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관련 자료 삭제, 공용전자기록 손상죄 인정

공수처, PC포맷 등 고발사주 증거인멸 수사 속도낼 듯

민주, 공용전자기록 손상죄로 공수처에 검사들 고발

2019년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월성 1호기’ 원전 조기 폐쇄와 관련된 ‘청와대 보고 문건’ 등을 삭제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산업통상자원부 국·과장급 공무원 등 3명에게 지난 9일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산자부 공무원들의 자료 삭제 행태는 고발사주 사건에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의 증거인멸 행태를 보는 듯 딱 빼닮았다. 

고발사주 사건을 수사했던 공수처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의 증거인멸 행위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고발사주는 2020년 제20대 4.15 총선을 앞두고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비판적인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고발해달라는 고발장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전달한 사건이다.

대검찰청.
대검찰청.

1. 월성 원전 자료 삭제 빼닮은 고발사주 자료 삭제

뉴스버스는 2021년 9월 2일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를 특종 보도했는데,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은 당일 야간에 PC 25대를 포맷(초기화)한 사실이 고발사주 재판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전부 불과 10~15일 전에 교체된 새 PC들이었다.

월성 원전 조기폐쇄 관련 자료들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삭제됐다면, 고발사주 관련 문건들은 대검 감찰과 수사를 염두에 두고 삭제됐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한 직후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강한 자기장을 이용해 데이터를 삭제(디가우징)했다. 또 카톡·텔레그램 등 메신저를 탈퇴하고 휴대전화 복구를 막기위해 안티 포렌식앱까지 설치했다. 국·과장이 자료 삭제를 지시하자, 서기관은 일요일 밤에 자신의 사무실도 아닌 곳에 들어가 다음날 새벽까지 관련 자료 530건을 대거 삭제했다. 

고발사주 보도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 역시 감찰에 직면하자 PC 저장장치 포맷을 통해 자료 삭제를 했을 뿐만 아니라, 메신저 탈퇴와 통화 내역 삭제를 하고 산자부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안티 포렌식 앱을 깔았다. 원전 자료 삭제가 일요일 밤에 이뤄졌 듯 고발사주 사건에서도 자료 삭제를 위한 포맷 작업은 밤에 진행됐다.

뉴스버스에서 고발사주 보도가 나온 당일 김오수 당시 검찰총장은 대검 감찰부에 수사정보정책관실 PC의 저장장치(SSD)를 확보하라고 지시했고, 대검 감찰부는 수사정보정책관실에 저장장치 제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은 감찰부에 저장장치를 넘기기 전 수사정보정책관실 컴퓨터가 아닌 다른 컴퓨터를 이용해 고발사주 보도 당일 야간에 긴급하게 PC들을 포맷한 것이다. 이 때문에 두 달여 뒤인 11월 15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압수수색에 나선 공수처는 기록 삭제 사실만 확인했을 뿐, 관련 자료는 확보하지 못했다.

법원은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청와대 보고 문건 삭제를 지시하거나 방조한 국·과장과 자료 삭제를 수행한 서기관들에게 공용전자기록 손상 및 감사원법 위반(감사 방해) 혐의를 인정했다,

이들은 감사 방해 고의가 없었다거나, 심지어 자료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삭제이기 때문에 감사 방해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 ‘최종본이 아닌 중간본이라 공용전자문서가 아니다’ ‘직접 작성하지 않은 참고자료라 공용기록으로 볼 수 없다’ ‘다른 직원의 PC에 삭제된 내용과 동일한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공용전자기록 손상이 아니다’는 갖가지 논리로 삭제한 문서가 '공용전자기록이 아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이 역시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이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발사주’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이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발사주’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2. 월성 원전 자료 삭제 적용 공용전자기록 손상죄 고발사주에도 해당

원성 원전 자료 삭제 가담 공무원에 대한 공용기록손상죄 인정은 고발사주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검사와 수사관들의 행위에도 넉넉히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야간에 PC 25대를 포맷했다는 내용이 지난해 12월 19일 뉴스버스 단독 보도로 드러나자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성모 검사(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와 임모 검사(현 창원지검 소속)를 공용전자기록 손상 및 증거인멸 혐의로 공수처에 지난 12일 고발했다. 고발사주 사건으로 유일하게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당시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 검사(현 서울고검 송무부장) 역시 피고발인에 포함됐는데, 혐의는 공용전자기록 손상 교사 및 증거인멸 교사다. 

공용기록손상죄(형법 141조)는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 또는 은닉하거나 효용을 해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용기록손상죄 외에도 당시 검사들이 수사관들에게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면, 직권 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손준성 검사는 지난 16일 고발사주 재판에서 “PC 25대가 포맷됐다는 언론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고 부인했다. 앞서 임 검사도 기자들에게 “PC 25대 포맷 사실은 명백한 허위다”면서 “(포맷 작업이 찍힌) 동영상의 경우 대검 감찰을 앞두고, 과거에 포맷돼 별도 보관돼 있던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는 파일이 없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해 직접 찍어 남긴 것으로 (자료를) 삭제한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감사 방해와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했던 항변들과 닮았다. 

하지만 PC 25대의 포맷은 임 검사의 휴대폰 포렌식 과정에서 당시 포맷 작업을 찍어놓은 동영상과 사진파일이 발견됨으로써 드러난 사실이다. 또 고발사주 보도 직후 초기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정모 수사관은 손 검사에 대한 재판에 나와 "(임 검사 휴대폰) 사진에 찍혔 듯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검사가 컴퓨터를 분리한건 굉장히 이례적이기 때문에 수사 검사에게 말해줬다"고 증언한 사실도 있다.

공수처는 당초 고발사주 사건을 수사하면서 총선개입에 초점을 맞춰 손 검사만 불구속 기소하고, 자료 삭제 지시(공용전자기록손상 지시)나 자료 삭제 행위에 대해선 별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  

고발사주 증거인멸 행태와 꼭 빼닮은 원전 조기 폐쇄 자료 삭제에 대해 공용전자기록손상혐의 유죄 판결이 내려진 만큼, 공수처도 민주당이 고발한 이들 검사들의 고발사주 증거인멸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저작권자 © 뉴스버스(Newsvers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