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패자 비난보다 재기 기회 부여
한국, 대학 입시에 인생 걸어

미국 3000여 대학 캠퍼스가 9월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일제히 개강했다. 지난해 3월 코로나 확산으로 재택수업으로 바뀐지 1년6개월만이다. 1년간 휴학(gap year)을 감수하고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재학생들도 상당수 복귀했다.

한국이 3월 봄철 개학인데 비해 미국은 가을학기가 출발점이다. 유치원부터 한국보다 1년(더 정확히 표현하면 반년) 빨리 진학하는 셈이다. 인생에서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캘리포니아주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12월1일이 입학 기준일이었지만 몇년전 교육청에서 9월1일로 앞당겼다. 즉 8월31일 태어난 학생이 그 또래에서 가장 어리고 9월1일생이 가장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이때문에 각 주별로 생일이 늦은 경우 만17세에 대학 입학, 만21세에 학부 졸업장을 따고 30세전에 박사학위를 끝마칠수도 있다. 

지난 8일(한국시간) 방문한 LA의 사립 남가주대(USC)에서는 백신 접종 확인 및 발열 검사를 QR코드 확인후 입장시키고 있었다. 학교 일간지 '데일리 트로잔'은 "코로나 검사 인원이 부족하고 학교에 들어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대체적인 교내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연 평균 7만달러가 넘는 비싼 등록금(사립대 기준)을 내고도 집에 처박혀 인터넷 줌으로 학점을 따야하는 신세에서 벗어난 것만해도 고맙다는 여론이 높다.

노동절 연휴 이후 캠퍼스에 복귀한 남가주대(USC) 재학생들이 8일(한국시간) 학교의 상징인 트로잔 동상이 위치한 메인 광장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봉화식 LA객원특파원)
노동절 연휴 이후 캠퍼스에 복귀한 남가주대(USC) 재학생들이 8일(한국시간) 학교의 상징인 트로잔 동상이 위치한 메인 광장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봉화식 LA객원특파원)

미국 젊은이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때 한국보다 빨리 공부를 마치고, 빨리 사회에 진출한다. 시간을 잡아먹는 군 복무 의무가 없는 탓이다. 미국 역시 1973년까지는 한국처럼 징병제였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도 전성기때 독일 탱크부대로 징집됐으며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을 위한 입영을 거부, 타이틀 박탈과 함께 감옥생활까지 했다. 비록 나중에 벌충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당시에는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봤다. 한때 36개월이던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었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병역의무가 부과된다. 가수 유승준 파동이 증명하듯 아무리 짧은 기간일지라도 군대를 기피하려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군대생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영화가 나오고 상관의 여군에 대한 갑질도 끊이지 않는다. 사병 부식비를 떼먹는다는 기사도 되풀이 된다. 전문직으로 대우해주는 모병제 전환을 검토해볼 시점이라는 여론도 커진다.  

재수-삼수를 하거나 전학하고, 전공을 바꾸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군대 의무를 마친뒤 첫 취업하려면 어느덧 30줄로 접어드는 것이 21세기 한국 남성의 현실이다. 한창때인 20대에 미국과 10년 가까이 출발선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일단 나이 제한을 초과하면 대기업에 공채 수습사원으로 입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극소수 고시-공무원-교직원 시험 합격자와 정년 테뉴어를 확보한 교수층만 65세까지 안심하는 예외라고 할까.

반면 빨리 졸업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없는 미국학생들은 방학때 여행을 다니거나, 파트타임 구직활동으로 또다른 사회를 경험한다. 5-6년만에 학위를 마치는 느긋한 그룹은 '수퍼 시니어'라고 칭한다. 가수 존 덴버는 "노래 불러야 한다"며 애써 입학한 멀쩡한(?) 텍사스대학을 때려치우기도 했다.  

지난달 폐막한 도쿄올림픽 유도-야구-태권도 종목에서 repechage(레페샤지:패자 부활전)라는 자막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프랑스어에서 파생된 영어 단어이기도 하다. 미국은 평생 레페샤지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실패자에 관대한 사회다. 파산해 신용불량자가 되어도 7년이 지나면 다시 재기할수 있다. 금융권에서 다시 돈을 꿀수 있다. 회사에서 잘려도, 나이가 많아도 이직할 곳이 있고 조건보고 차별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 회사는 성별-외모-체격-종교-출신지 등을 이유로 노골적으로 차별할 경우 고소장이 날아올 각오를 해야한다. 대입 영어-수학 전국 수능시험인 SAT와 ACT도 여러번 치를수 있다. 가장 좋은 점수를 골라 대학교에 제출한다. 0.1점 차이로 낙방하는 경우도 없다. 반면 대학 입학사정 당국의 재량권은 정말로 크다. 최악의 열등생을 돈 받고 뒷문으로 들여보낸뒤 합법적 '기여 입학제'라고 말한다. 그 돈으로 가난한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정원외 입학 개념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도통 이에대해 따지는 사람이 없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궁금해진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대한민국은 수능 당일 지각하거나 몸이 아파 빠지면 1년을 통째로 날려야 한다. 만18세 대학입시 결과에서 인생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안 룰렛처럼 인생이 하루에 내걸린 위태한 모험이다. 어떤 법무장관 부부처럼 자녀 서류 스펙을 과장-위조해 무리수로 명문대에 집어넣은 이유가 설명된다. 한국식 만민 평등주의 입시 제도 아래서는 안산, 신유빈도 서울대 양궁학과-탁구학과 입학이 불가능할 것이다. 1500억달러를 벌어들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하버드)와 메이저 대회 15승을 달성한 타이거 우즈(스탠포드)는 2년만에 명문대를 중퇴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향해 '고졸 출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도 노력은 하지 않고 평생 명문대 출신임을 강조하는 갑질(bossing around)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미국 사회라고 단점이 없을까. 그렇지만 북미지역 합리주의는 엘리트축에 들지 못하는 기자 같은 일반인에게 상대적으로 낫다는 생각이다. 간판보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현장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평가가 그것이다. 쥐만 잘 잡으면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뿐 아니라 도둑 고양이에 심지어 시라소니까지 용인하겠다는 파격적 발상의 대전환인 셈이다. 객관식보다는 주관식, 임명직보다는 선출직이라고나 할까. 또한 애플-아마존-구글-페이스북-야후-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북돋는 방식이기도 하다. 답이 한가지뿐인 사지선다 시스템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짧지않은 인생을 살다보면 결과를 보장할순 없지만 과정은 바꿀수 있을 것이다. 인간지사 새옹지마-전화위복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 방식이 옳고 어떤 스타일이 좋을지 여부는 결국 개개인의 판단에 따른 선택일 것이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봉화식은 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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