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어덜트 차일드' 'Every Moment', 30일까지 서울 소공로36 모리함

Adult Child (Pumping Horse), 130×194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Adult Child (Pumping Horse), 130×194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작가는 중학 시절,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했다. 서른 여섯 살이 된 2016년 미대 박사과정 양현준은 문득 자신과 같은 나이 때의 어머니 의 삶이 궁금해졌다.

어머니하고만 같이 살아온 지난 15년여의 삶에서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과 양보만 하였고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고단한 삶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물었다. 여행을, 특히 사막에 가고 싶다 하셨다.

누구에게나 삶의 여정은 ‘문이 저절로 닫히는 어두운 복도를 걷는 것과 같다’ (파스칼 브뤼크네르·Pascal Bruckner)고 했다. 양현준은 아직 닫히지 않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어머니의 10대 시절과 맞닥뜨렸다.

작가 스스로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고대의 길 위 순례자들이 지난 흔적이 남아 있는듯한 사막 바람 속에서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당시 미혼이었던 작가는 결혼 후 어머니를 낳았다고 가정했다. 어린 소녀의 삶을 회화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양현준은 어머니의 어릴 적 얼굴을 조합해 '어덜트 차일드'(Adult Child)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Adult Child (Gundam), 130×194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Adult Child (Gundam), 130×194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고마움이 더해져 익살스럽게 표현되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녀는 유행하는 옷을 입고 군것질을 하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며, 동물을 키우고 책도 읽고, 여행도 가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졌고 활동을 한다.

사람의 인물 중심 그림이 인물화이다. 얼굴, 흉부, 전신 등으로 구분되어 표현된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그림도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된 모습을 담고 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흐른다면? 데이빗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9년>는 영화를 보자.

태어나면서부터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 청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벤자민 버튼은 날마다 젊어지나 사랑에 빠진 소녀 데이지는 점점 늙어간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이 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고 역 방향으로 흘렀을 경우를 보여준다. 그 역을 보여주면서 역설적으로 순의 삶을 보여준다.  

어덜트 차일드 이전의 작품은 마치 중국 북종화에 있어 공필적 기법으로 그린듯한 채색 인물화였다. 여성의 눈물은 엄살과 약함이 아닌 아름다움에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도 아픈 것이며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는걸 그리면서 스스로 치유를 받았다.

10여년 전, 소위 작가주의 성향의 미술관급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관객들은 가상 현실에 살고 있는 절세의 미인을 대하듯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부산의 변두리 동네, 벽화(壁畵)로 인물을 그렸을 때 노인, 아이들 할 것 없이 공감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회화의 시작인 벽화는 바탕의 조건과 그에 따른 재료의 성질 때문에 대상의 형태가 단순화 될 수 밖에 없다.

벽화 작업의 경험을 통해 작가는 관객과의 공감이 없는 예술은 그 의미가 없다 보았다. 양현준은 스스로 비엔날레에 출품하거나 미술관에 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성향이 아니라는걸 자각하게 되었다.

Adult Child (I like money), 124×14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Adult Child (I like money), 124×14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이해하기 편한 작업으로 지금의 작품스타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마음먹게 되었다. 작가는 작품의 출발이 동양화에 있음을 잊지 않았다. 

장지에 그리는 발묵은 번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채색은 처진다. 작가가 즐겨 쓰는 세 겹 종이인 그 자체로 콜라주인 삼합지는 처짐을 막는다.

동양화는 붓만으로 형태를 잡은 채색이 구도를 정하는 형식이 있고, 라인을 먼저 그리고 색을 칠하는 몰골 방식이 있다. 몰골 방식은 치밀하게 구도와 면 분할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양현준은 이 중간 방식을 선택한 듯 하다.

작가는 5년전 부터는 종이 스케치한 것을 한지에 옮기는 방식을 벗어나 컴퓨터 타블렛을 이용한다. 타블렛은 수정이 쉽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며, 여러 색을 넣어서 어울리는 색감을 찾을 수 있다.

Adult Child (I’m not Santa), 124×14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Adult Child (I’m not Santa), 124×14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이러한 작업 습관은 동양화의 선적인 요소들이 사라지면서 면과 색채 중심으로 좀 더 창의적으로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는 동양화 물감 대신에 아크릴을 물에 옅게 풀어 작은 붓으로 세로 방향으로 반복적으로 중첩되게 거의 패턴이 나오게 그렸다.

화폭에 키치(kitsch) 로도 보일 수 있는 캐릭터의 지배적인 출현은 자칫 그림의 다른 부분들을 종속시켜 버릴 우도 범할 수 있다. 오로지 진실된 스토리만이 예술로서의 가치인 자유로움을 견인한다. 그 스토리가 사실이든 허구이든 그 경계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화폭에 여성 가장이라는 환경과 동양적 모자지간 이라는 정서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시간이라는 물리 법칙과 맞부딪치게 했다.

주인공 소녀의 일상과 주변적 사물을 적절하게 매칭시켜 캐릭터화된 주인공이 마치 정물화의 대상처럼 보이게도 했다.

Adult Child (Pirate ship), 144×187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Adult Child (Pirate ship), 144×187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대표 인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소녀는 어머니를 표현한 것이고, 같이 등장하는 작은 동물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보호를 받았던 작가 자신을 나타낸다. 하마나 곰같이 큰 동물은 어른이 되어 어머니를 지킬 수 있는 위치가 된 작가의 모습이다.

양현준 작가는 "작품에서 나타난 소녀는 내가 어머니와 동등한 친구의 모습으로 같은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것을 상상하고 작업에 임한다" 고 말한다.

작가는 지난 달에 첫 아이를 얻었다. 작품 어덜트 차일드 시리즈의 주인공보다 더 어린, 영화 속 청년 시절 벤자민 버튼이 사랑했던 데이지를, 영화를 벗어난 일상에서 실제 삶, 현실에서의 긴 여행에 동반하게 된다.   

모교에서 강의하던 시절, 학기 시작 전 으례히 배정되던 강의가 시간표에서 빠졌다. 평소 강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작가로서 작업에 소홀하다는 자책감도 있었던 터였다. 과감히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생활인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구상 작가들은 대상의 형상을 그린다. 관객들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작가와 관객간 소통은 되지 않는다. 작가가 나고 자란 환경 과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작품 이해의 필수 조건이다.

작가(화가)는 일단 잘 그리고, 그대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어덜트 차일드 이전의 채색 인물화는 작가의 자질과 기본기, 내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회화는 구상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구상(具象)은 말 뜻 그대로 형상을 뚜렷하게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그린걸 말한다. 비구상은 형상이 그러하지 않아도 된다. 추상은 구상과 비구상에 각각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뽑아 뽑아낸 게 추상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추상화이다.

Adult Child (Bruce Lee-lll), 124×14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Adult Child (Bruce Lee-lll), 124×14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22

이런 시각에서 보면 양현준의 작품은 왕가위 감독, 장만옥, 양조위 주연의 영화 <화양연화. 2000년>처럼 상영 내내 흐느적거리는 미장센 너머, 제목 ‘화양연화’(花樣年華) 자체가 상징하는 어머니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반추하는 추상이기도 하다.

작가가 거꾸로 흐르는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작품 속 대상이자 자신의 생명의 뿌리인 어머니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예술가적 행동이다. 아울러 자신의 작품 세계를 대양에 퍼트리기 위한 모천 회귀 (parent-stream revolution) 본능에 따른 것이며, 구상 작가가 건너야 할 반추상의 시간대를 건너뛴 직업 작가로서의 전략적 행보로도 보인다.

양현준은 한국적 감성과 글로벌 동시대에 대한 보편적 이해, 재료의 응용을 통해 작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작품은 미국 뉴욕, 스페인 등에서 조용한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필자의 상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왠지 그림 속 캐릭터의 이미지 때문에 작가는 20대의 청년 작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음갤러리가 주관하는 '어덜트 차일드' <Every Moment>의 전시는 서울 중구 소공로 36 모리함에서 9월 30일 까지 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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