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최고상) 수상작

스페인의 과수농가 풍경에서 떠올려지는 한국 농촌 

스페인 영화에 이렇게 공감할 줄 몰랐다. 마치 우리 농가(농촌)의 현실을 보는 듯했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스페인 영화감독 카를라 시몬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한 과수농(복숭아) 가족의 이야기다.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충격 속에 대가족 구성원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문화차이 대신 깊은 유대감이 느껴진다. 주어진 거대한 임무의 완수도, 슈퍼히어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시각 및 특수효과도 없지만,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준다. 보편적인 서사의 위대함을 예시하는 영화다.  

출처: 영화사 진진
출처: 영화사 진진

영화는 보편적이면서도 문화적 특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한 영화가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포함할 수 있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을 보면서,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알카라스의 여름>(2022)에도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한다. 3대째 지켜온 복숭아 농장을 3대가 함께 살면서 꾸려간다. 비록 현재는 가족의 도움을 받긴 어렵지만, 과수 농가의 어려움과 그 가족 간의 갈등은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레리다(Lérida) 근처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했고, 그 지역 사람들이 직접 출연한다. 카를로 시몬 감독은 1년에 걸쳐 출연진을 캐스팅했다. 영화 캐릭터에 잘 맞는 후보를 찾기 위해 마을의 주요 행사를 다 찾아다녔다고 한다(Mayorga, Emilio. (2022, 10. 15). ‘Alcarràs’ Director Carla Simón On Harvesting Peaches, Learning From Each Film. Variety). 

여기에 그들의 언어(카탈루냐어)로 대화하면서 그 지역의 특수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전문 배우로 이루어진 키메트 가족은 완벽한 실제 가족처럼 보였다. 스페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에게 모든 풍경과 등장인물, 심지어 복숭아마저도 새로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매우 익숙했다. 

출처: 영화사 진진
출처: 영화사 진진

평범한 대가족의 일상사에 잘 스며든 과거와 현재

복숭아 과수원에는 키메트(조르디 푸졸 돌체트)의 부모, 키메트 부부와 그들의 세 자녀 3대가 살고 있다. 일꾼이 부족하자, 복숭아 수확을 돕기 위해 키메트의 두 여동생과 그들 가족까지도 일손을 돕는다. 이 집에서 결정권자는 키메트다. 마치 옛날 가부장제 한국의 전형적인 고집불통의 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키메트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일을 돕기 어렵다. 키메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복숭아를 재배하면서 생계를 꾸려왔다. 한국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아들이 힘든 농사일을 물려받는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들은 공부엔 관심이 없고, 농사일에 관심이 더 많고 잘한다. 여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생긴다. 

출처: 영화사 진진
출처: 영화사 진진

어느 날 키메트 가족에게 험난한 일이 닥쳐왔다. 스페인 내전(1936-1939)중에 키메트의 조부가 농장주였던 피뇰의 가족을 숨겨준 댓가로 땅에 대한 경작권을 얻었다.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원래 농장주의 손자가 자신의 땅임을 주장하며 땅을 비워주길 강요한다. 그는 복숭아 재배 대신 그곳에 태양광 전지를 깔아 태양광 사업을 하길 원한다. 태양광 사업에 동의하면 키메트는 태양광 전지를 관리하면서 거기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평생 해온 복숭아 재배를 고집한다. 복숭아 가격 하락에 맞서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키메트 집 주변에 깔리는 태양광 전지를 보면서, 한동안 우리나라에 불어닥쳤던 태양광 사업 열풍이 생각났다. 태양광 사업으로 인해 4년동안 논밭 2,708만평이 사라졌다고 한다.(2022년 2월8일 중앙일보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대부분 임차농인 농부들은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싶어했지만, 토지 주인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땅을 태양광 사업자에게 임대하거나 팔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저 멀리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다니 놀랍다. 

영화 첫 장면부터 귀여운 세 명의 아이들이 버려진 차 안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키메트의 딸 이리스(아이네트 주누)와 둘째 여동생의 쌍둥이 아들이다. 하지만, 태양광 사업에 대한 어른들의 의견 불화는 이들의 만남을 방해하고, 같이 놀 수 없게 만든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혼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인간사란 정말 장소와 시간과는 관계가 없어 보였다. 형제간의 갈등, 시누이와 올케, 처남과 매부 간의 갈등은 어디나 존재하는 듯 하다.

출처: 다음영화
출처: 다음영화

키메트가 생계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터지는 중에도 자식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한다. 아버지가 자신과 고모부가 같이 기르던 대마초를 몰래 불태우자, 아들 로제르(알베르트 보쉬)는 물길을 일부러 바꾸지 않아 복숭아밭이 진흙탕이 된다. 딸 마리오나(세니아 로제트)는 아버지와 다툰 후 고모가 떠나는 것을 보고, 열심히 연습한 공연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랬던 자식들이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선, 땅 주인집에 몰래 찾아가 그들이 잡은 죽은 토끼를 두고 온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종의 되갚음이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영화를 매우 현실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변화의 바람을 막을 순 없지만,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라고. 

<알카라스의 여름>은 올해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최고상)을 수상했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작품이기도 하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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