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를 보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한국이 싫은 이유’가 이해된다. 또 하나는 상상했던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지 못한 실망감이다. 주인공 계나(고아성)는 한국에선 경쟁력이 없다며 한국을 떠난다. 가족, 직장, 애인 그리고 추운 날씨는 그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동명의 원작 소설과 달리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기대와 달리 뉴질랜드의 멋진 풍경은 아주 간간이 보여질 뿐이다. 장건재 감독은 계나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영화를 이끈다. 따라서 공간은 주로 건물 내부거나 외부가 주무대다. 역시나 한 권의 책을 2시간의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출처: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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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은 이유

계나는 말한다.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 “여기선 더 이상 못 살겠어서”라고. 그녀의 주거 상태, 출퇴근 및 직장 환경과 업무, 애인(가족)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집, 2시간에 걸친 지옥철을 타고 가는 출근길, 비상식적 요구를 하는 직장, 가족의 무리한 기대, 여기에 남자 친구 가족의 처신은 그녀를 폭발 직전의 상태로 몰고 간다. 누구라도 탈주하고 싶은 상황이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가 공교롭게도 원작인 <한국이 싫어서>가 발표된 해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한 영어 모임에서였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한 젊은 친구가 설명해 주었지만, 그 단어에 잘 공감되지 않았다. 단지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거의 10년이 다 되는 시점에 이 영화 제목을 보니 몹시 끌렸다. 도발적인 제목이라 여겼는데, 원작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헬조선’의 뜻을 이제야 제대로 깨달은 느낌이랄까.

출처: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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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는 장건재 감독이 연출했고, 소설의 원작자는 장강명이다. 소설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소설가와 연출가가 모두 남성이라는 점에 관심이 갔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남성이라고 여성의 심리를 모를 순 없지만, 이런 소재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인 저자와 연출가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8월 28일 영화 개봉일에 맞춰 근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언뜻 보기에도 대부분이 여성이고 연령대도 주인공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계나의 주장에 이끌린 관객이 아닐까.

영화는 계나의 한국 생활과 뉴질랜드 생활을 교차로 보여준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온 곳도 결코 살아가기 쉽지 않다라는 것을 시사하면서. 하지만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겪은 삶의 파동과 진폭은 영화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현지에서 사귄 ‘앨리’라는 친구로 인해 처하게 되는 곤경과 그 결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인도네시아 친구 리키와의 관계도 빠르게 진행된다. 즉, 서사가 파편적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원작에 있는, 지명과 잠시 동거하는 동안 한국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행적들도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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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와 머물면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한국을 떠난다.

계나가 뉴질랜드로 간 까닭

영화에서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원작에서 계나가 선택한 나라는 호주다. 원작에서 호주를 장건재 감독이 뉴질랜드로 대체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계나가 뉴질랜드로 떠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따뜻한 날씨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깨끗한 공기,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한몫했을 것 같다. 그녀는 직업 부족군인 회계(사) 공부를 해서 영주권을 받은 후 시민권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나(고아성)는 배고프지 않고 춥지만 않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 조건은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다. 나도 평소에 참을 수 없는 두 가지는 춥고 배고픈 것이라 말해 왔다. 추위를 많이 타기에 계나의 추위에 대한 거부감을 누구보다 공감한다. 나의 오랜 소망 역시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뉴질랜드에서 거주하는 거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기에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다. 크리스마스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여름을 즐길 수 있다. 계나가 머물렀던 오클랜드는 겨울에도 영하권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난방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곳은 겨울에 실내가 매우 춥다.

출처: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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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잠시 나오듯이 모든 사람이 뉴질랜드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다. 계나는 적응을 잘한 반면, (원작에 없는) 유학원장 가족의 등장과 그들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를 통해 해외 적응이 쉽지 않음을 드러낸다.

또한, 장건재 감독은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동시대 청년의 다른 생각도 표출한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의 선택은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즉, 계나 남자 친구 지명(김우겸)과 계나 동생 미나(김뜻돌)는 한국에서 살고자 한다. 계나의 유학원 동기인 재인(주종혁)은 그간 해오던 회계 공부를 포기하고 요리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결국 행복의 의미와 추구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가 원작을 기반으로 했다고 해서 내용이 꼭 동일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입에 나오는 계나의 독백은 책 내용과 거의 일치해서 당황스러웠다. 영화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확실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영화는 소설 후반부의 내용을 많이 축소하면서 원작의 긴 호흡은 스크린으로 잘 옮겨지지 않고 있다.

<한국이 싫어서>는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뉴스버스에 영화칼럼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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