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1955~ )가 노르웨이 스발바르 빙하 지대 인공 무대에서 '북극을 위한 엘리제(비가·悲歌), Elegy for the Arctic’를 연주하는 장면은 강렬하며 처연하였다. 약 3분간 이어진 연주, 카메라가 비추는 무대 뒤 좌우로 빙벽이 무너져 내렸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탓이다. 영상 말미에 '북극을 구해달라(Please save the arctic)'는 메시지가 선명했다.

2025년 1월 아이슬란드를 방문한 황해연 작가 / 제공 = 황해연
2025년 1월 아이슬란드를 방문한 황해연 작가 / 제공 = 황해연


지난 1월 황해연(Hae youn Hwang·53) 작가는 딸과 함께 북극 가까운 곳, 아이슬란드 빙하 앞에 섰다.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항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헬싱키에서 소형 비행기로 3시간 걸려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얼어있어야 할 빙폭(氷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북위 64도 기온이 서울보다 따뜻했다. 작가는 빙하 앞에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자각이 왔다. 한편으로 ‘빙하가 녹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빙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게 너무 슬퍼 눈물이 흘렀다.

황해연은 강원도 화천 사창리 출생이다. 사방이 눈과 얼음 천국인 겨울에는 고드름을, 봄이면 산에서 두릅을 따 먹었다. 대구에서 여고를 마치고 경북대 자연과학대학 지구시스템과학부 지질학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같은 대학 미술학과에 실기 시험을 보아 편입하였으며 대학원을 마쳤다. 고교 시절, 대륙 이동과 지층 파트를 좋아할 만큼 지구과학 과목에 빠졌다.

황해연은 2023년 10월, COAFA(중앙 북극해 공해상 비규제 어업 방지) 협정 국제 행사에서 극지연구소(인천)와 협업하여 각 세션에 쓰일 디지털 이미지 5장을 제작해 제공하였다. 개최지가 레이캬비크였다.

 아이슬란드 CAOFA 2023 행사 모습 / 극지연구소 제공
 아이슬란드 CAOFA 2023 행사 모습 / 극지연구소 제공


CAOFA협정은 북극해 공해상 불법 조업을 방지하고, 해양생물자원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북극해 연안 5개국(미국,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과 비연안 5개국(한국, 중국, 일본, 아이슬란드, 유럽연합 등)이 2018년 서명하고, 2021년 6월 발효하였다. 북극 지역 해빙(海氷)이 2030년대에 소멸한다는 관측과 함께 협정은 한시적으로 해당 수역 내 조업 활동을 유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작가는 2024년 <환상통(幻想痛·Phantom pain) '북극빙하, 독도바다'> 전시를 하면서도 ‘왜 너와 상관없는 그림을 그리느냐’는 소리를 또 들어야만 했다.

카라바조의 종교화 <의심하는 도마, 1602년, 107x146cm>는 성경 속 부활한 예수 자신이, 눈 앞에서 예수를 믿지 못하는 제자 도마와 맞부닥친 장면을 연극 무대처럼 옮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도마)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요한복음 20:27)”

작가는 말한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재하는 통증이 환상통이다. (눈 앞에)실재하지 않으나 실재하는 환영 같은 통증이 더 아프다.”

빙산의 형태 연구를 위한 드로잉 210x520cm A4용지에 잉크젯프린트 2024
빙산의 형태 연구를 위한 드로잉 210x520cm A4용지에 잉크젯프린트 2024


2024년 대구 무영당디파트먼트 전시 <환상통>에 2년간 작업한 빙산과 빙하 형태를 단순화한 디지털 드로잉 200점을 내걸었다. 빙산은 얼고 녹으면서 뒤집어지고 주름이 생기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나 기후변화는 주기의 리듬을 깨뜨려 ‘생성 없는 소멸’로 치닫고 있다는 과정적 인식의 결과물들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대가 얼음 밑에 살아서 Acrylic on canvas 145.5x336cm 2023
 내가 사랑하는 그대가 얼음 밑에 살아서 Acrylic on canvas 145.5x336cm 2023


영상 <차가운 별이 된 얼음물고기, 2024>, 회화 <내가 사랑하는 그대가 얼음 밑에 살아서, 2023> <지질학적 상상 풍경 속 물고기들, 2019>은 남극 빙하 아래 사는 빙어가 빙하가 녹으면서 포식자들을 피할 곳이 없어진다는 내용을 담았다.

전시 <북극빙하 독도바다>는 KBS 다큐멘터리 <독도 평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이 프로에서 지질학(해양학 포함)을 전공한 손영관(퇴적학)은 북극 빙하가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혔다. “독도는 북쪽 빙하의 물줄기가 내려와 멈추는 종점이며 제주를 거쳐 온 난류의 종점이다.” 즉 ‘여기, 우리’는 북극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 우리’는 기후 위기와 실재적으로 직면하고 있다. 

독도를 지키는 북극의 세 빙하 Acrylic on wood panel 90x110cm 2024
독도를 지키는 북극의 세 빙하 Acrylic on wood panel 90x110cm 2024


작가는 <타오르는 빙산의 추상들, 2024>에 대해, “붉은 색의 바다는 마그마 같은 뜨거운 바다의 표현이다. 뜨거운 바다에서 꿈틀거리는듯한 빙산을 표현했다.”

2024년 제주 바다의 고수온(28도 이상) 지속일수는 71일로,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제주 지역의 고수온 발생일수(주의보~해제)는 2020년 22일에서 2021년 35일, 2022년 62일, 2023년 55일로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바다는 지구를 탈출하지 못한다. 바다는 하나이다.

2023년 전시 제목 <여기가 우리의 고향입니다>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1934~1996)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수록된 글에서 연유한다. 칼 세이건은 1990년 2월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61억km 밖 우주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저 점을 다시 보라. 저 점이 여기다. 저 점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 점이 우리다. (…) 현재까지 지구는 생명을 품고 있다고 알려진 유일한 세계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황해연은 이 전시에서 지구의 에너지와 생명력이 점점 쇠잔하는듯한 채도 높은 색감들로 생명의 원천이 되어주는 빙하의 본래 이미지 색 ‘에머랄드 그린’과 대비했다.

작품 <12월의 꿈·December dream. 2022>에서 빙하의 형태는 펭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고 맨드라미는 ‘땅 위의 태양’이라는 설정이다. 작가 자신은 유한적 존재로서 대자연 빙하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을 담았다.

December dream Acrylic on canvas 162.2x520cm 2022
December dream Acrylic on canvas 162.2x520cm 2022


탐험가이자 저술가이며 빙하학자(glaciologist) 제마 워덤(Jemma Wadham)은 인류의 미래를 ‘지질학적 풍경(Geological landscape)’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자연의 빙하는 생명 탄생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거대한 빙하가 빨리 녹아내리면 자연 생태계의 순환이 중단되고 모든 생명이 위기를 맞는다. 빙하는 여름에 크기를 줄였다가 겨울에 덩치를 키운다.

빙하는 지구 지표면의 10%를 이루고 지구 담수의 70% 이상을 품는다. 빙하가 녹아 바다로 흘러드는 담수 양이 늘면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유럽에 폭풍과 추위가 닥친다. 물 부족으로 빙하 주변 농업이 퇴화하고 정치 갈등도 격화한다. 빙하 속 메탄이 노출되면서 온난화도 가속화한다.”<’빙하여 안녕’, 저자 제마워덤 번역 박아람 문학수첩 2022>

제마 워덤은 우리가 온실가스를 감소시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200년 뒤 지구는 종말을 맞이한다고 경고한다.

 펭귄 플런지 Acrylic on canvas 90x110cm 2023
 펭귄 플런지 Acrylic on canvas 90x110cm 2023


황해연은 2023년 전시 <EVER GLOW>에 작품 <펭귄 플런지, 2023>를 선보였다. 북반구에 봄이 오는 4월 말쯤 남극 로스해는 얼어붙기 시작하며 아델리 펭귄은 북쪽으로 이동한다. 작가는 펭귄들이 멋지게 물에 빠지는 모습을 그려, 급강하(plunge) 다이빙한 수중에서 새들 만큼이나 자유롭기를 바랬다.

작가는 바다가 닿는 빙하를 동경한다. 화산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화상과 같은 매개이다. 화산, 지층, 광물 같은 지질학적인 요소들과 형상들, 기후 위기 이슈는 대상과 주제이며 화업(畵業) 자체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저작권자 © 뉴스버스(Newsvers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