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도이(Doe E·54)작가는 산책길에서 발 길에 채이는 강아지풀 등 잡초, 알지 못하는 어쩌다 듣는 새의 울음 소리 같은 일상 소재들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는다. 작가는 반복된 관찰, 마주친 순간의 감정과 연상된 이미지들을 더해 화면에 구현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할 때 그 뱁새다. 작은 몸길이와 붉은 빛 띠는 갈색털, 재잘대듯 휘파람 울음 소리가 특징이다.

소소소소(Small.Simple.Special.Smile) no.1, Mixed Media on Canvas,50×50㎝ 2024
소소소소(Small.Simple.Special.Smile) no.1, Mixed Media on Canvas,50×50㎝ 2024


뱁새는 작품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학명 '붉은머리오목눈이'에 국한하지 않는다. 작가는 가끔씩 나타나는 공황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산책길에 나서면서 소리를 접하게 됐다. 소리를 따라가며 연상하니 웬지 작을 것 같은 모습을 떠올리며 뱁새로 형상화하였다. 뱁새인줄은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알게 됐다. 

작가는 "뱁새는 정적인 화면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나, 작고 색도 뚜렷하지 않아 보잘것 없어 보인다. 작가는 뻐꾸기가 뱁새를 탁란(다른 둥지에 알을 낳아 자신의 새끼를 돌보는 습성) 대상으로 삼기에,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로 평가한다. 뱁새는 삶의 질곡을 치유로 풀어내는 매개라고 말한다.

새 소리를 들으면 머리 속이 시원해지고 정리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미미하고 볼품없는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지며 자신으로 생각이 옮겨 간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1986)의 단편 '원형의 폐허들'에서 새 울음 소리는 시각적 깨달음과 관련 있다. “그는 어느 새의 슬픔에 잠긴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 그는 아무도 살지 않으며 폐허가 된 사원이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최소치였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픽션들’중 ‘원형의 폐허들' / 민음사 송병선 옮김>

중동-터키와 요르단-에서 보낸 11년은 작가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새롭게 확장했다. 자주 접하는 고도(古都)의 유적과 이슬람 문화 특유의 현대식 건축물들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 ‘간극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중동 생활은 10여년 이전 한국에서의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으며, 종종 한국을 오가며 느끼는 감정은 언어로 표현이 쉽지 않았다.

비행기 차창으로 보이는 낯선 도시는 작업을 위해 화면에 쌓아올린 오브제로 보인다. 그러한 게 대상이 되고 실물이 되는 형언불가의 감흥을 스케치나 사진으로 남기는 과정이 생략되고 그 현실 또는 이면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마치 몸이 블랙홀로 딸려 들어가듯해 작가의 가장 예민한 감각을 일깨웠으리라.

어느 시간(A certain time-Smoky quartz) no.8, Mixed Media on Canvas,130.3×80, 2024
어느 시간(A certain time-Smoky quartz) no.8, Mixed Media on Canvas,130.3×80, 2024


이주 후의 ‘낯섦’과 ‘적응’의 반복 속에 부모의 부음을 받고 들어온 한국에서 부존재(不存在)와 맞닥뜨린 공허함은 중동에서 느꼈던 불안정한 고립감을 넘어서고도 남았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는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인 현전 (現前)과 부재(不在)를 흔적(trace)으로 설명한다. 현전(現前·presence·현재 있음)도 아니고 부재(absence)도 아닌 흔적은 ‘있다’, ‘없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비확정성(undecidable)'을 갖는다. 

도이 작가는 비확정적인 여러 요소들이 완전하게 결합되기 전의 불안정한 시공간을 작업으로 옮겨온 듯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중동 현지 풍경이나 생활 모습을 그리면서 오래전 ‘한국적인 작업’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시절이 되살아났다. 어렴픗이 양문화권에서의 경험을 녹여내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뚜렸해질 것임을 안다.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중동 특유의 색감, 반복되는 패턴의 문양, 그 지역 햇살의 강도·기울기, 하다못해 냄새 등이 한국으로 돌아와 느끼는 자연 친화적인 정서나 바탕 색감과 어우러질 수 있다고 본다. 지금도 종종 그 때 그 현실이 존재한듯한 느낌을 갖는다. 관건은 구조와 디테일의 조화이다.

도이 작품을 처음 보고 체코 작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1860~1936)를 떠올렸다. 도이 작가가 학부 시절,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선입견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알폰스 무하는 1차 대전 이전 세계 문화 중심지, 프랑스 파리의 벨에포크(belle epoque·좋은 시대)의 장식 예술가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에 등장한 아르누보(Art Nouveau)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주의에 대한 반발로 식물과 꽃 등 자연에서 얻은 특징적 장식, 섬세한 색감 및 풍부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아르누보 회화는 건축, 실내장식, 벽지, 가구, 카펫, 옷감, 포스터 등에 적용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을 창조, 고상한 예술과 대중의 간격을 좁히려 했다. 무하는 1896년에서 1902년 사이 석판화 작품에 응용한 장식 패널을 그리면서 육체와 자연의 다양한 관계를 제시한 '무하스타일(Le style Mucha)'을 만들어냈다.

어느 시간(A certain time-Ruby no.7, Mixed Media on Canvas, 40.9×24.2㎝, 2024
어느 시간(A certain time-Ruby no.7, Mixed Media on Canvas, 40.9×24.2㎝, 2024


도이 작가에게 양문화권에서 경험하고 해석한 일상의 시공간은 화면에서는 축조할 수 없는 구조, 디자인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는 상징으로 다가왔다. 산업디자인과 순수 미술을 오간 학구적 여정이 화면에 펼쳐진다. 화면에 네모를 이루는 선 또는 틀은 화자(話者)인 작가가 화면 밖에서 설정한 내재적 개념이며 프레임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낮과 밤, 의식과 무의식,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지성과 관능 등 두 가지의 대립적인 세계 속에서 나와 나안의 또 다른 자아를 가진 인간의 본성을 은유한다. 도이 작품에는 이처럼 선 또는 틀을 기준점, 경계로 삼고 상호 대립되는 가치관이 충돌하고 양분되는 현상을 드러낸다.

Beyond Collections No. 1~5, Mixed Media on Canvas_223x91㎝, 2022
Beyond Collections No. 1~5, Mixed Media on Canvas_223x91㎝, 2022


‘침묵과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은 '침묵'을 "존재하고 표현하려는 욕망(the desire to be, to express)"이라고 부르고, '빛'을 그 욕망의 성취와 동일시했다.

도이 작가는 살고자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려야 되니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다. 작가는 특정 스타일을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따르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학적 사조는 순환하는 경향이 있으나 역동적 흐름을 작가 혼자만으로 만들기 힘들다. 사회와 호흡하고 탄탄한 내재적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이든 잘 그려내는 기량은 기본일 뿐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60여편,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00여편,  2019년 10~2023년 4월 매일경제신문에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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