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평범함으로 잔혹한 참상을 고발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파격의 연속이다.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상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수용소 소장의 평범한 가족을 이용해 공포와 충격을 준다. 더불어 도입부와 엔딩 장면의 검은 화면과 여기에 겹쳐진 음산하고 기괴한 소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불편하면서도 낯선 이 음향은 영화 내내 지속된다.
담 하나 사이로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 존재한다. 루돌프 회스 소장 가족의 일상에 스며든 소음과 연기는 아우슈비츠 학살 현장을 연상시킨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유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의 무서움)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 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6월 5일 개봉 이래 7월 26일 기준 19만명 이상이 관람한 상태다.
평범함이 주는 두 가지 공포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과 달리 가해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원작이다. 소설은 사실에 기초하며, 루돌프 회스 중령이 실존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 속 회스 중령은 상상의 인물이다. 회스 중령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은 2가지 생각을 일으킨다. 보통 영화라면, 5명의 자녀와 함께 아름다운 강가에서 수영하는 모습은 지극히 평온하다. 그러나 이 가족이 거주하는 장소(아우슈비츠 수용소 담 너머)와 상황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담장 너머에서 총소리, 고통과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심지어 시체 소각장의 연기가 눈앞에 보인다. 하지만,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들의 생활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회스 부인(잔드라 휠러)은 한발 더 나아가 관사에다 평소에 꿈꾸었던 집을 구현한다. 마당에 형형색색 꽃을 심고, 비닐하우스 정원과 자녀를 위한 수영장을 만든다. 아이러니하게 유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사유 결여는 물론 타자에 대한 무관심,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일깨운다. 그리고 어쩌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준다.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악의 평범성’과 연결된다. ‘악의 평범성’이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결코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다”(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옮김. 2017).
이러한 끔찍한 환경에 반응하는 것은 어린 아기를 돌보는 유모와 회스 부인의 엄마뿐이다. 유모는 밤새 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시체 태우는 연기에 힘들어한다. 아기가 소리쳐 울어도, 그녀는 아기를 방치한 채 술을 마시면서 괴로움을 극복한다. 같은 시간에 회스 중령 부부는 쓸데없는 농담과 지난 여행 및 앞으로 갈 여행을 계획하며 시시덕거린다. 분명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지만 동일한 소음과 연기에 대한 반응은 천양지차다.
회스 부인의 엄마 또한 처음에는 딸 집의 풍요로움과 넓은 공간을 좋아했다. 하지만, 결국 그곳이 어디에 있고 사위가 하는 일을 알게 된 그녀는 밤에 몰래 도망간다. 가족 중 그녀만이 현실 자각이 있는 셈이다.
회스 부인이 동료 부인들과 하는 대화는 섬찟하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빼앗은 물건 중 값나가는 의류, 보석, 향수를 가져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나누고 소유하고 사용한다. 남이 사용하던 것을, 더욱이 강제로 빼앗은 것을.
혹시라도 찜찜한 마음은 없었을까? 부하들이 가져온 모피를 걸쳐보는 회스 부인에겐 어떠한 느낌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더 좋은 물건에 관심을 둔다. 더군다나 회스 부인은 그녀와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도 무자비하다. 그녀는 툭하면 남편에게 말해서 그녀들을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파격적 형식
영화는 시작하고도 한동안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검은 화면 위로 들리는 음산한 소리는 무척 거북하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도 다시 한번 화면을 블랙아웃(Blackout) 시킨다. 회스 중령의 통증과 동시에 영화는 다시 검은 화면이 되며 또 다른 괴상한 소리를 낸다. 관객은 회스 중령의 고통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각자 추론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강에 떠내려온 시체들의 재와 뼈에서 원인 모른 균이 침투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런 천인공노할 짓에 대한 천벌로도 예상한다. 무엇이 됐든, 갑작스런 그의 고통은 관객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후에 회스 중령이 어떻게 되었을지 각자의 상상에 맡기면서.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검은 화면을 본 적은 없는 듯하다. <코다>(2021)에서 청각장애자의 고통을 일깨우려 션 헤이더 감독이 고의로 소리를 없앤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 한 번뿐이었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수용소 내부의 잔혹한 상황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창한 날의 평범함을 가지고도 무서운 참상을 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힌트는 사전 지식 덕분일 수도 있지만, 소각장 회의를 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예측 가능하다. 시체 소각장 건설을 논의하는 그들은 그러한 시설을 짓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들은 비즈니스 논의를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탈색 장면은 또 다른 파격이다. 유대인의 노역 장소에 먹을 것을 감추어 두는 이 장면은 솔직히 사전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 장면을 부각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로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리암 니슨이 주연한 <쉰들러 리스트>는 약 1,000명의 유대인을 구해준 독일인 쉰들러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전형적으로 유대인 피해자 관점에서 홀로코스트를 바라본다. 따라서 이 두 영화를 <존 오브 인터레스트>같이 감상한다면 다양한 관점에서 홀로코스트를 좀 더 총체적으로 조명하는데 도움 될 것 같다.
홀로코스트와 별개로 현재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은 이스라엘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품게 한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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