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PIG)>는 예술영화다. 생전 처음으로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극장에 갔다. 원래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여기서 보려고 했으나, 기회를 놓쳤다. 영화도 극장도 어떤 인연이 필요한가 보다. <피그>도 어찌 보면 인연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잃어버린 돼지를 찾기 위해 단절한 과거의 인연을 찾아간다.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가 영화 끝 무렵에 알려주는 삶의 해법은 반전이다. 

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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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돼지 
주인공 롭은 과거의 인간관계와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숲속에서 돼지와 살고 있다. 이 귀엽고 예쁜 돼지는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을 찾아준다(송로버섯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롭의 집에 와서 돼지를 훔쳐 간다. 

출처: PAN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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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가 제시한 삶의 해법 

영화 초기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대자연 풍경은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린다. 롭은 조용하면서도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와 바깥 세계를 이어주는 이는 송로버섯 판매자인 젊은 친구 아미르(알렉스 울프)가 유일하다. 아미르의 샛노란 카마로 자동차와 그의 복장은 그야말로 롭과 대조를 이룬다. 

이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다. 관객이 알아서 이해와 추측을 해야 한다. 복선은 여기저기 깔려 있다. 그러나, 왜 롭이 숲에서 혼자 사는지, 롭의 부인은 왜/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롭이 누구인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가 드러난다. 아미르의 도움을 받지만, 자신의 힘으로 돼지를 찾으려는 롭의 노력은 애틋하다. 

영화가 정점에 다가갈수록 점점 <리틀 포레스트>와 닮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도시를 등졌고, 음식에 초점을 둔 것까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에서 완전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롭은 그의 돼지를 돌려주지 않는 그곳 유지이자 권력자에게 그가 좋아했던 요리를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해답을 얻는다. 그 답은 롭이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사랑하는 돼지의 안부를 알게 된다.

출처: PAN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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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련의 장면은 무척 충격이었다.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무력을 쓰는 자에게 상대할 힘이 없더라도, 내가 가진 장점과 진심을 이용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시퀀스 하나로 영화는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근래에 EBS 강의에서 들은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의 말이 그 순간 떠올랐다. 광고를 잘 만드는 사람은 많지만, 광고를 (고객의) 마음에 들게 만드는 사람은 적다고 했다. 마치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는 많지만, 고객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사는 적듯이 말이다.

이러한 롭의 결정이 참 현명하다고 생각했고, 진정으로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영화에서도 고객이나 음식 평론가의 평점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의 요리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깨운다. <피그>가 알려준 비밀은 결국 사람과의 문제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풀되,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 사람과 감정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도 주요했다. 특히, 돼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풀썩 주저앉은 장면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가 느낀 상실감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예술영화의 특징

예술영화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자들이 주장하는 공통적인 특징은 상업영화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창작자의 창의성과 예술성에 가치를 두는 영화라는 점이다. 

조해진 교수는 그의 논문(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간극)에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할 수 있는 4가지 특징을 설명했다. 4가지 특징은 스토리텔링, 목적관객층, 생산주체, 영상구성이다. 상업영화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는 메인 플롯 하나가 강조되고, 이야기는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관객층은 일반 관객이고, 생산주체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프로듀서 중심으로 제작되며, 영상구성은 우리가 익숙한 빠른 템포와 리듬감을 강조한다. 반면에 예술영화는 메인 플롯 외에 서브 플롯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고, 비선형적 순서를 따른다. 관객층은 특정 매니아 집단을 목표로 하고, 생산주체는 감독이 중심이 되고, 영상구성은 롱테이크 기법 등을 사용해 템포와 리듬감이 느리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맞춰 분석해 보면, <피그>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잃어버린 돼지를 찾는 과정인 메인 플롯 뿐만 아니라, 남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라는 서브플롯도 강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는 감독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관객층은 특정 매니아 층이라기보다는 예술전용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식상한 관객일 수도 있다.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고, 감독을 중심으로 많은 제작자가 영화제작에 참여하였다. 영상구성은 예술영화라서 그렇긴 하겠지만, 영화의 템포와 리듬감 역시 느렸다. <피그>의 영상구성 속도를 조금 빠르게 하고, 대사도 좀 더 있어도 좋을 듯했다. 

출처: PAN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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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등장 인물이 많지 않고, 사건도 별로 없고, 기승전결도 뚜렷하지 않지만, 포틀랜드의 눈부신 경치와 함께 깨달음을 주는 영화였다. 영화 시간도 90분으로 길지 않다. 다양한 영화관람을 통해 자신의 영화 스펙트럼을 확대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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