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전시 '히든 플레이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9월 12일까지

허준(48) 작가와 1년 7개월 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그 사이 그는 작업실을 옮겼고 작업에도 변화가 보인다. 이전 ‘나무’ 시리즈는 대상(對象)인 나무는 장식적 모습이었으며 배경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나무는 왠지 뿌리가 박고 있어야 할 대지와 이격된 듯 불안하고 떠 있는듯 했다.

2006년 첫 개인전 이후 ‘산수화’, ‘날개’에 이어 2021년부터 ‘나무’ 시리즈를 이어 오고 있다. 산수화 시리즈에서 여러 이미지를 레고 조립하듯 연달아 그리는 방식은 여전하다.

Hidden Place 1 종이에 혼합재료 100ⅹ190cm 2024 / 제공 = 토포하우스
Hidden Place 1 종이에 혼합재료 100ⅹ190cm 2024 / 제공 = 토포하우스


허준은 불안정한 감정, 무기력, 현실 탈출 욕구를 새의 날개에 대입하였다. 날개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상징 이미지 아닌가. 큰 나무는 한 곳에 정착하여 그늘을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부락을 형성하며 계절마다 풍경을 제공한다. 날개는 한 쪽이 기울면 추락한다. 불안과 자유는 나무나 날개를 들여다 보는 마음이 어느 쪽에 머물지의 선택에 따라 상징 의미는 달라진다.

허준은 날개 작업을 쉬고 있다. 광기 서린 디테일 표현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몰입이 지나쳐 자칫 매몰되기 때문이리라.

Hidden Place 4종이에 혼합재료 72ⅹ58.5cm 2024 / 제공 = 토포하우스
Hidden Place 4종이에 혼합재료 72ⅹ58.5cm 2024 / 제공 = 토포하우스


허준은 2022년부터 나무 작업에 집중하였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인격을 담았다고 한다. 작업의 모티브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 집에서 1년여전 옮긴 중앙경의선 아신역 인근 작업실을 오가며 만나는 가로수이다. 어떤 종류의 나무이건 중요하지 않다. 나무는 의인화된 동물 또는 벌레(자신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가 숨고 싶은, 드러나지 않으며 휴식을 취할 공간으로써 존재한다 하였다. 작가는 작업을 해 나가며 그냥 자기만의 장소를 표현하고자 했다.

“장황하게 무얼 깊이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다. 나무에게 초상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최후로 남길 영정 사진이 아닌 순간순간 숨쉬고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인간도 자유롭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여권용 사진을 새로 찍지 않나.”

“어떠한 상황 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부터 사라지고 숨고 싶은 마음이 요동칠 때 마다 필요한 유무형의 공간과 장소가 필요하기에 나무를 그렸다.”

주체와 대상 간의 전복

그는 자신이 대상으로 사진찍은 그 나무에 들어가 앉아 전기차 다니는 거리를 바라본다.

프랑스어 오브제(objet)는 물건이고,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객체로서 논의나 묘사의 대상이 된다. 미술사에서 오브제는 상식적인 사물의 범주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 의미를 붙인 물체를 의미한다. 

영어 '오브젝트(object)'는 ‘사물’, '대상'(對象)이란 뜻이다. '서브젝트(subject)'는 '주체'를 뜻한다. 주체(subject)가 온갖 대상(object)을 규정하는 철학이 서양 철학의 관념론이듯 작가는 자신이 대상으로 사진찍은 나무에 깃들어가 의인화한 동물 또는 미미한 존재 벌레이지만 거리와 세상을 내려다 보는 지위에 있다.  

작가가 자신의 상황과 내면에 침잠해 있을 동안 세상은 VR보다 한 단계 진화한 메타버스(Metaverse·가상현실) 사회가 되었다. 디지털 사회는 공간(space)에서 중요한 장소성(placeness)을 사라지게 했다. 물리적인 거리로 인식되는 장소 개념이 없어졌다. 메타버스 자체가 공간 개념이며, 장소 개념을 갖고 있다.

Hidden Place - Three Tree종이에 혼합재료 85ⅹ148cm 2024 / 제공= 토포하우스
Hidden Place - Three Tree종이에 혼합재료 85ⅹ148cm 2024 / 제공= 토포하우스


허준은 이러한 세상과 소통하기 보다는 심리적 공간과 장소를 불러오고 찾아서 나무 도상(圖像) 곳곳에 어릴적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듯 숨겨놓는다. 허준은 제법 오랫동안 배제(exclusion)와 추방, 격리의 아포칼립스(apocalypse·종말)의 상황에 있었으며 자신이 인식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本地還處)를 바라는 강한 욕망을 키워왔다.

관객은 화폭의 나무를 대하면서 온갖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관객에게 상상력은 겉보기가 아닌 실체를 볼 수 있는 힘이며 원천은 사유하는 능력이다. 사유는 가만히 머무르는 게 아니며, 더 깊은 것을 들여다 보는 구체적 행위이다. 모름지기 작가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제하며 화폭에 상상한 것을 드러내며 표현한다.

허준 작가 / 제공 = 토포하우스
허준 작가 / 제공 = 토포하우스


이번 나무 시리즈 세 번째 전시 ‘히든 플레이스(Hidden Place)'에 나온 작품들은 앞의 두 전시 ‘프롤로그’(Prologue), ‘유앤미앤유(You&Me&You)'를 뛰어넘는 생동감이 흐른다. 나무에는 생명체들이 깃들어 있다. 부엉이, 새, 매미, 각종 벌레 등이 숨어 있다. 수직의 모든 것을 떠받치는 일련의 나무 기둥들에도 알지 못할 기운이 흐른다. 붓질과 붓 점에 따라 표현된 그 기운은 영적으로 보인다. 인간 죽음의 상징인 해골 도상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작업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작가는 그동안 춥고 어두운 작업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년째 전업 작가로 살아가며 이룬 성취이기도 하다.

전시 ‘히든 플레이스’(Hidden Place)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9월 12일 까지이다. [뉴스버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월 ~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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