찌마리 아트트리엔날레에 '택시' 작품을 내놨다. 택시 지붕 표시등에 육근병의 시그니처인 눈 이미지를 그려 넣은 작업이다.

도모에 시즈네(Tomoe Shizune)등 일본 현대 음악가들과도 협업한 육근병은 2007년 이후 10여년간 일본 야마가타현 도호쿠예술공과대학(東北芸術工科大学) 객원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번 교토 전시는 초대 갤러리의 준이치로 대표가 직접 추진하였다. 작가는 대표에게 전시를 단출하게 꾸미기를 주문하였다. 작품은 대부분 영상과 사진 작업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에서 태평양 전쟁을 주제로 삼은 <생존은 역사다 2>를 처음 선보인다.

앞선 <생존은 역사다·Survival is history>는 서구의 근대를 벗어난 50년(1945~1995) 동안 세계에서 발생했던 큰 사건들을 서사적 시각으로 만들었다. 작가는, 인류는 희로애락을 끝없이 생성하고 소멸시키는 순환을 거듭하며 그 묵시록들을 기록하여 왔다고 본다. “기록 자체가 ‘살아있는 DNA’이기에 곧바로 ‘생존은 역사’가 된다”는 논리이다. “누구나 역사의 주체가 된다’’라고 말한다.

백남준 작품 <콰다카날 레퀴엠·1977> 무대가 되는 서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중심의 연합군과 일본군간 전투 지역이다. 백남준은 샬럿 무어먼과 함께 섬을 찾아 죽은 이들의 안식을 바라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예술의 힘을 함축하였다.

육근병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오마주하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영감받아 발표한 <숨쉬는 게르니카 Breathing Guernica·2022>는 <콰다카날 레퀴엠>을 잇는듯 보인다.

숨쉬는 게르니카(Breathing Guernica) 454.6×181.8 cm acrylic on canvas 2023
숨쉬는 게르니카(Breathing Guernica) 454.6×181.8 cm acrylic on canvas 2023


작품 <가이아의 게르니카 Gaia’s Guernica> 중앙 상단에 배치된 ‘아멜리아 애니소비치(Amelia Anisovych)'는 개전 초기, 지하 방공호에서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부른 7세의 어린 소녀이다.

가이아의 게르니카(Gaia’s Guernica) 522ⅹ194cm acrylic on canvas 2023
가이아의 게르니카(Gaia’s Guernica) 522ⅹ194cm acrylic on canvas 2023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신 혹은 대지의 어머니이며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신으로, 온세계의 존재를 지탱하는 기반과 토대로 여겨진다. 아멜리아는 가이아(GAIA)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육근병은 역사에는 반복되는 어떤 고리가 있는 것인가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지만 그 흐름을 읽는 예술가는 뚜렷한 리듬을 찾아내어 작품으로 구현한다. 강의 시작점, ‘시원(始原)’의 물은 수심 한가운데 중심을 따라 흐른다. 육근병은 바로 그 곳에 서서 강을 노래하여 흐르게 한다.

육근병의 출국 전 고민을 백남준 전시와 함께 헤아려 보았다. 경기 용인시 백남준 아트센터, 백남준이 역사적인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40년을 기념하는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장 벽면에는 다음 글이 씌여있다.

"우리는 적어도 기술을 증오할 만큼 고도의 기술을 원한다.
우리는 적어도 번영을 경시할 만큼 충분한 번영을 원한다.
우리는 적어도 평화에 진력이 날 만큼 충분한 평화를 원한다."

<백남준, 1965년 생각들>

노래패 꽃다지의 ‘주문’ 가사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되어야 해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가이아(Gaia)의 게르니카- 육근병" 전시는 교토 ‘KIKA 컨템포러리 아트 스페이스’에서 12월 14일 오픈하여 2025년 2월 16일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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