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 수묵' 전 경기 파주시 '스튜디오 끼'에서 11월 30일까지

지난 8월 말부터 경기도 파주 ‘스튜디오 끼’(대표 이광기)에서 시작된 우종택 작가의  ‘반사 수묵(水墨)’전이 전시 기간 3개월중 절반에 도달했다.

'반사 수묵' 전시 전경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반사 수묵' 전시 전경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우종택은 어린 시절인 1980년대 초반, 집에서 가까운 용인 성륜산에 자리잡은 사찰인 용덕사에서 어린 ‘불목하니’겸 행자(行者) 생활을 하였다. 인근 야산의 나물을 뜯어다 삶는 등의 생활이 기억에 남아있으나 중 팔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름 땀 흘려 일하고 홀로 명상에 잠기며 자연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산에서 내려놓은 땔감용 나무를 골라 무언가를 만들곤 하였다.

memory of origin. 72.7×60.6 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 사진 = 스튜디오 끼 제공 
memory of origin. 72.7×60.6 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 사진 = 스튜디오 끼 제공 

종횡무진으로 거침없이 캔버스를 가로지른 획(劃)은 그 시절 용덕사 인근 계곡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물살과 포말일 수도 있겠다. 

우종택은 지금도 경기도 광주 오포 작업실에서 얼핏 선잠이 들면, 일주문을 지나 시야에 드는 종무소, 그 뒤 높이 쌓은 축대 위로 대웅보전, 미륵전, 범종각이 나란히 배치되고 미륵전 안 대좌와 광배가 없는 석조여래입상과 그 뒤로 나한상이 모셔진 모습이 선연히 나타나곤 한다.

우종택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인물군상(群像) 작업에 집중했다. 재수·삼수를 하면서 학원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시장에서 밤새 도시락 배달 일을 하였다.

일이 끝난 새벽 시장 터에서 나오면 정류장에서 이른 아침 출근하는 회사원들과 맞부딪쳤다. 버스가 도착하면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가 먼저 올라타기 위해 다툼을 벌이던 모습도 기억에 선명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용인은 서울에서 보면 ‘민속촌’으로 알려진 지방이었다. 그 지방에서 올라온 우종택에게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속 사람들의 모습은 낯 선  단면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시장이나 서울역을 다니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고 크로키로 남겼다. 인간을 사회학의 주요 주제인 (소)집단이라는 측면에서 탐구하던 시기였다. 

화가는 한 사람만 그릴 것이냐, 무리를 그릴 것이냐를 두고 고민한다. 대부분 단 한 명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물화는 힘들어 피한다. 초상화를 위한 인물을 대하면 스스로가 영매(靈媒)가 되어 그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모델의 젊은 시절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동시에 들여다 보면 그 모델 삶의 종말도 보이기에 괴롭기까지 하다. 익명의 군상은 구도, 배경에 있어 자유롭고 특정인에게 매몰되지 않아 편안하다.

줄서기, 132×132 cm mixed media 2008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줄서기, 132×132 cm mixed media 2008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우종택은 후자의 방식을 선택, 결정적인 순간에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마는 위태한 '줄서기'를 주제로, 우리 사회 현상을 인물군상을 통해 드러내었다. 인물들은 대체로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획일화하고 정형화한 도시라는 장소와 공간에서 앞만 보고 살아가는 도시인의 삶을 은유하였다.

인물이나 풍경을 스케치한 후 목판 등에 옮기고 모양을 새긴 후 먹을 발라 화선지에 찍어낸 다음 부분적으로 먹으로 거칠게 가필, 판화에서 느낄 수 있는 음영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우종택은 이 작품들로 2005년 석남미술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시에서는 화폭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을 집단의 시대적인 모습의 전형으로 캐릭터화 하기도 했다. 수묵을 기본으로 평면적 조형과 여백의 운용 등 전통 동양화의 틀은 수용하되 작가 자신의 감수성을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는 평가다.

죽음의 상징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다.

2013년 '시원(始原)의 기억'전은 현재의 추상 작업으로 이어지는 매개가 된다.

이 땅의 산하 마을마다 당산나무가 하나씩은 있는 편이다. 그런 나무를 신목(神木) 이라고 불렀다. 돌탑을 쌓은 서낭당과 당산나무는 삶의 터인 마을을 수호하는 믿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개 넘어 묘지 오르기 전 산비탈이 시작되는 곳에는 상여 집이 있다. 질곡의 한국 현대사가 겹쳐지며 서낭당과 당산 나무, 상여 집은 집단적 혹은 괴기스런 불의의 죽음과 연관된 경우도 많았다.

시원의 기억 300×300×300 cm mixed media 2013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시원의 기억 300×300×300 cm mixed media 2013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우종택의 현장 설치 작품은 마치 그러한 비극적 이야기를 품은 어느 마을을 대상으로 한 듯 보인다.

시원의 기억 300×300×300 cm mixed media 2013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시원의 기억 300×300×300 cm mixed media 2013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서구의 관점과 대중적 매체를 대입하면, 그 전시 공간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19세기 북미대륙이 배경인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 2015>에 흐르는 괴기와 묘한 미감의 미장센을 보는 듯도 하였다.

이 때부터 우종택은 회화를 벗어나 조각, ‘옮겨온 입체’ 등으로 확장하면서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 시작했다. 불행과 비극의 서사가 배제된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그 과정은 축제일 수도 있다.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대화’ 중에서·법정 외 지음)

법정 스님이 소설가 최인호와 생전에 대담하면서 죽음을 두고 한 말이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죽음에 비유한 게 흥미롭다. 

우종택은 "상여란 죽은 사람에 대한 부적이다. 상여란 축제 형식이다.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술과 음식의 축제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통로들. 이것이 즉흥에 의한 문화다."고 설명했다.

죽음을 통해 버스 정류장의 아우성 같은 이미지로 남은 인간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로 변환된다는 것이다.  2013년, 2014년을 변곡점으로 해서 그의 미술은 개념 미술로 변환되면서 지금과 같은 틀을 갖추고 재료 연구를 병행하게 된다.

먹과 숯가루, 송진가루를 섞어서 얻은 검은색의 안료에 젯소(gesso, 석고+아교+파라핀유)를 섞어서 회색의 붓질을 거칠게 겹쳐 여러 층으로 물감을 올려 시간의 궤적이 쌓인 듯한 표현을 만들어 내었다.

처음에는 종이(장지)에 백토를 쓰려면 점성이 필요하여 감자전분, 아교로 작업하였으나 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큰 작업을 위해 틀을 가진 캔버스로 넘어오면서는 젯소를 섞었다.

작가는 시원의 기억이 죽음과 닮아 있듯이, 역설적으로 죽음은 삶의 원인이자, 삶의 에너지로 보았다. 우종택의 이러한 사생관은 어릴적 불교를 생활과 문화로 접한 데서 오는 삶의 철학과 밀접한 듯 보인다. 

불교는 유교, 도교와 함께 동아시아 문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관점은 확연히 다르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未知生 焉知死)라는 공자의 주장과는 다르게 불교에서는 ‘죽음을 모르는데 어찌 삶을 알 수 있겠느냐’는 입장을 견지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화두로 삼기 때문이다. 불교 에서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 금기가 아니라 출발점이며 최종 종착지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삶도 동일한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삶과 죽음은 윤회라는 동일한 과정에서 나타나고 반복되는 서로 다른 양상일 따름이다. 불교는 생과 사를 함께 언급하며, ‘생사일대사인연(生死一大事因緣)’을 해결하는 것을 궁극적인 수행 목적으로 삼았다.<이재형>

작가는 시간을 버텨낸 흔적을 드러내는 나무를 재료로 활용한다. 먹과 숯가루, 송진 가루를 섞어 만든 먹 색의 물감을 나무에 여러 층으로 올리는 게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죽음을 이해하는 예술적 방법이었다.

'반사수묵' 전시 (옮겨온) 입체 작품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반사수묵' 전시 (옮겨온) 입체 작품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작가는 두터운 재질감으로 역동적으로 지나간 붓 자국과 내면 세계를 표현한 자유분방한 선의 변주는 5겹의 한지와 먹을 만나야 어울린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접점(接點)으로 이해하는 듯 하다. 우종택은 접점을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에서 보편성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접점의 행위는 ‘추상’(abstract)으로 표현된다. 모든 예술적 추상은 표현 방식에 있어 대중이나 관객이 이해할 때까지 지속과 반복을 특징으로 한다. 인지하고 이해되었을 떼 추상은 비로서 그 지위를 획득한다.  

그는 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연과 아닌 곳(터와 구역)을 구분한다. 산을 갖지 않은 곳에서 산 이는 자연을 평원으로 이해한다. 우종택은 구릉과 산등성이가 익숙하고 편안할 따름이다.

산 속에 작업실을 짓고 농사와 작업을 병행하며 자연에 대한 깨달음은 축적되어 갔다. 자연으로의 회귀는 놀이터 이기도 했던 용인 용덕사와 그 인근에서 각종 식물과 개미와 같은 곤충들의 탄생과 죽음(소멸)을 경험하면서 생명이 순환하는 자연을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우종택은 앞 선 2022년 전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 암자에서 접하게 된 불교 문화는 상상력을 일깨워주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미술을 통한 인생 여정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그가 한편으로는 운명론자임을 말한다. 

<반사수묵> 전시의 주제이자 입체 작품인 "반사수묵"은 나무를 통해 평면의 획(劃)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경기도 용인 작은 사찰로 가는 길에 태풍으로 쓰러져 위태롭게 누워있는 나무의 모습을 보았고 강한 힘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나무는 껍데기를 거둬내고 먹물, 송진가루, 아교를 섞어 서너 번 메꾸어 넣었다. 전시장으로 옮겨진 이 나무는 이미지화 된 현대 사회 속에서 본질적인 물음과 해답을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하였다. 작품의 일부로 받침 역할을 하는 스테인레스 스틸 평면은 자체의 물질성이 너무 강하지 않게 광택을 내었다. 반사 또는 수면에 비치는듯한 지점을 찾으려 애썼다.

memory of origin. mixed media on canvas 100호 2022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memory of origin. mixed media on canvas 100호 2022 / 사진= 스튜디오 끼 제공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작품이라고 걸쳐지는 건 결국 이미지이고 재현이다. 인간의 체험, 기억 등 삶의 궤적 역시 이미지로 귀결된다. 소리 없는 아우성인 꿈 조차도 이미지이지 않은가. 그 이미지들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정지되어 있지 않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뇌는 스크린이다”고 하지 않았나.

자연에서 운율을 찾고자 하는 우종택의 생각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1901~1991)의 사고와도 맥이 닿는다. 르페브르는 ‘어둠이 내린 정원의 표면을 주의 깊게 청취하면 식물들, 바람, 사물들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들을 수 있다’ (리듬분석 rhythm analysis -공간 시간 그리고 도시의 일상생활)고 말한다. 

경기 파주시 스튜디오 끼, <반사수묵>전은 11월 30일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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