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내외 모두 중국학 교수인 친구 부부는 둘째 이름을 '소량(小亮)'이라고 지었다. '밝다'는 뜻의 '량(亮)'은 예로부터 중국 이름에 많이 쓰였다. 삼국지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제갈량 이름에도 들어가 있다. 발음도 'ㅇ' 받침으로 울림이 있고, 뜻도 좋으니 가져다 썼겠다. 중국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나이가 어린 이에게 '아(阿)'를 붙이기도 한다. 이도 오래 전부터 있던 관습이다. 삼국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조조의 어릴 때 이름이 아만(阿瞞)이었다.
최근 둘째 이름을 소량으로 작명한 사연을 전해 들었다. 친구 부부가 둘째를 낳기 전에, 자녀와 함께 중국에 머무른 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지인의 딸이 우리 초등학교인 소학(小学)에 들어갔는데, 중국 애들이 전학생이라고 놀려댄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서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전학생 상대로 텃세 비슷하게 부리는 건 세계 공통인가보다. 중국 아이들이 “너희 나라는 우리 속국이었다”고 깔보는 말을 내뱉곤 했고, 덩치까지 작아 “작은 나라에서 와서 몸도 작구나”라고 놀려 댔다고 한다. 당하기만 하다가 대충 중국어를 익힌 아이가 자신보고 작다고 놀리는 애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小的更漂亮(샤오더껑피아오량)!"
우리 말로 하면 '작은 것이 더 예쁘다고!' 정도 되겠다. 놀려대던 중국 아이들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상황과 표현에 감탄해, 친구 부부 중 남편이 둘째 이름을 '소량(小亮)'이라고 짓겠다고 했단다.
'더 아름답다'는 아니지만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1973년에 출간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연상시킨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책 제목은 그에게 가르침과 영감을 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교편을 잡았던 레오폴트 코어의 핵심 원칙에서 따온 것이다. 레오폴트 코어는 현대사회의 '더 크게 크게'를 향한 움직임과 욕망에 평생 경고를 보내며,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교처럼 거대함을 추앙하는 현대의 경향을 그는 딱 세 단어로 정리했다.
'Bigger is better(클수록 더 좋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레오폴트 코어는 1943년부터 뉴저지 럿거시 대학에서 강의했다. 세계 경제력의 절반 이상을 점하며 냉전 시대 소련에 맞서 모든 걸 크기로 압도하려는 미국에서 그는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 특히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의 폭압에 떠밀려 1955년 미국 본토를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가서 가르치다가 영국으로 가게 된다. 그가 미국을 떠난 4년 후인 1959년 매카시즘의 폭력성이 조금은 무디어져 가던 무렵, 크기에 대한 미국인의 관념에 반전을 일으키는 광고가 나온다. 20세기 최고의 인쇄광고이자 카피로 꼽히는 독일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의 미국 진출 광고 헤드라인이다.
'Think small'
폭스바겐의 광고는 화려한 테일 핀을 붙이고, 8기통에 배기량 6,000CC 이상 대형 자동차들이 주목받던 1950년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차 교두보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결코 주류(main stream)가 되지는 못했다. 이후 오일쇼크를 몇 차례 겪고 일본 자동차가 합리성을 내세우며 밀고 들어왔지만, 대형 자동차를 향한 미국인들의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사이즈-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저자인 바츨라프 스밀의 차는 혼다 시빅이다. 운전자가 몸무게 70㎏ 성인이라면, 혼다 시빅의 무게는 그 18배 수준이다. 이 비율이 최초의 대중 자동차인 포드 모델 T는 7.7에 불과했는데, 이제 웬만한 SUV 차량은 거의 40에 이른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며, 'Think small'에서 나아가 'Less is more(덜수록 더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인의 손바닥과 손목에 'Less is more’를 구현했다는 제품을 안기고 채웠지만, 자동차나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더 크게, 더 좋게, 더 강하게(Bigger, better, stronger)'
국가 전체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인사가 대통령을 지내고, 두 번째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Think small'하며 'Small is beautiful'을 만끽하는 '소량(小亮)'의 세계가 오는 그런 반전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걸까.
박재항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국내외 광고를 광고주와 대행사 양쪽에서 모두 경험하며, 변방의 싸구려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떠오르는 과정을 함께 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삼국지 키즈로 동양사를 학부에서 전공했고, 미국 뉴욕에서 대학원과 주재원 생활을 했다. 인문학과 글로벌 관점에서 마케팅을 연결하여 기획하고 해석하며, 대학 강의와 강연·기고 활동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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