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김혜리(Herry Kim·29) 작가는 2019년 서울에서 미술 대학을 졸업하자 미국 칼아츠(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로 유학을 떠나 2022년 석사(MFA / ‘Art and Technology’전공)를 취득하였다. 필자는 2021년 여름 코로나 팬데믹으로 서울에 머물던 김혜리를 처음 만나 ‘현대미술에서의 AI’ 주제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서울에서 두 번의 인터뷰를 가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인형을 좋아해 용돈만 생기면 ‘패션 돌(fashion doll)’을 사 모아 수백 점이 되었다. 브라이스, 바비 등 헤어스타일, 의상, 신발, 메이크업 등 토털패션을 적용한 패션 돌의 모습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에서 따온 게 대부분이다. 대학 시절, 인형 하나하나를 전부 사진 찍어 과제로 발표하곤 했다. 김혜리는 주변으로부터 외로워서 인형을 수집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인형들은 머리 결이 사람의 실제와 달랐고, 과장된 얼굴, 특징적 표현이 좋았다. 언젠가 자신만의 회화적 표현이 가능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대학에서는 풍경, 정물, 인물 무엇이든 사진을 레퍼런스로 작업하는걸 당연하게 여겼다. 사진으로 감각하고 인지한 이미지를 캔버스에 나열하는 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디지털 파일인 각종 이미지 정보로는 작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다는 체감이 되지 않아 대학원에서는 디지털 매체를 활용, 애니메이션을 포함 영상 작업을 하였다. 점차 기술이 발전해 가는 3차원(3D, 3-Dimension) 프린트 방식으로 입체 작업을 하였다.
직업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방향을 정해야 했다.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이며 이야기 속 화자(話者)인 인물을 앞세워 회화 작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애니메이션 작품 ‘부유(Float)’는 전지구적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모티브로 삼았으나, 삶의 걱정거리를 띄워 보내고 희망을 노래한다. 게티 재단이 후원하는 ‘PST 아트-예술과 문화의 충돌’ 전시에 출품하였다.
인공물은 전부 자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다. 작가는 그 인공물을 만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지 않나하는 생각에 미쳤다. 자연과 인공의 차이가 무엇인가?
작가가 자연에서 취한 대상(對象)을 작품으로 접한 관객은 사물 자체를 표현한 테크닉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고대 그리스, ‘미메시스’(mimesis·모방)는 대표적인 예술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감상과 창작의 핵심을 모종의 추론, 쉴로기스모스(sullogismos)라고 했다. 수사적 추론과는 다른 예술적 추론에 근거한 일체의 ‘창작’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미메시스’라고 했다. 현실을 작품 속에 담아내되 단순 모사가 아니라 재구성하여 새로운 현실을 창작한다.
김혜리의 입체 작품은 그리스 신화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라는 대립적 아이콘을 드러내었다. 제우스 신의 아들 아폴로와 의붓 형제 디오니소스 두 개념을 프리드리히 니체는 질서, 조화, 균형을 추구하는 예술의 속성을 아폴론적인 것으로, 부조화와 파격, 감각적 쾌락의 요소를 디오니소스적으로 구분하였다. 신화처럼 두 가지 요소는 인간의 내면에 혼재되어 있다.
김혜리는 금년 4월, LA지역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애매한 개념을 포착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디지털 데이터가 조각(물질)로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파악하는 게 힘들다 했다.
기술 발전은 가속도가 붙는다. 작업 또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분리하고 떼어낼 수 없으나 작가 입장에서 회화만큼 즉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영역 모두에서 볼 수 있는 김혜리의 인물(캐릭터)은 ‘스마일’로 명명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안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담았다.
유학 전, 시리아 내전에서 서로를 죽이는 인간의 잔혹함과 무언가 하려했던 인간의 몸짓들을 주제로 작업한 적이 있다. 영상으로 본 난민들의 지치고 공포에 쩔은 모습을 힘들게 표현하였다. 김혜리는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어둡고 강렬한 방식으로 자신이 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 지 알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이후 다른 주제의 인물 작업은 무언가에 이끌려 밝은 쪽으로 나아갔다.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날씨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김혜리는 한 때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1959~ ), 무라카미 다키시(Murakami Takashi·1962~ ) 등 카와이 미학(Kawaii aesthetic)에 경도됐던 적이 있다. 거칠지만 쉽게 무언가를 설명하는듯 해서이다.
카와이(Kawaii)는 1970년대에 등장하여 패션, 아트(특히 망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색감, 아이 같은 순수함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요시토모의 날카로운 아몬드 모양의 눈과 머리 큰(대두) 소녀는 귀여움에 대한 전통적 사고와는 판이하게 행동하며, 공격성, 불경(irreverence), 위트를 갖는다.
무라카미의 대표 캐릭터 ‘어린 소년’(Little Boy)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 무장해제된 일본의 집단적인 무력감과 ‘어린 소년’(일본)이 큰 형인 미국에 불가피하게 의존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은유이다.”(고동연· Dong-Yeon Koh)
영국 BBC는 최근 카와이는 여성의 신체를 아름다운 객체로만 대하려는 성적 관점을 비판한다고 보도했으나 고동연은 그 이전 “무라카미의 소녀 캐릭터는 일본의 인종 차별적 콤플렉스의 다른 면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김혜리는 요시토모나 다카시와는 결을 달리한다. 자신의 작품 속 인물 ‘스마일’의 ‘귀여움’을 인간의 존엄과 참혹을 동시에 갖는 모순된 세상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도구(장치)로 사용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움직임으로 촉발된 소모적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서의 대량 학살에 지구촌은 무감각해지고 있지 않나.
김혜리는 2023년10월 영국 런던의 사치 아트페어(Saatchi Art Fair), 2024년 4월 독일 베를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DNA(Digital New Arts) 페스티벌 참여 등 활동을 이어오다 지난 달 작업실을 서울로 옮겼다. 향후 서울과 LA를 거점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금년 봄 크리스티 관계자가 작가의 LA작업실을 찾았다. 오는 12월 옥션하우스가 주관하는 오클랜드 그룹전에도 초대받았다.
김혜리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물리적 공간의 제한을 경험하며 모든 작업을 디지털로 하려 했으나 표현 지향적인 예술가는 색과 같이 간다는 인식에 다다랐다. 당장 새로 얻은 작업실에서 대형 회화 작품을 하고 싶어한다.
<참고 자료>
1. 고동연 (Dong-Yeon Koh), “Murakami’s ‘little boy’ syndrome: victim or aggressor in contemporary Japanese and American arts?”,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ume 11 (Number 3, 2010)
2. BBC, Yoshitomo Nara and the dark side of Japanese 'cuteness'(14 August 2024)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월 ~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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