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방안, 중대선거구제 중 ‘가장 소극적'

2인 선거구 걸러내면 현행보다 비례성·다양성 커져

이탄희·박주민의 ‘대선거구 개방형 비례제’ 참고해야

이재명, 비례대표제 강화 방향…중대선거구제 부정적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라는 화두를 꺼냈다. 뜻밖의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선 공약과는 무관하게 개인 소견임을 전제로 “정치를 하기 전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해왔다”고 밝혔다.

중대선거구제는 선출 인원과 선출 방식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 윤 대통령은 한 선거구에서 ‘2~4인’을 뽑는 제도를 시사했다. 선출 방식은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의 현행 기초의원 선거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별 후보의 득표만 따져 당락을 가르는 제도’(단순다수제)일 공산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2023년 새해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2023년 새해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대통령실)

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각각의 중대선거구제 방안이 어떤 성질을 지니는지 가늠하려면, 중대선거구제의 선출 인원 및 방식에 관해 다음과 같은 원리를 참고하면 된다. 첫째,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의 비례성은 커진다. 득표율에 걸맞게 의석이 배분되려면 의석수가 많아서 나눌 여지가 커야 한다. 

예컨대 모든 지역구에서 지지율이 각각 40%, 30%, 20%, 10%씩 나오는 A, B, C, D당이 있다고 치자. 1인 선출 선거구(소선거구)에서는 1등인 A당이 의석을 독차지한다. 40% 지지율로 100%의 의석을 가져가는 것이다. 2인선거구에서는 A당과 B당이 한 자리씩 나눠가진다. C당도 1석을 가지려면 3인 선거구는 되어야 한다. D당이 1석을 받으려면 대략 5인 이상은 선출해야 하고, 1석을 확실히 받으려면 10인선거구는 되어야 한다. 

비례성 제고 차원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는 논자 상당수는 2인선거구제를 거부한다. ‘소선거구보다 못한 최악’이기 때문이다. 2인 선거구제 상태에서 위에서 예시한 정당 구도가 펼쳐져 있다면, 지지율 40% A당과 지지율 30% B당은 득표력 격차에도 불구 전체 의석을 딱 반반으로 나눠갖는다.  제3당 이하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요컨대 비례성이 떨어지고 다당제 견인 효과도 없다. 이렇게 구성된 50 대 50의 의회 구도는 ‘외나무 다리 위에서 염소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박는 형국’이 되기 쉽다. 윤 대통령은 ‘2인 선거구’도 용인하고 있다.  

둘째, 개별 후보의 득표만 따져 당선자/낙선자를 가리는 것(단순다수제)보다 정당 지지율에 맞춰 각당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이 비례성이 크다. 후보 개별 득표만 따지면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 어떤 정당은 지지율이 높은데도 일부 후보에게 표쏠림 효과가 커서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가 저조하다면, 지지율만큼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며 지지율이 더 낮은 정당보다 의석수가 적을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지지 정당과 후보를 동시 표기하게 해서(‘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지지 정당만 표기하는 제도는 ‘폐쇄형’이라 부른다), 정당 지지율로 각당에 의석을 배분하고, 의석을 배분받은 정당은 같은 당 후보자들의 개별 득표를 확인해서 당락을 가려야 한다. 

가령 어느 10인선거구에서 '에스파당'의 네 후보인 닝닝, 지젤, 카리나, 윈터가 각각 6%, 5%, 4%, 3%를 득표했다. 에스파당 지지자가 특정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에스파당’ 칸에 투표한 경우는 2%였다. 이러면 에스파당 차원의 득표율은 20%이고, 이 선거구에서 에스파당의 의석수는 2인이다. 후보가 넷이니 둘은 당선, 둘은 낙선인데, 후보자 개별 득표를 기준으로 닝닝과 지젤은 당선이고, 카리나와 윈터는 낙선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제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셋째, 지역구 외의 의석을 어떻게 배분하는지도 관건이다. 중대선거구제라 해도, 모든 의원을 단일선거구에서 뽑지 않는 한,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역구 외 의석으로 보정을 해줘야 한다. ‘보정’이란 지역구 의석수가 득표율 만큼의 의석수에 못 미치는 정당에게 지역구 외 의석을 우선 배분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연동형’이다.

전국경실련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양당정치 타파'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국경실련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양당정치 타파'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중대선거구에서 선출 인원이 적을수록 보정용 의석은 많이 필요하다. 스웨덴에서 보정 의석 비중은 10%를 갓 넘기는 수준이다. 왜냐, 스웨덴은 한 선거구당 선출 인원이 평균 12명 가량이므로 지역구 선거의 비례성이 이미 높아서 보정용 의석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윤 대통령 말대로 2-4인 선출 수준이면 보정용 의석 비중을 스웨덴보다 훨씬 더 많이 둬야 비례성을 맞출 수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복안까지 제시 혹은 암시하지는 않았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윤 대통령이 거론한 ‘2-4인 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 중 가장 비례성이 떨어지는 '가장 소극적인 중대선거구제'다. 민주당 이탄희, 박주민 의원 등이 제안한 제도와 견줘보라. 이들은 5인을 초과하는 인원을 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2인선거구를 최소화하고 3-4인선거구 위주로 편성한다면? 비례성 확대와 다당제 견인 효과로 치면 현행보다는 낫다. 소선거구제에서 한 정당이 타정당보다 살짝 높은 득표율로도 여러 의석을 석권하는 현상은 방지된다. 영남이나 호남의 경우, 그 지역에서 패권을 행사해온 정당은 3~4석 중 한 석은 다른 당에게 내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이 길을 얼마간 열었다.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논의를 활성화하고, 소선거구제를 전제하는 편견을 깬 효과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대선거구제 아닌 비례대표제 강화’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는 개념 오류이자 논점 이탈이다. 중대선거구제 역시 비례성을 강화하는 데다가, 지역구에서부터 정당명부 비례대표 방식을 쓰는 걸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멀리갈 것 없이 이탄희 의원이나 박주민 의원이 대선거구제-개방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이재명 대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소선거구제를 존치시키면서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것도 좋은 방안일 수 있지만, 여러 한계와 딜레마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는 불비례성이 심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비례성을 올리려면 보정용 의석이 많이 필요하다. 대선거구인 스웨덴의 보정용 의석 비중이 10%를 갓 넘기는 데 반해, 소선거구인 독일은 보정용 의석이 최소 50%나 된다. 독일식 선거제도를 한국에 최대한 적용하려면, 1)지역구 의석수 줄이기 2)전국구 비례대표 의석 늘리기 3)의원 정수 늘리기 중에서, 하나 이상을 해야 한다. 그 어느 것도 쉽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비례성을 올려 ‘죽은 표’(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정치성향이 의회 구성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도는 여러가지가 있다. 열어 놓고 토론하자. 벽두에 중대선거구제 화두를 던진 윤 대통령이나 지난 대선에서 다당제 정치개혁을 공약한 이 대표는 논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정확한 개념과 용어를 쓸 것', '같은 목적을 놓고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인식하고 언급할 것' 등을 유념한다면 최종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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