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일
고경일

주(周)나라의 10대 왕에 오른 려왕(厲王, ? ~ 기원전 828년)은 권좌에 앉자마자, 간신배인 영이공(榮夷公)을 중용하며 폭정을 자행했다. 국부를 전부 왕실에만 축적하는 일에만 힘쏟고 나라을 평안하게 다스리는 일엔 무관심했다.

당연히 려왕의 학정에 신물이난 백성들과 관리들 사이에서 평판이 떨어지고, 나쁜 소문이 돌았다. 려왕은 소주(小周)의 제후 소목공(召穆公)을 불러 물으니 소목공이 말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防民之口, 甚于防川). 냇물을 둑으로 막았다가 터지면 다치는 사람이 훨씬 많아 질것입니다.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냇물을 위하는 자는 물이 잘 흐르도록 물길을 터 줘야 하고, 백성을 위하는 자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

독선에 빠진 려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위나라에서 무당을 모셔와 그가 내놓는 점괘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고, 불만 품은 백성들을 색출해 처형 했다.

잠시 조용해지자 의기양양 해진 독재자는 태평성대가 열렸다며 자화자찬 했지만, 참다 못한 백성들이 ‘난’을 일으켰고 그 혁명이 성공해 독재자는 왕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고사는 ‘국어의 주어(周語)’편과 ‘사기의 주본기(周本紀)’편에도 나와 있다. 여기서 유래한 '방민지구심우방천(防民之口甚于防川)’은 백성들에게 말 할 자유를 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폭력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사용하고 있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안타깝다. 

지금도 그짝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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