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영화와의 대화] 해방 후 최초 국제공동제작 영화

며칠 전 부평구문화재단에서 마침내 <이국정원> 라이브 더빙쇼를 보았다. <이국정원(異國情鴛)>은 1957년에 제작된 해방 후 첫 국제공동제작 영화이자 한국과 홍콩간 최초 국제합작 영화다. 상영 불가능했던 고전 영화를 창의적으로 되살려 오늘날 관객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 국제공동제작 영화의 주요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고 묻혀 버린 점은 아쉽다.

출처:한국영상자료원
출처:한국영상자료원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의해 2012년 홍콩 쇼브라더스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필름 훼손 상태가 워낙 심했다. 2013년에 복원되었으나 화질 상태는 나빴고 결국 소리는 복원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영상자료원은 창립 40주년 기념작으로 <이국정원>을 전계수 감독과 함께 후시녹음(영화에서, 촬영이 끝난 후에 화면에 맞추어 대사, 음악, 효과음 따위를 녹음하는 방식-국어사전)을 통해 영화를 복원하였다. 

즉 <이국정원> 라이브 더빙쇼는 <이국정원> 영상에 배우들이 현장에서 대사를 입히고, 각종 음향과 라이브 연주가 공연장에서 제공되면서 이루어졌다. 과거의 영상에 현대적인 재해석이 조화를 이루면서 화질 나쁜 영상과 소리가 유실된 영화가 실로 새롭게 재탄생된 공연이었다.

출처:한국영상자료원 
출처:한국영상자료원 

아마도 이 영화가 최초 한·홍 국제공동제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컬러 영화라는 광고만으로는 현재 관객의 시선을 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설사 관심을 끌었다고 해도 영화 내용에 흥미를 가졌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인 작곡가 김수평(김진규)은 어렸을 적에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 홍콩에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클럽에서 노래하는 가수 방음(우민)을 만나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방음의 어머니는 김수평이 어렸을 때 헤어진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결국에는 김수평이 어머니를 찾으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영화 내용만 보면 21세기 관객을 매료시킬 내용이 없다.

또한, 그 당시 한국 영화 관객을 불러 모았던 컬러 영화라는 점과 홍콩과 마카오의 이국적인 풍경은 지금은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 속 배우들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마치 과거 무성영화 시대 변사들이 했던 것처럼 현장에서 들려주고, 대화 속 내용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냄으로써 영화는 재밌게 살아났다. <이국정원> 공연장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필름이 훼손된 영화라는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살아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영화 관객들은 영화가 제작되는 이면을 알 수 없다. 아마도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국정원> 라이브 더빙쇼는 바로 관람객 앞에서 효과음 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라이브 더빙쇼에서 가장 사랑받은 주인공은 어쩌면 폴리(Foley) 아티스트(박영수)였을 것이다. 그는 영화에서 대화와 음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소리-등장인물의 발걸음, 택시, 전화벨, 천둥 등-를 각종 도구를 이용해 표현했다. 영화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을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볼거리와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출처 : 예술의전당

<이국정원> 라이브 더빙쇼가 놓친 사실  

<이국정원>은 한국연예주식회사와 홍콩 쇼브라더스가 국제공동제작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한국 전창근 감독, 홍콩 도광계 감독, 일본 와카스기 미츠오 감독이 참여하였다. 컬러 영화 제작을 위해 그 당시 컬러 영화 기술에 앞서 있던 일본 감독을 채용하였다고 한다. 한국 제작사는 영화 제작비 확보와 해외시장 진출, 쇼브라더스는 해외시장 확보와 그들이 소유한 영화관의 동남아 관객을 위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공동제작을 했다. 놀라운 점은 양국 간 첫 국제공동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기획부터 시나리오 작성, 연출 및 제작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양측이 관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제작을 했다는 점이다. <이국정원>은 홍콩과의 공동제작이 활발해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국제공동제작의 여러 가지 주요한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자국에서의 흥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남자 주인공은 한국 배우(김진규)가 여자 주인공은 홍콩 배우(우민)가 맡았다. 하지만, 언어 차이로 인해 멜로 드라임에도 불구하고 감정 전달이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홍콩에서 <이국정원> 흥행 실패에 이 부분이 상당히 기여했으리라 판단된다. 이러한 작위적인 주인공 구도는 2010년대까지 지속되며 국제공동제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반면에 라이브 더빙쇼에서는 한국 배우들이 모든 대사를 더빙함으로써 언어 장벽으로 인한 감정 전달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20세기 후반 관객들이 느꼈을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공연 관람 동안 이 작품이 국제공동제작이라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국제공동제작이 야기할 수 있는 단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이영재 교수의 논문(아시아영화제와 한홍합작 시대극)에 따르면, <이국정원>의 결말은 원래 비극으로 끝나게 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쇼브라더스가 한국 측과 어떤 협의도 없이 임의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비극적인 멜로 드라마가 인기 있었지만, 동남아 관객은 희극을 좋아해서, 쇼브라더스가 자신들 관객의 취향에 맞추어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영화 줄거리에 대한 제작사 간의 갈등은 국제공동제작으로 인해 발생하는 단점이다. 과거의 역사와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한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 또한 안타깝다.
    
한국영화사, 특히 국제공동제작 부문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국정원>이 라이브 더빙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뜻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영화가 보유하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 사라짐 없이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더 많은 고전 영화들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 다수의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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