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가입자 조회도 영장 있어야, 언론엔 더욱 엄격

여당도 “통신조회 제한”, 미온 대응시 尹 정부 위기 재촉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언론인 사찰 규탄 및 통신이용자정보 무단 수집 근절 방안 기자회견에서 전대식 전국언론노조수석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언론인 사찰 규탄 및 통신이용자정보 무단 수집 근절 방안 기자회견에서 전대식 전국언론노조수석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면서 야당 의원과 보좌진, 언론인 등 수천명의 통신이용자 정보 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한 것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검찰은 “적법한 수사 과정”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찰과 해당 언론들의 ‘통신사찰’ 주장은 악의적인 왜곡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검찰의 대대적인 통신조회는 어물쩍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번 일은 검찰이 경향신문과 뉴스버스 등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 후보 검증에 나섰던 언론사들을 상대로 짜맞추기 수사를 하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들 언론이 민주당과 짜고 일부러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는 프레임을 걸어놓고, 그런 가설로 얽어맬 수 있을 때까지 1년 가까이 수사를 밀어붙여온 결과이다. 언론의 정당한 보도를 옥죄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해친 일대 사건이다.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 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검찰은 “주요 피의자·핵심 참고인들과 통화를 주고 받은 상대방의 가입자 정보를 조회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통화 내역을 본(통신사실 확인) 게 아니라 휴대폰 주인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가입일·해지일만 봤다(통신자료 조회)는 것이다. 전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후자는 검사의 권한만으로 통신사에 제출요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그런 해석이 맞다. 하지만, 이번 통신자료 조회의 내역과 규모를 보면 그렇게 보아넘길 수 없다. 우선 조회 대상이 적게는 수 천명, 많게는 수 만명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찌기 없었던 규모인 데다 초등학생까지 포함돼 있다. 사찰행위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해도 저인망식 통신조회가 개인정보 침해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검찰은 마치 어느 나라에서나 다 제한 없이 통신조회를 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에선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물론이고,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할 때도 영장이 있어야 한다. 1986년부터 시행중인 ‘저장통신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민간인의 가입자 번호나 신원정보를 확보하려면 적법한 목적을 가지고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한다. 영장 없이 정보 제공을 받는 것은 사람이 사망할 수 있을만큼 긴급한 경우에 한해서다. 통신회사가 보관하는 이용자의 통신 기록이나 정보에 대한 수사기관의 접근 권한 및 허용 범위도 법에 못박아두고 있다. 언론사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선 그 조건이 더욱 엄격하다. 지난 2022년부터는 법원 영장을 받았더라도 언론인들의 휴대전화나 취재노트 등 취재정보를 확보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자들의 통신정보나 통화 내역, 이메일 등을 조회하는 행위까지 금지했다. 트럼프 정부 때 연방검찰이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 조사를 이유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기자의 통화 내역 등을 영장을 발부받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규정을 강화했다.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취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언론 취재를 방해하는 무분별한 법 집행 수단과 행위로부터 기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검찰처럼 하면 수사를 구실삼아 언론인의 통신자료를 마구잡이로 들여다봐도 막을 길이 없다. 그러면 기자가 통화한 취재원이 누군지 검찰이 낱낱이 파악하게 되는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누가 기자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연히 언론의 취재 활동은 제한되고, 그만큼 권력에 대한 비판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언론인 개인의 인권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기본 요소인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된다. 틈만 나면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이율배반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번 사안의 파장이 묘하게 흐르고 있다. 여권 내에서 검찰의 무차별 통신조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검사 출신 중진인 권영세 의원은 7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어느 정권에서든 검찰 혹은 다른 수사기관들이 좀 과하게 통신조회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법원에 의한 통제, 영장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사 목적상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제한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이자 한동훈 대표의 핵심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이 “(검찰의 통신조회에)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공감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더욱 크게 나온다. 영장주의가 원칙이 돼야 하며 마구잡이 통신 조회는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다. 긴급한 수사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여야가 바뀔 때마다 상대방을 마구 조회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영장을 통해 통신이용자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가뜩이나 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개인의 정보 보호 기능이 약해지면서 이른바 ‘빅 브라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언론의 취재 활동과 관련 통신자료나 이메일 내역 등에는 수사기관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 통신사들의 개인 정보 제공도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지금도 경향신문과 뉴스버스 등의 대선 후보 검증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명백히 헛다리를 짚었다. 그렇다면 수사를 멈추는 게 맞는데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한 전직 언론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검찰공화국의 무소불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검찰이 통신조회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사찰 논란은 결코 불식될 수 없다.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윤 정부의 명을 재촉할 수 있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2024년 퇴직했다.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저작권자 © 뉴스버스(Newsvers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