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의 경제이슈 분석]
尹 “연금 개혁, 청년 세대 수긍할 수 있게”…장년층∙야당 반발 불가피
전문가들, “尹 개혁안은 하지 말자는 것”…연금 수령액 17% 깎인다
연금제도에 무지한 尹, 연금은 ‘세대 연대적 성격’이 강한 사회보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 형식을 빌려 연금개혁안을 직접 발표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평가는 가혹하다.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 자동안정화장치 도입하면 연금 수령액 17% 삭감된다
세계 최고의 저출생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연금 고갈 시기가 빨라지면 빨라졌지, 늦춰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기에 인구구조나 기대수명 변화를 감안해 자동안정화장치까지 도입한다면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은 현재의 42%보다 더 떨어질 게 확실하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위이고, 연금 수급자 절반 이상이 월 40만원도 못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금 수급액이 더 줄어든다면 ‘노후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이 아니라 용돈 수준의 허울뿐인 연금으로 전락할 게 뻔하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할 경우 2030년 신규수급자 기준 국민연금에 가입한 평균소득자의 생애총급여는 1억2,675만원에서 1억541만원으로 16.8%(2,134만원) 줄어든다. 2050년 신규수급자도 1억2,035만원에서 9,991만원으로 17%(2,044만원) 깎인다.
참여연대는 “선진국의 자동안정화장치는 보험료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거나 공적연금에 대한 국고 지원이 상당 정도 규모에 도달한 경우에 도입됐다”며 “우리나라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했다. 이어 “(자동안정화장치는) 어떻게 포장해도 노후 소득 불안을 야기하는 연금 삭감의 수단이 될 것”이라며 “도입한 나라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도입하지 않는 나라보다 낮고 노인 빈곤율은 높다”고 강조했다.
세대별 차등화 방안도 논쟁적인 사안이다. 일단 세대 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방식이어서 중장년층이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특히 50대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자신보다 소득이 더 높은 20∙30대 정규직보다 더 비싼 보험료를 물리는데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데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여야 간 정쟁만 격화시킬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현재 월 33만원인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했는데, 장기간 국민연금을 부은 사람과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 간 형평성 논란과 갈등도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모든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차등화 기준을 마련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만큼 연금 개혁을 한없이 늦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20% 초∙중반대 지지율에 갇힌 尹, 청년층 구애로 지지층 복원 시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처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연금개혁안을 불쑥 들고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한번 청년층을 겨냥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에 앞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청년 세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다”라고 언론에 전했다. 윤 대통령도 직접 “청년 세대가 수긍할 수 있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윤 대통령 개혁안 내용을 보면, 젊은 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낮춰주고 군 복무 크레딧(군 복무 기간을 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을 대폭 강화했다. 또한 젊은 세대의 연금 수령에 대한 불안감을 고려해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법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금 고갈 시점을 2056년에서 2088년으로 32년 연장할 경우 보험료를 막 내기 시작한 젊은 세대도 안정적인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를 위한, 특히 청년 남성들을 위한 연금 개혁’인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20∙30대 남성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당선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세대는 오랜 기간 진보진영의 핵심 지지층이었다. 리버럴한 세대 특성상 진보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사병월급 200만원’이라는 두 가지 공약으로 20∙30대 젊은 세대를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치기하는 데 성공했다.
윤 대통령의 아마추어적 국정 운영과 잇단 정책의 실패는 20∙30대 남성들의 지지마저 철회하게 했다. 더욱이 이념적으로 극우 행보를 보이면서 뉴라이트, 공안검사, 태극기부대 출신을 잇따라 중용한 결과 국정 지지율이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수사가 국면 전환을 노린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듯, 윤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은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20∙30대 남성들에게 구애함으로써 무너진 지지층을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연금제도는 ‘세대 연대적 성격이 강한 사회보험’이다. 원래 경제활동을 왕성히 하는 세대가 좀더 부담을 지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세대 연대에 의해 연금제도가 유지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세대 갈라치기와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연금 고갈 시기를 연장해 보겠다는 윤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재학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일하며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올해 6월 뉴스버스 공동대표로 합류해 경제 부문을 맡고 있다. 뉴스버스TV에서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해주는 ‘고재학의 경제버스’를 진행한다. 스테디셀러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을 비롯해 <절벽사회>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 등의 책을 썼다. 우직하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힘을 믿는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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