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이전, 당선인 예우 사항도 인수위 운영 예산 사항도 아냐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면, 취임뒤 법률안 마련 추진이 바람직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방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방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과거 잔재 민정수석실 폐지는 평가 받을 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직후 특별감찰관 임명과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언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비어 있던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민정수석실은 박정희 정권 시절 3선개헌과 유신독재를 위해 만들어졌고, 오늘날에는 정부조직법상 근거도 없는 조직이면서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을 통할해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대통령비서실이 내각과 여당, 국회 위에 군림하는 역사를 끊어내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선인이 해야 할 조치가 민정수석실 폐지만인가. 국민들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또다른 ‘검찰 장악’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당선인은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중 특정 검사를 거명해 ‘독립운동가’에 비유하는 경솔한 언행을 했다.

또 자칭타칭 ‘윤핵관(윤석열 당선인측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압박했다. 김 총장의 임기는 2023년 5월까지다. 아직 1년 2개월 남았다. 권 의원은 2017년 2월과 2019년 3월, 2021년 1월 세 차례에 걸쳐 검찰총장의 임기를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김오수 검찰총장 퇴진 압박 공명정대하지 않아

김오수 사퇴를 찬성하는 이들은 문재인 정권 관련 의혹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후보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 물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서 이 후보 측근인 정진상 당시 성남시 행정실장이 지난 1월 한 차례만 소환된 것은 늑장·봐주기 수사다. 그렇다면 지난 11월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이 구속됐고, 김건희씨 계좌에서 수차례의 통정거래 내역이 나왔는데도 김씨가 소환되지 않았던 것은 어떤가. 검찰 수사는 ‘한 방향으로만’ 의구심을 자아낸 것이 아니며, 윤석열 당선자는 이해관계자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압박은 전혀 공명정대하지 못하다.

당선인은 2021년 8월 25일 국민의힘 경선 후보 비전발표회에서 “윤석열 정부에선 조국도, 드루킹도, 김경수도, 추미애도 없을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연설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없어야 할 것에 한 명이 빠졌다. ‘윤석열’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처럼 정권에게 압력을 받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검찰총장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향후 검찰의 인사 및 수사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김 총장의 임기를 지켜줘야 하며, 절제력 있는 인사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 문제 말고도 벌써부터 우려할 만한 일이 또 터졌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다. 현재 청와대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는 문제인식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역대 대통령들의 잔혹사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터를 잡고 싶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이라는 대명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절차와 방법, 과정이 ‘제왕적 대통령’의 것이다. 

윤 당선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 권한·예산 없다

윤석열 당선자의 임기는 5월 10일부터다. 그는 3월 20일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 직후 바로 용산의 대통령실에서 근무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허나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게는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수 있는 권한과 예산이 없다. 인수위는 정부에 예비비 예산을 요청해서 협조받을 권리가 있다. 그 예비비는 ▲대통령 당선인의 예우에 필요한 경비 ▲위원회(인수위)의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예산 2가지로 명시되어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당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국가 사업’이며, 집무실 이전은 인수위 설치나 운영에 필요한 예산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국회 패싱’을 해가며 시행령 개정을 통한 우회 입법에 매달려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는 정부 출범도 하기 전에 예비비를 써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려 한다. 예비비는 써놓고 국회의 사후 승인을 받으면 그만이다. 정말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려 한다면, 취임하고 나서 집무실 이전을 추진해야 하며,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행정부 직권으로 결정하기보다는 국회에서 법률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선인과 인수위가 미국 백악관 ‘웨스트 윙’처럼 대통령과 비서들이 가까이서 마주하는 공간만을 강조하는 것도 본말전도다. 대통령 집무 공간에서 자신들끼리 원활하게 소통하면 다인가?

청와대가 내각의 우위에 서 있고, 정권이 국회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나아가 여당도 청와대에 끌려다니는 것이 박근혜·문재인 정부가 밟았던 전철이었다. 이 전체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은 이상, 집무실을 어디로 옮기든 김수영의 시 <그 방을 생각하며>의 한 구절과 같을 뿐이다.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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