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20일 반도체 산업 연구직들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적용’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전 총리는 첫 여야정 국정협의회(오후 5시)가 열리기 직전인 이날 낮 12시 50분께 올린 페이스북 글(아래 전문 참조)에서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 합의가 잠정 중단됐다. 예상대로 주52시간 예외 적용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전 총리는 "(민주당의 양보가 필요한 이유는) 반도체 산업계의 요구가 절실하고, 예외적용 대상자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며 과로를 권하거나 묵인하는 사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실제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다시 법을 고치면 된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AI 반도체는 게임체인저이고, 기업을 넘어 국가대항전 양상으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며 "일단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잡기 어렵다. R&D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느긋하게 신제품 개발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3~4일 먼저 finish line에 도달한 자가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도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 총리는 AI 최강국 미국은 근로시간 제한이 없고, 대만은 법 기준 초과 근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우리가 상대할 엔비디아, TSMC의 핵심 R&D 인력들이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과 경쟁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전 총리는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환경에서 일하지 않도록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해 '필요할 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다수당이 경청해야 한다"며 현행 근로기준법 내 유연근로제를 활용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대체로 예측이 가능할 경우에 유용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리는 "그럼에도 결국 근로시간 예외적용 문제가 합의되지 않으면, 빼고라도 반도체 특별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개최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小委)에서 국민의힘과 ‘반도체 특별법’ 제정안을 심사했지만 ''주 52시간 예외 조항' 적용에 반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기자회견 반도체 특별법에 관한 질문에 “우리 사회가 경제적 측면서 매우 어렵고 성장을 준비해야 되는 상태”라며 “그에 필요한 입법조치 등도 과감하게 전향적으로 할 필요 있다”고 밝히는 등 예외 조항 수용의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노동계와 당내 반발에 부딪힌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히며 논의를 사실상 원점으로 돌렸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국회에서 열리는 여야정 국정협의회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해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반도체특별법, 국민연금 개혁 등을 논의한다.

/뉴스버스

정세균 전 총리 페이스북 글 전문

<완전무결, 영원불변한 법은 없다>

법은 새로 만들기도 하고, 용도가 다한 법은 없애기도 한다. 필요하면 고치거나 바꾸는게 법이다. 법 제정 이후 수십번을 개정한 법률도 수두룩하다. 법은 완전무결한 것도, 영원불변한 것도 아니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법이 정상이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 합의가 잠정 중단됐다. 예상대로 주52시간 예외 적용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민주당이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산업계의 요구가 절실하고, 예외적용 대상자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과로를 권하거나 묵인하는 사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예외'가 생기면, 그게 점점 늘어나고 일상화 될 수 있다는 걱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다시 법을 고치면 된다. 법은 완전무결 하지도, 영원불변한 것도 아니다.

AI 반도체는 게임체인저다. 기업을 넘어 국가대항전 양상이다. 주요 국가들이 사활을 걸고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일단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잡기 어렵다. R&D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느긋하게 신제품 개발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3~4일 먼저 finish line에 도달한 자가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도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게 현실이다.

AI 최강국 미국은 근로시간 제한이 없다. 대만은 법 기준 초과 근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중인 중국의 근로시간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유연하다.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할 NVIDIA, TSMC의 핵심 R&D 인력들이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과 경쟁할 것인가?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환경에서 일하지 않도록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해 '필요할 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다수당이 경청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 내 유연근로제를 활용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선택적 또는 탄력적 근로제 등인데, 이는 대체로 예측이 가능할 경우에 유용하다. 12·3 계엄이 해제된 이후 혹시 모를 2차 계엄에 대비하느라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밤샘을 했다. 세상은 예상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외에 대해 너무 경직되면 안된다. 반도체 개발 분야의 돌발 변수는 비전문가의 상상을 넘어설 것으로 짐작된다.

반도체 R&D 인력의 해외 이직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핵심인력의 유실이다. 심각한 문제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게 뻔하다. 왜 그럴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더 일해서, 더 성과를 내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은 비난하거나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그럼에도 결국 근로시간 예외적용 문제가 합의되지 않으면, 빼고라도 반도체 특별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국익을 위해 우선 큰 산은 함께 넘고, 놓친 부분은 다시 개정안을 발의해서 야당을 설득하고 협상하는게 정치다. 국민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 반도체 R&D 주52시간 예외적용 문제는 지는게 이기는 게임이다. 야당도 그렇지만, 여당은 특히 더 그렇다.

2000년 5월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제정했다. 보통 '과거사법'이라고 부른다.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나는 당내에서 엄청난 반대와 저항에 부닥쳤다. 한나라당과 합의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차라리 하지마라"는 요구가 거셌다. 그러나 처리했다. 만약 그 때 과거사법이 통과돼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규명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회는 타협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반도체법을 합의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반도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여야 협상을 재개하자.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복원, 반도체법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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