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출신이 만든 ‘한올재단’, 수백억 그림 기증받아 멋대로 관리” 진정
국세청엔 재산 47억 신고, 외교부엔 100억으로 보고, 회계 부정 의혹도
김 화백 유족과 한올재단 7년 법적 다툼, 허위공시∙횡령 등 새로운 국면으로
‘하모니즘(구상과 추상의 공존)’의 창시자인 고 김흥수 화백(1919~2014)의 수백 억원대 유작을 기증받아 증여세를 면제받은 공익재단이 실제로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돼 왔다는 진정이 제기됐다. 이 재단이 세무당국인 국세청과 관리 감독관청인 외교부에 기본재산 내역을 다르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나 회계부정 의혹도 제기된다.
24일 김 화백의 장남 김용환씨에 따르면, 김 화백이 2014년 95세로 작고하면서 수백 억원대로 평가되는 그림을 유산으로 남겼다. 외국에 거주하던 유족들은 평소 고인이 그림을 팔지 않고 거의 모두 간직할 정도로 애착이 많았던 데다 상속세 납부도 어려운 형편이라, 김 화백 유작들을 외교부 산하 통일연구재단인 극동문제연구소에 기증했다.
고인의 유작을 공익적 목적으로 지키고 ‘김흥수 미술관’ 건립 등에 사용되도록 할 의도였다. 그런데 극동문제연구소는 재단의 이름을 '한올재단'으로 바꾸고 목적 사업을 확대한 것 외에는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유족 측은 기증의 효력을 놓고 7년 넘게 재단과 법적 분쟁을 벌였으나 “기증의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패소했다.
세간에는 유족 측이 제기한 한올재단과의 분쟁이 재산권 다툼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법적 다툼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이를 근거로 유족 측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한올재단의 운영 비리를 고발하는 한편, 국세청과 관리 감독기관인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한올재단은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국세청에는 공익재단으로 신고했는데도 불구하고 비영리 재단이라는 이유로 일체의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올재단은 과거 국가정보원 출신이 만든 외교부 산하 통일∙외교∙안보 연구 목적의 비영리 법인이었다. 기본재산이 1,000만원(상법상 법인으로 보면 자본금)인 영세 연구법인으로, 김흥수 화백의 수백 억원대 그림을 증여 받기 전까지는 유명무실한 사실상 '껍데기 재단'이었다. 이 재단은 김 화백 유족의 기증 의사가 전달되자 정관 및 사업계획 등을 변경하고 한올재단으로 재탄생했다.
유족들은 법적 분쟁과는 별개로 거액의 자산을 증여받고 세제 혜택까지 받은 재단이 목적과 취지에 맞게 김 화백 유작을 관리, 운영했는지는 철저히 점검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김흥수 화백 그림 증여 받은 한올재단의 관리 실태>
진정서를 검토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올재단은 공익재단으로 분류돼 세금을 면제받고는 정작 감독관청의 엄격한 통제를 받지 않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해왔다. 국세청이 한올재단의 증여 재산을 110억원으로 인정해 증여세 46억여원을 과세한 뒤 면제 처리한 배경이다.
당연히 이 재단의 재산 공시액은 110억원이 돼야 하지만, 국세청은 한올재단의 재산 신고액 47억원을 그대로 인정했다. 당시 재단 관계자였던 윤모 사무처장에 따르면, 50억원 넘는 재산을 신고하면 외부 감사 등 회계 관리가 까다로워 일부러 낮춰 신고했다고 한다. 국세청이 재단 운영의 편의성을 위해 조작한 허위 공시 자료를 수년간 방치해 온 셈이다.
한올재단이 국세청에 신고한 내용과 관리 감독기관인 외교부에 제출한 내용도 달랐다. 한올재단이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한 재단의 기본재산은 47억원이지만, 외교부 자료에는 보통재산 100억원으로 다르게 공시돼 있고 등기부 등본에는 기본재산이 1,000만원으로 돼 있다. 회계 부정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공익법인∙비영리 법인 등은 재산을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으로 분류하는데, 통상 증여 받은 재산은 비과세 됨과 동시에 법원에 기본재산 등기를 해야 한다.
유족 측은 진정서에서 “한올재단은 외부 감사를 피하기 위해 자산 규모를 47억원으로 줄여 허위 세무보고를 했고, 그마저도 ‘일시적 제약이 있는 순자산’ 형태로 계상했다”며 “공익사업을 하려는 비영리 재단은 ‘영구적 제약이 있는 순자산인 기본재산’을 늘려서 편성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올재단이 기부재산 전액을 ‘일시적 제약이 있는 순자산’으로 둔 것은 사업비용을 빼돌려 사용하려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한올재단이 김 화백의 유작을 공익적 목적에 쓰겠다고 세금을 면제받은 뒤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 가능한 재산으로 분류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형성 한올재단 이사장은 “유족들이 상속세 감면을 위해 국세청 감정 이후 새로 감정평가를 받아서 47억원짜리를 제시해 이를 근거로 신고했을 뿐 속인 것은 아니다 “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사무국장 윤모씨는 “유족들이 김형성 이사장을 만나기 이전인 2016년 8월 초 한국미술감정평가원에 감정을 의뢰해 43억여원의 결과가 나왔다"며 "이어 국세청이 같은 해 9월 5일 김흥수 작품을 104억원으로 평가하고 상속세 47억여원을 부과했다"고 반박했다.
윤씨는 이어 “2017년 3월 말 당시 재단 사무총장 조모씨가 일산 소재 세무법인(다솔)을 방문해 '자산 50억원이 넘으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니 50억원 이하로 신고할 방법'을 문의했다"며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는 세무사 조언에 따라 조 사무총장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으려면 유족이 별도로 받아놓은 43억원짜리 감정평가서를 제출하라'고 내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왜 기본재산이 아니라 임의 처분할 수 있는 보통재산으로 등재했느냐'는 질문에 “공익재단이 기증받은 그림을 팔아서 3년 안에 공익재단의 설립 목적에 맞는 사업에 쓰라는 것이 국세청의 요구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세청에 한올재단 기본재산을 47억원으로 공시했고, 외교부에는 보통재산으로 신고해 김 이사장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 이사장은 '한올재단의 목적사업이 김흥수 미술관 건립'이었는지에 대해선 “재단의 기본자산이 1,000만원에 불과한데 무슨 수로 미술관을 짓겠느냐"며 목적 사업이 미술관 건립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씨는 "김 이사장이 김흥수 미술관 건립이 불가능함에도 기증을 유도한 것은 오로지 작품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라며 "40년간의 외국 생활로 한국 사정에 어두운 유족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인적 네트워크를 과시하며 미술관을 건립해주겠다는 미끼를 던져 수백억원 대의 작품을 탈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영배 한국미술진흥회 회장은 "국가 문화 재산에 속할 정도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기증 받아 사적으로 유용하려고 했다면 법률 위반을 떠나 매우 심각한 문제" 라며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조사와 시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한올재단이 기증한 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이중 계상에 의한 횡령과 ▲그림을 팔아 상장회사 인수 시도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며 관계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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