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 9월26~10월 27일 평창군 진부면서
예술 감독(전시기획자)은 전시 주제를 정하고 걸맞는 작가들을 선정하여 의미 있는 컨텐츠를 만들고 전시 외부 변수와 상황, 맥락에 맞게 운영하는 이다. 작가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생각을 구현하여야 한다.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자에겐 충분한 시간과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 고동연(Dongyeon Koh· 54)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 예술 감독은 지난 3월말에 선임되었고 개막은 오는 9월말이다. 목전에 다다른 국제 미술 행사 예술 감독을 6개월의 준비 기간으로 지금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고동연은 아트디렉터, 전시 커미셔너 등의 경력과 함께 젠더, 전쟁의 기억, 대중소비문화와 접합된 동시대 미술 등을 다룬 비평과 연구서, 논문 등을 발표한 평론가, 학자의 면모가 강하다.
고동연은 국내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1999년 미국 뉴욕대에서 박물관학 석사, 2006년 뉴욕시립대에서 영화이론 박사자격증, 같은 대학에서 <1950년대 초기 팝아트와 뉴욕 미술 비평>을 주제로 미술사 박사를 취득했다. 복수 전공한 영화논문은 미술사와 연관된 주제였다. 지난 7월 6일 인터뷰를 했고 몇 차례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1922 ~ 2011)을 대표로 하는 1950~1960년대 영국 팝아트와 앤디워홀로 대표되는 미국 팝아트와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영국 팝아트는 스터디 그룹과 반(anti)귀족 그룹으로 나눠지지만 전체적으로 학구적이었다. 미국은 미술대학 진학률이 월등히 높아진 1950년대 작가들이 직접 잡지를 편집, 제작하는 등 생업을 위한 팝아트와 예술 팝아트로 나뉜다. 미국 팝아트는 영국 팝아트에 비해 체제 순응적이다.”
“최근의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등이 실험 미술을 표방하지만 맥락과 맥락을 연결하거나 이미 있는 현상들을 재해석하는 수준이다. 1950~1960년대 팝아트는 언어적 유희 등 선구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고동연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2000년 백남준 회고전을 앞둔 1997~1998년 ‘비디오 아트’ 리서치 큐레이터를 지냈다.
2011 동아미술제 전시기획 공모에서 공동 기획한 당선작 ‘여의도 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는 1960년대부터 당대까지 해외 나갔던 사람들이 국내로 반입한 물건들과, 여행·이주에 관련 작가들의 작업을 병치한 전시였다. 작품과 상품, 작가와 기획자, 미술관과 박물관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였다. 기획자가 확실하게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이끌었다는 평가였다.
고동연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작가들의 생업 문제, 미술 생태계에 관심이 많다. 예술인들이 본업(本業)과 생업(生業)을 넘나들며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2014년 전시 ‘응답하라 작가들’을 기획한 배경이다. 작가적 자유와 결혼의 상관 관계, 창작 스튜디오(레지던시)의 효율성 등을 질문하는 형식이었다. 이 전시를 2015년,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로 출간하였다. 동일한 관점에서 2016년, <Staying Aive 우리 시대 큐레이터들의 생존기> 공동 저작, 같은 해 <팝아트와 1960년대 미국 사회>를 단독 출간하였다.
경기 고양시 일산은 도시가 형성되던 초기부터 조각 도시를 표방했다. 고동연은 2017년과 2018년 커미셔너를 맡으면서 ‘고양 야외조각 축제’의 수준 향상과 확장을 도모하려고 했다.
2018년 1월 출간한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에서 고동연은1990년대 동아시아 젊은 작가들의 공통점으로 '예술대중화'를 끄집어 냈다. 일상성을 강조하는 소재, 유동적이며 독창적인 전시 공간, 실용성을 고려한 기획 방향으로 설명된다고 보았다.
2021년 『The Korean War and the Postmemory Generation(한국 전쟁과 후기억 세대: 동시대 미술과 영화)』(London: Routledge)를 출간했다. ‘포스트 메모리 세대’는 1950년대 한국전쟁과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체제 전환적인 사건의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에 대해, 이해당사자가 아닌 세대를 말한다.
군부 정권이 끝난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전쟁과 1960~1970년대 냉전에 대한 기억의 다양해진 태도를 살폈다. 12명의 젊은 세대 예술가와 영화 제작자가 사회 집단 공동체가 갖는 외상적 기억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
트리엔날레(triennale)는 3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미술 전시를 뜻한다. 밀라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이 있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당초 2013년 평창비엔날레 이름으로 격년마다 개최되다 2019년부터 트리엔날레로 명칭과 운영 주기를 바꿨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유산으로의 의미 전환이기도 하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는 지구의 환풍구로 불리는 ‘개미굴’을 모티브로 예술의 실천적 가치를 모색한다.
“예술 감독 공모 공고가 나고 미국, 일본, 베트남의 3인 커미셔너와 행사의 내용을 거의 다 정해서 프리젠테이션 했고, 그 결과로 선정되었다. 생태예술의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일상으로 환원해 보고자 한다.”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전은 지면 위가 아닌 지면 아래, 거시적인 게 아닌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생태계의 위치, 태도,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개미굴은 최재천의 책들을 읽으면서부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개미는 <종의 기원, 1859>을 쓴 찰스 다윈(1809~1882) 시대부터 생태학에서는 흥미로운 연구 주제였다.” 최재천은 월터 R칭클이 짓고 강현주가 번역한 <개미 건축> 추천평에서 일명 8대2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파레토 현상’이 개미 사회에 벌어지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군락 전체 일개미의 20퍼센트만 밖에 나와 일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지하에서 대기한다. 또한 방과 통로 두가지 요소만으로 일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각자 알아서 둥지 건축을 하는 ‘자기조직화 원리’에도 주목한다.
고동연 감독은 전시 방향과 더불어 작가, 관객, 스텝 등 모든 전시 참여자들의 태도와 자세를 언급한다.
“대지, 자연 등 생태를 다른 관점, 태도로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빛의 마술사라 불리며 건축적 설치 작가인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1943~ )도 작품 제작 및 설치를 위해 생태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나?”
개미굴에는 수평적이고 순환하는 구조로 위계가 없다. 개미 생태계는 약육강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메인 전시장을 개미굴처럼 연출했다고 한다. 지하부터 관람하며 차례로 위로 올라오는 구조이다.
전시는 아르헨티나 출신인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열기구(에어로센) 작품을 VR을 통해 체험할 수도 있다. 사라세노는 2020년 BTS와 '연결'을 주제로 한 글로벌 전시 <CONNECT, BTS>에 참여하였다.
사라세노는 프로젝트 <에어로센 파차, Fly with Aerocene Pacha>를 아르헨티나 북부 고원, 소금 사막 지대 살리나스 그란데스(Salinas Grandes) 원주민들과 협업하였다.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세계 최대 리튬 매장지이다. 리튬은 전기차 원가의 절반을 차지하는 밧데리 핵심 원료이다. 화학 공정인 반도체 생산에 대규모 공업용수가 필요하듯 리튬 채굴도 엄청난 양의 물이 소요된다. 궁극적으로 강을 막고 댐을 세워야 하는데, 인근의 생태계는 초토화된다. 누군가 누리는 유토피아는 다른 누군가의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강원트리엔날레의 전시와 행사는 오대산 월정사에서도 열린다. 고승이자 불교학자인 탄허(呑虛·1913∼1983)가 월정사에서 주석하던 곳 당호가 ‘방산굴’이다. 탄허의 법문은 이번 트리엔날레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명의 본체는 무형(無形), 즉 시공(時空)이 끊긴 자리이다. 생명의 본체는 무형이지만 그 본질인 씨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연을 만나 운행하게 되는 것이 생명이다."
한국미술계는 여성 평론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국내외 국제적 미술 행사의 예술감독 또한 으레 남성들이 맡는다.
고동연은 여성 예술감독도 전위적이고(avant-garde) 실험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1980년대 세계미술계에 페미니즘을 부각시킨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미국의 루시 리파드(Lucy R. Lippard, 1937~ ), 비평가·기획자·미술사가인 엘리너 허트니(Eleanor Heartney, 1954~ )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듯 하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는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를 주제로 22개국의 70여명 작가가 참여한다. 2024년 9월 26일 - 10월 27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일대 평창송어종합예술 체험관 등 다섯 곳에서 펼쳐진다. [뉴스버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월 ~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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