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나의 이웃이 그림이 되어' 강원 평창군 봉평면 '소계갤러리'서 내년 1월 31일까지

미국의 작가가며 아나키스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그의 명저 ‘월든’(Walden)에서, ‘은유 없이 말하는’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임의적이며 추상적인 인간의 언어를 거치지 않은 풍경, 소리, 냄새 따위의 매개되지 않은 자연의 실체를 가리킨다.

Shine(야생화) 194×112cm Oil on canvas 2018 / 제공 = 정옥화 작가
Shine(야생화) 194×112cm Oil on canvas 2018 / 제공 = 정옥화 작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그의 작품과 자연속 생애는 오늘날 ‘생태 중심적’이라는 재평가를 받는다. 강원도 내린천 주변 야생화를 대상으로 한 작가 정옥화의 작품과 삶 또한 생태적이다.

작가는 사생도 하지만 야생화 풍경을 정물처럼 그린다. 창작의 목적으로 편평한 플라스틱 통에 꽃들을 옮겨 셋팅한 후 구도를 만든다. 건축가가 도면을 바탕으로 모형을 만들어봐야 숨은 공간을 찾아내는 이치와 같다.

어차피 완벽한 사생이란 없다. 바람, 비, 강한 햇볕 등이 현장 작업을 어렵게 만든다. 시각적 언어의 표현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서 장치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는 모든 것이 이미지화 되어 있다. 그럴수록 실재를 찾아나서 원초적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요구된다. 정옥화의 야생화는 자연의 대지와 인간의 도시적 삶을 매개한다. 온실에서 재배한 꽃들과는 다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작업 방식이, 대상이 관객에게 관객이 대상에게 상호작용하는 시선을 결정하기도 한다. 

정옥화 작가는 캔버스를 완전히 바닥에 눕히지 않고 허리 아래 높이 테이블 위에 뉘여 놓는다. 평면 캔버스에 드러난 야생화는 땅이 원래 가진 구배(勾配·gradient)를 그대로 반영해 피어있다. 중간중간 구도와 착색을 점검하기에도 좋다.

벽면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그러한 야생의 가운데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경작지로 변한 보리밭 같은 대상지(對象地)는 회화적으로는 더 이상 야생이 아니다. 

애초 동영상으로 작업한 인물들을 평면 회화로 옮겨온 작품들에게서 수직적(vertical) 공간 리듬이 갖는 아우라가 풍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작가가 야생에 나가 허리 둘레쯤에서 식물들을 관찰하고 표현한 듯한 작업 방식은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을 꿰뚫어 본질을 묘사하는 전형(典型)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려는 이미지는 작가의 머리 속에 인식되고 체화되어 작업으로 구현된다.

어디에 있니 너 194×132cm 아크릴 순지, 캔버스 2018 / 제공 =정옥화 작가
어디에 있니 너 194×132cm 아크릴 순지, 캔버스 2018 / 제공 =정옥화 작가

정옥화의 반추상 또는 추상 계열의 작품들 또한 야생화 시리즈처럼 작가의 정체성, 작품의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운 무념(無念)의 세계를 추구한다. 작품의 모티프는 ‘자연의 언어’에서 출발한다. 

칸트(Kant, 1724~1804)는 ‘개념’에 대해 말한다. “감각적 직관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감각적 직관은 맹목적이다” 

인간은 언어를 갖게 되면서 개념이 생겼다. 언어는 어떠한 사물과 그 과정의 본질적인 특징을 포착한 개념을 실어 나르며 개념은 인간의 감각에서 나온다. 

인간의 감각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으로 해석한다. 시각은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의 세계인 망막에 투영된 결과이다.

우리는 자연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하다.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1918~1988)은 세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연이라는 여성은 단순하지만 대단한 미인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다. 그녀와 데이트하고 깊은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싶으면 그녀가 쓰는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정옥화의 작품은 자연의 언어로 말한다. 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쉼 없이 흐르는 내린천의 물 소리가 들린다. 꽃에서 꽃으로 가는 나비가 갈지(之)자를 그리며 팔랑대며 날아다니듯 한다. 추상의 그림에서 물 소리가 들리고 나비가 나는 게 보여야 자연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구상의 흔적이 남은 반추상보다는 모노톤의 작품들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모노톤도 화폭 속 대상과 대상의 경계를 지우고 관계를 설명한다. 그러한 작품들은 장소적 특성이 반영된 공간과 어울려 특유의 아우라를 낸다.

동행 194×132cm아크릴, 순지, 캔버스 2002 / 제공 = 정옥화 작가
동행 194×132cm아크릴, 순지, 캔버스 2002 / 제공 = 정옥화 작가

어두운 톤인 경우, 캔버스에 젯소를 바른 후 물감을 붓다시피 한다. 그 위에 홑겹의 장지를 덧붙이고 색을 칠한다. 나이프로 물감을 떠서 마치 미장이가 흙과 시멘트를 바르듯 한다. 마티에르(matière)가 살아나면서 캔버스 자체에 결이 지기도 한다. 

누구나 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가슴에 품고 산다. 정옥화는 30대 중반에 접어든 1993년 프랑스로 떠났다. 9남매의 막내로 온 집안의 기대와 지원을 받은 유학이었다. 프랑스의 북서부 노르망디를 거쳐 파리에 입성하였다.

정옥화는 10여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하다 미대에 입학했기에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이 제한에 걸려 에꼴 드 보자르에 입학할 수 없었다. 판화 공방인 <아뜰리에 17>에 소속되어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내었다. 1998년 파리 시 공모전에 입선이 되었고, 가을에 전시를 앞두고 있었으나 암이 발병되었다.

한국인 지인들의 도움 없이 이룩한 프랑스에서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존 그리샴 원작, 시드니 폴락 감독, 톰크루즈가 서른 한 살에 주연한 영화 <야망의 함정 The Firm 1993>에서 주인공은 최고 대우의 로펌에 입사후 곧 함정에 빠져들었으나 그 질곡을 지혜롭게 헤쳐 나온다.

인생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과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의 덫은 오로지 견디고 그 시기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터널에 들어왔으나 터널이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은 유한적 존재이지만 처한 환경에서 조금씩 방향 전환을 모색할 뿐이다.

한국에서 치료후 파리로 다시 돌아가려 왕복 비행기표를 끊고 왔으나 그럴 수 없었다. 치료는 하염없이 길어졌다. 화업(畵業)을 병행했다. 경기도 안산, 여주를 거쳐 2006년 강원도 홍천에 정착하였다.

홍천군 내면 살둔에 살다 곧 월둔으로 옮겼다. 집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인근 한옥에서 나온 금강송 고재(古材)는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가 되었다. 

작가의 고향은 경기도 연천군 신선면이다. 어린 시절부터 체화되었으며 익숙한 전원에 마음을 빼앗겼다.

회상2 117×92cm Oil on canvas 2009 / 제공 = 정옥화 작가
회상2 117×92cm Oil on canvas 2009 / 제공 = 정옥화 작가

정옥화의 삶의 행로는 젊은 시절부터 운명적으로 동시대를 앞에 두고 멀찌감치 쫓아가는 양상이다. 따라잡으려 하지 않고 그 전체를 앞에 두고 관찰하기로 했다. 외부 환경을 쫓기 보다 내면에서 나오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마음과 다르게 늪과도 같은 길고 깊은 무기력증에 빠졌다. 지옥과도 같은 그 늪에서 빠져 나온 게 2014년 전시이다. 긴 기간 안간힘을 다한 깊은 상처를 드러낸 작품들이 걸렸다. 작가에게 붓을 들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공포 그 자체이다. 견디고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야생화는 스스로 비바람을 이기고 눈과 추위를 견뎌 내야 한다. 계절마다 꽃을 피워내는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열흘 뒤면 또 다른 꽃이 등장한다. 이미 본 꽃들은 보기 어렵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절대자의 시각으로 본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그러하다. 야생화는 피워 보지 못한 작가의 젊음을 형상화한 대상이기도 하다.

춤사위 117×91cm Oil on canvas 2014 / 제공 = 정옥화 작가
춤사위 117×91cm Oil on canvas 2014 / 제공 = 정옥화 작가

한 무리의 야생화는 번식력이 강한 다른 군락의 야생화에 밀려 빨리 지기도 한다. 인간사에만 허무가 있는 게 아니다. 야생에서의 허무(vanitas)는 집단적 소멸로 나타난다. 우리가 피고 질 존재임을 자각하게 한다.

벽면을 바라보며 작업하는 화가에게 전원은 대상이며 모티프이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과의 접촉이 필요했다. 월둔 집에서 차로 약 20여분 거리인 봉평 읍내에 화실 겸 갤러리를 열었다.

지역 주민들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 갤러리라는 공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작가에게 삶의 궤적은 우연이 아니다. 인생의 길목을 지키는 이는 절대자이며 그와 맞부딪치든 피해가든 접어든 길목에 따라 다음 궤적은 정해진다. 

화가는 소멸하는 존재인 동시대 인간들을 기록하고 이미지로 남긴다. 자연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 기록과 남기는 방식은 각자의 처지와 상황, 세상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따르다. 

멸망의 징조가 뚜렷한 기후변화 시대, 지구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인 자생하는 야생화를 깊이 들여다 보며 그리는 이는 많지 않다. 예술가들이 자연을 추구하지만 이미 도시화된 인위적 자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정한 자연과의 교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월든>을 남긴 소로의 기록은 2년여의 체험이 전부이나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의 얕은 강물은 흘러가 버릴지라도 영원은 그 자리에 남는다. 나는 더 깊은 곳의 물을 마시고 싶다.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려 있는 하늘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 (월든 147쪽, 민음사 2021)

여성 작가에게 전원 생활은 만만하지 않다. 지역 학교에 직장을 둔 평생의 반려는 작가의 창작과 생활을 위한 제반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한다.

작품을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최우선이나 인간의 깊은 데를 들여다 보아야 할 때가 있다. 정옥화 작품은 자연을 포용한 삶의 흔적도 살펴야 바로 볼 수 있다.

전 지구적으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예술 및 미학의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야망을 누그러뜨릴 수 밖에 없었던 삶의 태세 전환은 작가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 이름을 딴 동이장터길 1번지 작가의 화실을 겸한 소계 갤러리에서 <나의 이웃이 그림이 되어> 전시는 고즈넉한 겨울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2023년 1월 31일 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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