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평론 미술딜라이트]
개인전 '사유의 시간' 서울 비트리갤러리에서 10월 5일까지
정두화(56) 작가는 1997년 첫 개인전 ‘타임 스페이스(Time-Space)’ 이래 2009년 ‘소리-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2011년 ‘책-우리들의 이야기’, 2013년 ‘사유의 숲-소리의 변형’ 전을 이어갔다.
그에게 큰 위기가 있었다. 첫 개인전 이후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 경제적 문제가 가장 컸다. 아울러 미래 작업에 대한 무기력과 불안, 우울 등이 동반되었다.
12년 만인 2009년 전시를 한 것은, 마지막으로 한번은 해야 후회가 덜할 것 같아서였다. 이후 작업에 자신이 생기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2014년 강남의 갤러리는 김동유, 홍경택 등과 함께 정두화 작품을 홍콩 크리스티 프라이빗 세일에 내보냈다. 크리스티 측은 “표현과 혁신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두화 작품은 ‘표현’이라는데 방점을 둔듯하다. 2015년 이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했다. 해외에 특화된 갤러리였기에 작가는 해외 활동 등에 있어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해체주의 건축가들은 새로운 형태와 공간(form and space)은 모더니즘을 해체해야만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197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알도 로시(Aldo Rossi·1931~1997)의 건축은 장식이 없으며 공간 구성은 미니멀리즘이 기본이다. 도시의 역사성과 맥락을 존중하는 유형(typology)을 따른다. 장시간에 걸쳐 도시가 구성한 역사적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도 건축의 일부임을 주장한다.
그는, 프랑스의 아를에는 로마시대에 (원형)극장 용도로 지어진 구조물이, 중세에는 원형 집합 주택의 벽체로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역사적 관광지로 이용된다는 점을 사례로 든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의 핵심 근거인 기능주의의 모순을 드러낸다.
형태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형태 이전에 존재하고 형태를 성립시키는 논리적 원칙을 알도 로시는 '유형'(type)이라고 본다. 신전, 교회, 불당은 모두 다른 종교 건물이지만 '중심형 공간'이라는 유형을 갖는다. 도시와 건축, 전체와 요소, 인문학과 기술, 개별성과 집단 등 대척적인 것들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강력한 도구가 '유형'이다.
정두화의 사운드 시리즈 작품, 옴팍하게 파인 (공간을 품은) 형태와 유형은 어디에서 왔는가? 작가는 왜 책을 (뜯어서) 해체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을까?
작가는 어릴 때부터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흙, 나무, 식물, 동물 등이 대상 이상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절대자는 우주와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대학 2학년 때 부전공 조각 수업 중 과제로 책을 질료적으로 해석하고 작업하라는 과제를 받고, 처음으로 책을 해체 후 덩어리로 만든 후 조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책을 지식이나 컨텐츠를 담은 매체보다는 무게, 부피, 두께, 형태를 가진, 종이가 집적된 질료이자 사물로 해석하였다.
사운드 시리즈 제작은 2013년부터 이루어졌다. 전시에 본격적으로 선보인건 2015년 개인전때 바닥, 벽에 설치하였다. 바닥에 놓는 작업은 원래 설치작업 구상을 하며 제작되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바닥에 단독(조각형태)으로 설치하게 되었다. 전시 구성이 잘 맞아떨어졌다.
정두화는 이후 본격적으로 책의 질료적 측면을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책 자체의 물성에 집중하였고, 물성의 변형을 통해 책의 변형, 소리의 변형을 모색하였다.
2019년, 영국 런던의 한국작가들만의 단체전에 종이를 가늘게 말아 단단한 소재로 만든 뒤 스피커 모습을 형상화해 마치 천정에 맞닿는 소리를 수직으로 분절할 것 같은 작품을 내보였다.
회화는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대상에서 받는) 임프레션(impression, 인상) 위주로 그리는 표현주의가 있고, 사물의 근본 만을 표현하는 미니멀니즘 (minimalism)이 있다. 미니멀리즘은 생략과 제거의 과정이 수반된다.
많은 회화 작가들이 책을 주제로 또는 소재로 삼아 책이 주는 공감각적 감흥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정두화의 작업은 제철소 용광로에 온갖 고철들을 용해하여 신철로 방식이다. 책을 해체해 소재로 만드는 과정은 정리, 생략, 추출 등이다.
그에게 앗상블라주(assemblage·집적·集積)는 작업의 중요한 공정으로 미학적 가치를 품게 한다. 해체한 책을 자르고 말고 한 종이들을 수용성 목공 밴드(접착제)로 결합한다.
매체, 텍스트 두 가지 요소가 분리되지 않은 책은 기표(signifier·記標)와 기의(signified·記意)가 연결되었기에 '상징'(symbol)이 될 수 있다.
1987년 발간된 복거일(1946~) 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에서 비(석)는 육신이 소멸된 존재이기도 하며, 세상을 떠난 조상의 혼이 현재의 가족을 수호해 달라는 제의의 상징이다. 과거, 미래, 현재를 관통하는 공간과 함께하는 물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설 속 비석은 여러 의미의 상징이 된다.
상징은 미디어이며 미디엄이며 메시지가 된다.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1911~1980)은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 1964>에서 "매체가 곧 메시지다(Medium is the message)"고 통찰했다. 맥루한은 매체에 담긴 내용보다 매체 형식 자체에 주목했다.
정두화 작품은 책이라는 매체와 책이 담은 텍스트 어느 것에 더 상징적 의미를 두느냐로 평가의 방향성이 정해진다. 작가는 이 땅에서 나는 한지(hanji)를 고집하지 않는다. 버내큘러(vernacular·지역성)를 벗어난 지점이다.
개념미술은 완성된 작품 보다 아이디어나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본다. 형식과 내용은 새로워야 한다. 영어 ‘개념적’(begrifflich)과 독일어 ‘관념적’(begrifflich)은 철자가 같다. 작가는 책 작업 과정, 해체와 조립이 개념이 되었다.
'결 Grain'시리즈는 나무의 결이 마치 책의 옆 단면, 즉 서가에 책을 꽂았을 때 보이는 부분인 책등의 반대쪽에 종이가 페이지를 이루어 쌓인 형태를 보여준다.
숲에서 느끼는 바람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작가는 달이 요요(耀耀)한 봄날의 흔들리는 보리를 표현하고 싶었을까. 캄캄한 밤 산등성이, 언덕 길모퉁이 언저리에 제멋대로 모여 있는 억새의 고즈넉한 쓸쓸함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작가에게 밖에서 인지하고 그린 풍경은 실내에서는 관찰, 기억, 감각이 합해진 풍광(風光)이 된다. 정두화는 시간의 두께가 풍광의 두께가 되는 방법을 찾는다.
정두화 개인전 <사유의 시간>은 서울 마포구 비트리 갤러리에서 10월 5일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월 ~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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