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수사반장 데뷔 50주년 기념 美 NBC 방송
주인공 포크, 어리숙한 듯 VIP탐욕 고발…향수팬에 인기
"한가지만 더"(Just one more thing)
"우리 집사람이 그러는데 말입니다"(My wife told me)
"날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One thing that bothers me)
멍청한 표정-어눌한 말투-남루한 옷차림에 이어지는 날카로운 질문.
피터 포크 주연으로 1971년부터 세계적 인기를 끈 TV시리즈 '형사 콜롬보'가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를 기념해 최근 미국에서는 오리지널 방송국 NBC(채널4)에서 토요일마다 디지털 채널을 통해 2편씩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금 북미 전역에서 또다시 콜롬보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판 수사반장' 격인 콜롬보 시리즈는 미국 상류사회의 탐욕 행태 고발극이기도 하다. 2003년까지 모두 69편의 작품을 통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방불하는 카타르시스 배출구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민풍 초라한 차림의 공처가 형사가 고관대작 범인을 상대로 한가지씩 알리바이를 뒤집으며 몰아세우는 내용이다. 일반인들은 자신을 콜롬보 역할에 대입하며 상황 전개에 몰두한다. 이 드라마가 브라운관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범죄 현장뿐 아니라 여러가지 미국 상류층의 풍습과 생활 수준, 관광 명소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일반인들의 삶은 주인공 콜롬보 자신의 모습이다. 미국인들의 철학과 삶을 대변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반하는 VIP의 내로남불을 폭로하는 'USA 입문서'이기도 하다. 경찰 외에 기자들도 "콜롬보처럼 발상의 대전환을 해봐라"는 상사의 들볶임에 자주 시달리곤 했다.
NBC에서 1978년까지 방영한뒤 11년의 긴 휴식기를 가졌다. 주인공 포크는 "회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질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불평을 터뜨리며 자진하차를 선언했다. 1989년 컴백한뒤 ABC(채널7)로 말을 갈아타 14년동안 24편을 더 찍었다. 포크는 초창기 편당 30만달러를 받았지만 이후 60만달러로 몸값이 뛰었다. 콜롬보는 웬만한 영화 한편 길이인 90분 분량으로 광고까지 2시간동안 주말 저녁 전파를 탔다. 공교롭게도 첫회 연출은 당시 무명이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나중에 '조스' '주라기 공원' '인디애나 존스' '쉰들러의 리스트'를 선보이며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탄생했다.
콜롬보는 이탈리아계 이름이지만 주연배우 포크는 뉴욕 출신 유대인이다. 풀네임은 프랭크 콜롬보지만 성씨만 사용한다. 또 걸핏하면 집사람을 들먹이지만 와이프 이름도 전혀 밝히지 않는 괴짜다. 168cm 작은 키에 트레이드 마크인 허름한 방수용 버버리 코트를 착용하고 프랑스제 낡은 푸조 승용차로 사건현장을 돌아다닌다. 실내에서도 독한 시가를 연신 피워대는 안하무인 캐릭터다. 한국과의 인연은 26년전 경비업체를 선전하는 TV 광고로 맺어졌다. 당시 특허를 낸 특유의 레인코트 착용은 금지됐다.
오른쪽 눈은 의안이다. 3세때 암 판정을 받고 제거했으며 특유의 찡그리는 표정이 여기서 나왔다. 핸디캡을 강한 개성으로 변환시킨 케이스다. 기자는 초등학생 시절 JTBC의 전신인 TBC(동양방송) 흑백 화면에 성우 최응찬씨의 목소리로 감상한 기억이 생생하다. 콜롬보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작품과 달리 초반부에 범인(살인을 저지르는 남녀노소는 대부분 의사-변호사-재벌 등 저명 인사)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답안지를 미리 공개한뒤 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파고드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전까지의 사건 드라마는 막판에 가서야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제작진 반대가 거셌다. "시작하자마자 범인을 알려주며 김을 빼면 도대체 누가 끝까지 시청하겠냐"는 반론이었다. 입김이 센 광고주들 역시 "평균 시청률이 꾸준히 유지되지 않을 경우 제품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파격적 포맷 시도는 대성공의 반전 계기가 됐다.
범인들은 콜롬보를 루테넌트(lieutenant-경감 또는 서장 대리)로 부른다. 지인과 속삭일 때는 만만치않다(formidable)고 긴장한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LA경찰국(LAPD)이 콜롬보의 직장이다. 20만명의 한인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규모 코리아타운 지척인 덕분에 주변 거리도 카메라에 자주 많이 담겼다. 물론 한글 간판까지. 지금 다시 봐도 한국식 풍경이 눈에 익숙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남부 캘리포니아 곳곳의 경치와 명승지 소개는 덤이다.
불안해하는 용의자 앞에서 돌아서는 척한뒤 "한가지만 더" 하며 아예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모습은 압권이다. 미국인들은 잘난체하는 범인들보다 이처럼 어수룩하지만 서민적이고 자기들과 비슷한 타입에 열광한다.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는 그를 자신의 토크쇼에 초대한뒤 매번 "한가지만 더"라고 붙잡으며 1시간동안 질문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명탐정 콜롬보는 황혼 이혼에 치매 증세로 말년에 불행했다. 피터 포크는 자신이 콜롬보라는 사실도 잊은채 10년전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83세로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 비록 떠났지만 그가 사회정의 실현에 힘쓴 콜롬보 이미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미국사회에 족적이 뚜렷하다.
봉화식은 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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