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차등화, '정당하고 창의적'

연금 장기 부담자, 저소득층, 경력단절자 챙기는 게 진보 

민주당, ‘중장년 내 중산층’의 이기심 고취시켜

내가 알기로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속도의 세대별 차등화 방안을 가장 먼저 공개 석상에서 제시한 사람은 방송인 홍석천 씨다. KBS 1TV <이슈 픽 쌤과 함께> 2023년 4월 23일 방영분에서 홍씨는 일관되게 청년층보다 중년층이 더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보험료율을 올릴 때 중년층보다 청년층의 보험료율을 낮게 책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례는 없지만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화답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릴 때 연령대별로 다르게 적용하자고 제안한 홍석천 씨. KBS 1TV ‘이슈 픽 쌤과 함께’ 2023년 4월 23일 방영분.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릴 때 연령대별로 다르게 적용하자고 제안한 홍석천 씨. KBS 1TV ‘이슈 픽 쌤과 함께’ 2023년 4월 23일 방영분.


비슷한 아이디어는 또 나왔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올 초에 낸 저서 <개혁의 정석>에서,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우선 보험료율 인상에 집중할 것, 보험료율 인상분을 10년간 국가에서 지원할 것(해가 지나며 지원 수준은 점점 축소된다)을 제안하면서, 청년세대에 대해서는 더 오래 지원하는 시나리오도 첨부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받는 것에 비해 너무 적게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연금 개혁이란 한마디로, 연금 고갈 이후 미래세대의 보험료가 폭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다. 그런데 연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 연금을 더 내야 하는 시간에서 청년은 중년과 크게 차이가 난다.

이미 현재의 연금 수령자들과 중년층 상당수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체제의 수혜자들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던다면서 이미 수혜를 많이 본 세대가 아니라 청년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보험료율 인상 속도의 차등화는 정당하다. 아니 더 과감하게, 곧 연금 납부가 끝나는 세대의 보험료율은 즉각 인상하는 게 적절하다. 정부가 진작 차등화 방안을 발표했다면 개혁 동력도 커졌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차등화 방안을 두고 ‘전세계에 유례 없는 기괴한 제도’라고 비난한다. 자신들은 전세계에 유례 없는 기괴한 제도인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도 추진하지 않았나. OECD 반부패기구는 한국의 검찰수사권 축소가 반부패 역량을 저하시킬 것이라 우려하고 있으며 한국에 곧 실사단까지 파견할 계획이다. 

진보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의 길은 민주당과 전혀 다르다. 세대별 차등화 방안의 합리적 핵심을 취하면서도 이 방안이 놓치고 있는 사람들까지 보듬는다. 바로 ‘가입 기간’을 기준으로 한 차등화 제안이다. 중년층 중에도 저소득층이나 경력단절 여성의 경우는 가입 기간이 짧다. 연령이 아니라 가입 기간을 감안하면 청년층뿐 아니라 이들의 보험료율 인상 부담도 점진적으로 올릴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 연금의 보장성이 낮은 것은 소득대체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가입 기간이 짧아서였다. 보험료율 인상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가입 기간 확대에는 지장을 준다는 단점이 있다. 내만복은 일관되게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상 아닌 가입기간 확대’를 지향해왔는데, 이번에는 청년층과 중년층내 서민과 빈민을 아우르는 안을 내놓았다. 내만복이 진보다.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 연금 위기에 별 책임이 없는 청년층의 부담은 나 몰라라 하고, 가입기간 짧은 하위층이 아니라 월 4백만원쯤 받는 상시고용 중위 소득자 이상인 사람한테나 도움이 되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목을 맨다(지금도 월 150만원 소득자가 40년 가입하면 월 90만원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월 150만원 소득자가 40년 가입을 할 공산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중년층, 그중에서도 중산층의 관점으로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것이다. 

민주당의 일반적인 정책 기조가 그렇다. ‘수혜자에는 중산층 포함, 부담에서는 중산층 제외’. 때만 되면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동일 액수 지급’을 주장한다. 현금 지원을 받으면 서민층은 소비를 늘리지만 중산층은 소비가 아니라 저축을 늘린다. 동일 액수 지급이 정당화되려면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이 추가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서민과 빈민에게 더 돌릴 수 있는 몫을 중산층이 뺏어가는 것뿐이다. 이런 중산층 이기주의가 어떻게 진보인가. 

최근 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유예와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 자체가 중산층 이기주의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진보주의자에게도 ‘국짐 2중대’, ‘수박’이라 낙인찍던 이들이 주택 소유자, 주식 투자자에게 쩔쩔 매는 것을 보니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임을 절감한다. 

한국민의 사회경제적 의식은 결코 우경화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우편향적이다. 상위층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구보수 국민의힘과 중산층 이기주의 신보수 민주당, 이 둘에게 제도 정치권 전체가 장악됐기 때문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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