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리얼뱅크시 전시, 서울 인사동 그라운드서울에서 10월 20일까지

지난 11일에 만난 윤재갑(56) 그라운드서울(Ground Seoul) 관장은 살짝 피곤해보이는 듯 하면서도 의욕만큼은 넘쳐 보였다. 8월 22일 새롭게 문을 여는 그라운드서울2.3,4층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브 사운드 이미지(Move - Sound - Image)’ 전은, 기존 지하 4개 층에서 진행중인 ‘리얼 뱅크시’ 전시와 함께 그라운드서울의 정체성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1층 아트리움은 자체 기획 전시를 하거나 주변 인사동의 맥락에 부합하게 끔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운영을 구상하고 있다.

윤재갑 그라운드서울 관장.
윤재갑 그라운드서울 관장.


그는 이처럼 서울 도심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견지동)의 지하, 지상 총 9개 층에 걸친 연면적 5,000㎡ 전시 공간의 수장이다. 그라운드서울은 대관을 포함한 상업갤러리 전시와 입장료, 아트상품이 주수익원인 큰 규모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구획한다.

윤재갑 관장의 이러한 사업 전략은 중국과 인도, 미국 뉴욕, 이태리 베니스 등에서 했던  전시기획자, 갤러리 경영자, 국가 대항 성격의 전시 커미셔너 경험에서 기인한다. 

윤재갑은 경북 영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서울의 대학 미대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전시기획자) 양성이 예술학과의 주 커리큘럼이었으나 관(官)은 학예사라는 틀 속에 가두려 하였고, 상업화랑에서는 커리어 축적 및 전문성 확보가 어려웠다. 진로를 좀 더 탐색하기 위해 1995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베이징 제 2외국어대에 등록해 어학을 배우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베이징시 동쪽 경계 송주앙에 ‘통다오(通道)’라는 카페 겸 술집을 열었다. 길이 통한다는 뜻의 ‘통도’는 윤재갑에게는 삶의 새로운 문(門)이 되었다. 쩡판즈(曾梵志· Zeng Fanzhi, 1964~ ) 왕광이(王广义· Wang Guangyi, 1959~ ) 팡리쥔(方力鈞· Fang Lijun, 1963~ ), 유에민쥔(岳敏君· Yue Minjun, 1962~ ), 쩡하오, 양샤오빈, 리우웨이 등 불과 10여년 후 중국 현대미술의 중추가 되는 이들이 위엔밍위엔(圓明園·원명원) 등에서 찾아왔다. 송주앙은 중국 최고의 미디어·영화 대학(광보학원)이 있고 관광객, 외교관, 외신 기자들도 드나드는 곳이었다. 윤재갑은 거의 매일 찾아오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자주 선심을 베풀었다. 점차 카페를 주시하는 공안 당국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인도 유학시절(1997~2000)의 윤재갑(맨 오른쪽) / 사진 제공 = 윤재갑
인도 유학시절(1997~2000)의 윤재갑(맨 오른쪽) / 사진 제공 = 윤재갑


윤재갑은 통다오 단골이던 인도 언론사 <Times of India> 베이징 특파원 소개로 1997년 인도 뉴델리로 갔다. 공항에서부터 특파원의 지인들이 마중 나올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타고르 대학 인도미술사 석사 과정을 다니며 3년반 동안 사회운동가, 뉴에이지 음악가, 철학 교수, 언론인 등을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1964~ )와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 1974~ ) 등의 작가와 인도를 대표하는 미술평론가 기타카푸르(Geeta Kapur, 1943~ )를 만나 교류하였다.

2000년 귀국한 윤재갑은 중국 개방초기, 작가들의 해외 시장 진출 교두보 역할을 했던 서울 아트사이드갤러리에 자리 잡았다. 2001년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전, 2002년 서울과 광주에서 중국현대미술전을 기획했다. 같은 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중국과 인도 미술의 혼종으로 볼 수 있는 앙코르와트 전을 기획했다.

이후 대안공간 루프의 공동대표를 맡아 경영에도 부심하였다. 중국 진출을 고려하던 아라리오갤러리(회장 김창일, 작가명 씨킴)의 요청으로 아라리오갤러리 고문을 맡았다. 고문료를 문화예술진흥원의 후원 지정 계좌로 받아 루프 경영에 보탰다.

윤재갑은 한국 미술 시장이 제도화하던 1990년대 후반에 맞닥뜨린 IMF경제 체제로 국내 작가들이 주류 미술 시장에서 결정적으로 배제되었다고 본다. 갤러리현대와 같은 1세대 상업갤러리의 작가군은 순전히 국내파여서 문제 없으나,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등 2세대 상업갤러리들은 해외 작가군 거래로  인해 일시적으로 삼성 등 재벌가 컬렉터들에게 환차익을 누리게 한 게 심리적으로 시장에 외국 작가 선호 흐름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가 됐다고 본다. 윤재갑은 해외에 체류했기에 또래 젊은 작가들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윤재갑은 2005년 한국과 아시아 작가군을 핵심 역량으로 삼고 있던 아라리오갤러리로 옮겨 2010년까지 총감독 및 대표이사를 지냈다. 중국과 (영어 사용하는)인도 작가들을 아라리오 전속으로 두고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 전략을 수립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관장이 윤재갑에게 전화를 걸어와 식사 약속 요청을 하였다. 수보다 굽타 전시를 하려면 아라리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잠시나마 세계 미술의 수도 뉴욕의 상징 모마와 한국의 상업갤러리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아라리오갤러리 총감독 시절(2005~2010)의 윤재갑. / 사진 제공 =윤재갑
아라리오갤러리 총감독 시절(2005~2010)의 윤재갑. / 사진 제공 =윤재갑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 중국 베이징 지우창 예술구에 아라리오베이징을 개관한 이래 지금은 상하이 지점을 두고 있다. 2007년 뉴욕에 진출하였으나 IMF로 오래 버티지 못하였고, 재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윤재갑은 2010년 중국 민생은행이 개관한 상하이 민생 미술관의 전시총감독이 되어 ‘플라스틱 가든’전을 진행하던 중에 2011년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임명을 통보받았다. 

2012년 중국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HOW Art Museum, 昊美术馆) 관장에 임명되었고 하오아트뮤지엄이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을 후원하였기에 그 해 베니스에서 중국관 오프닝 행사를 주관하였다.

하오아트뮤지엄은 2017년에야 개관하였다. 당초 당국과 상하이 문화특구안에 민관합작, 무관세 적용 조건으로 3년여를 추진하였으나 끝내 무산되었다. 윤재갑은 이 기간 동안 미술관 건축과 학예시스템 구축에 힘썼다.

2017년 중국 상하이 하우아트뮤지엄 개관 행사. / 사진 제공 = 윤재갑
2017년 중국 상하이 하우아트뮤지엄 개관 행사. / 사진 제공 = 윤재갑


개관전으로 준비한 백남준(1932~2006), 요셉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2인전은 2018년에야 ‘선지자의 편지’(Letters du Voyant : Joseph Beuys×Nam June Paik)라는 타이틀로 선보일 수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요셉 보이스가 당대 독일 신문을 지문(오브제)으로 활용한 작품이 있었다. 중국 당국은 오브제인 독일 신문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하라고 요구하였다. 윤재갑은 상하이의 독일어 번역회사 7곳을 동원 모든 내용을 번역, 두터운 책 한 권 분량을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시진핑 체제가 시작된 후 중국은 미술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중국은 디자인이나 추상 작품만을 전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후퇴했다. 중국미술의 상징이었던 베이징 798예술특구도 쇄락했다.”

중화주의에 따른 외국 작가 배척이나 고율의 작품 거래세는 중국 미술에서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이다.

윤재갑은 2013년과 2014년 서울과 항저우에서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순회 전시를 기획한데 이어 2015년 베이징에서 한·중 현대미술 교류전인 '이스트 브리지 2015- 플라스틱 가든'전을 기획하였다.

윤재갑은 2015년11월, 2016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지명받았다. 한중일 3국 아방가르드를 주제로 전시 준비에 주력하던중 방만한 경영을 일삼던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 1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일환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한 시대를 웃다!(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를 타이틀로 유에민쥔의 대규모 전시를 가졌다.

2020년 서울 전시, 유에민쥔과 함께 / 사진 제공 = 윤재갑
2020년 서울 전시, 유에민쥔과 함께 / 사진 제공 = 윤재갑


매체(장르)로서의 회화는 기록의 역사가 되며 그 기록이 냉소가 되기도 한다. 리 시엔 팅(栗宪庭, 1949~ )은 1989년 톈안먼사태 이후의 중국 미술의 특징을 "정치적 팝아트"(Political PopArt)와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로 요약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무력감을 냉소와 허무, 정치적 풍자라는 코드로 녹여냈다. 가오밍루(高名潞·Gao Minglu, 1949~)는 사회·정치적 메시지에 치중한 중국 미술을 아방가르드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유에민쥔은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대표 작가이다.

"저는 웃는 얼굴이 아주 복잡한 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기쁨, 슬픔, 그리고 교활, 고통도 있죠. 뜻이 아주 깊다고 생각합니다.”(유에민쥔, KBS인터뷰)

전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흥행이 부진했고, 전시기획사와 투자자는 어려움에 처했다. 애초 유에민쥔 요청으로 커미셔너를 맡았던 윤재갑은 기획사와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판화(+국내 판화 공방과 콜라보) 및 이미지가 전사된 도자기(+최지민 도예가와 콜라보)를 제작하였다. 2023년 9월에 한국에 진출한 중국의 탕컨텀포러리 서울 청담동 유에민쥔 전시에도 커미셔너로 참가하였다.

리얼 뱅크시 전시 포스터. / 제공 = 그라운드서울
리얼 뱅크시 전시 포스터. / 제공 = 그라운드서울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등 한국의 관미술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학예직들이 정규직화하면서 짧은 임기만을 보장 받은 비정규직 관장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사례를 지적한다. 전시의 최소 30% 이상을 전문성이 있는 외부 큐레이터에게 맡길 수 있어야 조직의 관료화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도 그라운드서울의 지상 2개층의 전시 운영은 외부 기획자에게 맡길 계획이다.

그는 가족 중심의 상업갤러리 경영도 자체 전시 공간에만 머물지 말고 전문가, 투자가들이 모이는 아트컴퍼니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다.

윤재갑표 ‘리얼 뱅크시’ 전시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거리(견지동) 그라운드서울에서 10월 20일까지이다. [뉴스버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월 ~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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