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개인전 '그리움-집은 그리움이다', 서울 '갤러리앨리'에서 10월 31일까지

영화 <뮌헨, Munich 2005>은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참사와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을 소재로 삼는다. 등장 인물들의 대사중 가장 기억에 남은건 “집이 전부이다.(home is everything)”이다. 물론 여기서 집의 의미는 단순하지가 않다.

누구나 누리는 일상의 삶에서 집은 집 자체의 의미를 너머 선다. 김영궁(58) 작가의 어머니는 최근 세상을 떠났다. 작품에는 3년여전 부친이 떠나고 어머니가 지키는 집은 부뚜막에 연기조차 없는 모습이다. 김영궁은 30대 초까지도 부모와 한 집에서 살았다. 집은 여전히 생생한 숨결 같은 그리움의 모체이다.

바람이 분다 720 x 230 x 680 mm 자작나무 2021
바람이 분다 720 x 230 x 680 mm 자작나무 2021


현대 사회는 가족이 분화, 해체하하면서 가족과 함께 사는 작은 집합체, 사회로서의 집(home)을 갖지 못한 홈리스(homeless) 인간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집'이란 물리적인 공간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작가의 부친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서울로 이사 후 관악구에서 집을 지어 파는 소위 집장사를 하셨다. 어릴적, 부친이 지은 서울 첫 집에서의 희로애락, 기억들이 여전하다. 창가에서의 잡담, 등불 아래 식탁, 마실 다니던 동네 뒷산의 기억이 선명하다.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그 집이 재개발로 없어져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그 첫 집과 주거지를 하릴없이 다니곤 했다. 1990년대초 부친이 은퇴를 하며 지은 집에서 두 분은 생의 여정을 함께 했다.

김영궁 작품 세계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과 새기고 깎아 공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보다 작다는 개념의 조각과의 경계가 따로 없는 느낌이다. 작가의 에스키스에는 집으로 가는 길, 시각, 햇볕, 바람결, 주변의 상가와 사람들의 움직임 등도 반영되었기에 그렇다.

"누군가가 나타나기 이전에 존재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는 공간, 즉 그가 살던 집과 마을, 그가 바라보던 신전, 이웃과 함께 지낸 아고라 등이 그를 기억해 준다."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김광현 저 139~140쪽)

김영궁 작가는 대상과 형태를 자연에서 취한다. 모든 것이 둥그렇고 곡면이며, 흐르는 원(fluid form)의 형태, 촉감조차도 그렇다. 곡선의 조형미를 추구했다. 생명, 자연을 주제로 유기적(有機的) 작업을 하면서 직선을 가미하기 시작한다. 집은 직선이 들어가야 형태미를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김영궁의 작품 집은 박공지붕(양쪽으로 '^'모양처럼 경사진 지붕)으로 조금은 과장되고 정형화되어 있다.

비오는 날 590 x 280 x 800 mm 자작나무 2021
비오는 날 590 x 280 x 800 mm 자작나무 2021


김영궁은 원목 소재를 '너무 만지다' 보니 작업의 흐름이 공예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1999년 자작나무 집성(集成) 합판 재료를 만났다. 얕게 켠 합판을 마치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쌓는 3차원 구조의 건축적인 스택(stack) 방식으로 이어 붙여 크기를 확장하며 형태를 만들었다. 나무 물성이 갖는 내부 견고함과 형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게 가능해 보였다.

조각가는 자신이 작업한 작품을 전시장으로 쉽게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목조불상(木造佛像)의 속이 비었다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이후 김영궁의 작품들은 대개 보이드(void) 방식을 취한다. 조각과 건축물은 사방에서 보여지는 건 견고해야(solid) 하기에 속을 비우는 것은, 내부에 작은 아트리움(atrium)을 들여보내는것과 같다.

김영궁은 집을 상징하는 엄격한 추상성 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는 침묵, 가족이 같이 지나온 시간이 켜켜이 쌓인 디테일과 모든 것이 어우러져 드러난 아우라의 딴딴한 결합성, 우주에 우뚝 선 그 집만의 강건함, 집과 주변을 형성하는 거주지, 살았던 이의 시선이 머물렀던 자연까지를 포괄하는 맥락을 드러낸다.

고독의 즐거움 370 x 330 x 1000mm 자작나무 2021
고독의 즐거움 370 x 330 x 1000mm 자작나무 2021


김영궁의 조형적 상징들은 하나의 개체가 전체 속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성을 갖는다. 서로를 의인화하기도 한다. 그 집에서 바라본 건너 마을 어느 집 부뚜막에 연기가 오르면 ‘사람들이 모여 있겠구나’, ‘그들은 무엇을 할까’ 상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간이 품은 내면의 광경을 작품으로 담았다. 김영궁의 집을 바라보는 관객은 마음의 평화와 고요, 침잠의 세계에 들어간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집에 간다’는 것은 여행의 종료를 말한다. 여행은 자신의 집을 떠나 낯선 곳, 익숙하지 않은 곳, 장소,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집을 떠나 소위 작업장 생활을 오래했다. 컨테이너로 지어진 작업장은 집이 아니지 않은가. 작가는 이러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부유하고 방황하던 정신이 안온한 장소에 당도하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이러한 집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 홈 중에서도 스위트홈이다.

대부분 홈리스인 현대인들에게 스위트홈은 추억, 이미지,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만 남아있다. 견고한 물성의 확실한 비주얼의 집은 이러한 스위트홈의 실재를 구현시켜 준다.

공생 2 – 삼라만상 1200 x 36 x 1200mm 자작나무 2022
공생 2 – 삼라만상 1200 x 36 x 1200mm 자작나무 2022


이번 전시에 나온 “공생-삼라만상”은 전체적으로는 부조(浮彫)로 보이지만 밋밋하지만 레이어가 있는 미세한 높이가 드러난다. ‘흐르는 원’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 작업은 점, 선, 면, 입체, 공간 개념의 모든 요소 및 상관 관계가 집합되어 있다.

김영궁 개인전 <그리움- 집은 그리움이다>전은 서울 서초구 3호선 신사역에 근접한 갤러리앨리에서 10월 31일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월 ~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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