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주요국 대사와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지인을 최근 어느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그분이 외교부 대변인이던 시절 홍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처음 교분을 맺었다. 코로나19 직전 외교부 산하 기관장을 맡고 있을 때, 모교 과동문회가 그 기관을 빌려 강연회를 한 덕분에 잠깐 또 인사했다. 이후 5년 만의 만남이다 보니 하는 일을 서로 주고받으며 얘기가 길어졌다. 그분이 광고의 중요성에 공감한다며 한 사례를 들려줬다. 외교관 시절에 보았던 카피 한 줄의 엄청난 위력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간 이들을 기리고, 일본군의 잔학상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행사가 10년 전 서울에서 열렸다고 한다. 행사의 표제어처럼 문 앞에 크게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단다.
I was there without me.
직역을 하면 ‘나는 거기에 있었지만, 나 자신은 없었다’라는 모순되는 의미였지만, 그 문장을 보고는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문장을 보거나 듣는 순간, 최소한의 역사 상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위안소’라 이름 붙인 그 참혹한 현장에 내 육신이 있었지만, 오직 몸뚱이만 있고 정신이나 영혼은 없는 상태였다. 영어로 ‘beside oneself’를 ‘정신이 나갔다’라는 식으로 쓰곤 했다. 교과서에도 나왔던 숙어인데, 이 문장 앞에서 장난스럽게 그 표현을 썼던 게 부끄럽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 문장은 2014년 3월1~4월1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공동 개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에 내건 제목이었다. 당시 포스터를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한글 제목이 헤드라인처럼 위에 있다. 아래에는 메인 카피처럼 핏빛을 연상시키는 색상에 날카롭게 찢긴 글자체로 ‘그곳에 나는 없었다’라고 쓰여 있다.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전시한 걸 생각하면 ‘그곳에 나는 없었다’라는 게 자연스레 반전으로 느껴질 수 있다. 원래 영어 문장인 ‘I was there without me’는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나는 있었는데 없었다’라는 문장상으로는 모순이지만, 실체로는 너무나 뼈 아픈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 전시회 직전 같은 장소에서 주목할 만한 국제행사가 있었다. 2014년 1월30~2월1일 진행된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Angoulême International Comics Festival)이다. 한국은 이 행사에 10편의 일본군 성노예(행사에서 영어로는 ‘comfort women’으로 표기) 만화를 출품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로, 당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개막 행사에 참여했다. 전시를 홍보하는 기자회견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페스티벌 조직위의 만류로 불발되었다고 한다. 이어 주한 일본대사관이 “일본 정부나 군대에서 그런 노동을 강요한 경우는 없었다”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걸 보면, 일본 정부의 반대 활동이 있었기에 기자회견이 무산되었던 것 같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한국이 내건 영문 표제는 달랐다.
The Flower That Doesn’t wilt(결코 시들지 않는 꽃).
의미 자체의 강렬함은 있으나, ‘I was there without me’가 전하는 아픔과 잔혹함을 담기에는 모자란 느낌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이 있던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태평양전쟁에서의 폭력과 비인간성을 제대로 교육하자는 취지로 ‘Pacific Atrocities Education(태평양 잔악행위 고발교육)’이라는 비영리기관이 창립되었다. 그 기관에서 2019년 인턴을 했던 친구가 소녀상 옆에 앉은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의 제목이 ‘What if it was me(그게 만약 나였다면)?’였다. ‘내가 있었고(I was there), 그런데 나는 없었고(without me)’ 라는 반전의 연속이 있었기에, 그 역사의 상처에 나를 넣어보고 생각하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으리라. [뉴스버스]
박재항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국내외 광고를 광고주와 대행사 양쪽에서 모두 경험하며, 변방의 싸구려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떠오르는 과정을 함께 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삼국지 키즈로 동양사를 학부에서 전공했고, 미국 뉴욕에서 대학원과 주재원 생활을 했다. 인문학과 글로벌 관점에서 마케팅을 연결하여 기획하고 해석하며, 대학 강의와 강연·기고 활동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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