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의 경제이슈 분석]
국민연금 총지출 최근 2년 새 12조원↑…2056년 기금 고갈
국민의힘 ‘재정 건전성’ 강조…민주당 ‘노후소득 보장’ 중시
‘젊은층 덜 내고 중장년 더 내는’ 차등화…세계적으로 유례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 형식을 빌려 연금 개혁안을 직접 발표했다. 여권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며 세대 간 형평성도 높이는 방안이라고 자평했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 국민연금을 개혁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혹평했다. 특히 인구구조에 따라 보험료율과 연금 수령액을 자동 조정하는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하면 보험료율을 추가 인상하거나 지급액을 삭감할 수밖에 없어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모수(母數)개혁은 국민연금 제도의 틀은 유지하고 보험료율(현재 월 소득의 9%)과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연금수급 개시 연령(2022년 기준 63세) 등 핵심 변수를 조정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연금개혁을 뜻한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을 조합해 적정한 노후소득 보장 체계를 새로 짜고,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까지 통합하는 큰 틀의 제도개혁이다.
윤석열표 연금 개혁안은 과연 국민적 공감을 얻으며 순항할 수 있을까?
◇ 국민연금 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다수 국민이 동의한다. 돈 낼 사람(연금 가입자)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돈 받는 사람(연금 수급자)은 급격히 늘고 있어 불과 32년 뒤면 연금 기금이 완전 고갈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 추계를 보면, 국민연금 수급자는 2025년 721만명에서 불과 5년 뒤인 2030년엔 900만명으로 약180만명 늘어나지만, 같은 기간 가입자 수는 2,181만명에서 2,090만명으로 90만명 줄어든다.
이에 따라 연금 지급액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올해 연금보험료 수입은 60조7,000억원, 국민연금 지급액은 42조원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2012년에 10조원을 넘어섰고 10년 뒤인 2022년에 30조원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고작 2년 뒤인 올해 4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41년부터 국민연금 지출이 수입을 앞질러 적자로 전환되고, 2056년엔 기금이 완전 고갈된다는 게 정부의 재정추계 결과(국회 예산정책처는 고갈 시기를 2053년으로 예측)다.
◇ 21대 국회 개혁안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내는 돈인 보험료율이 월 소득의 9%,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이 42%다. 기금 고갈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보수진영에선 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다. 보험료율 인상에는 찬성하지만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는 데는 거부감이 강하다. 반면, 진보진영은 ‘노후소득 보장’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빈곤율을 고려할 때 지금도 형편없는 소득대체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시민대표단을 통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라는 다수안을 도출했으나, 소득대체율을 놓고 여야 간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양당 의견이 거의 근접(국민의힘 43%, 민주당 44%)한 상태에서 정부와 여당이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민주당은 ‘보험료율 13%ㆍ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을 먼저 처리하고 다음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만 조정하는 모수개혁만으로는 연금 고갈 시점을 7~8년 정도 늦추는데 불과하므로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하자며 팽팽히 맞섰다.
◇ 윤석열 개혁안 핵심은 ‘세대별 차등 인상, 자동안정화장치’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연금 개혁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출산 여성과 군 복무자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연금 고갈 시점이 빨라지지 않도록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하며,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을 차등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금 고갈 시점을 현재 2056년에서 2088년으로 30년가량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를 확정했다. ‘보험료율 13%’는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했던 안이다. 소득대체율은 2008년 50%로 조정된 후 2028년 40%를 목표로 매년 0.5%포인트씩 인하되고 있으나, 올해 수준인 42%를 유지하기로 했다.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43%)과 더불어민주당(44%)이 제시한 안보다 더 낮다. 윤 대통령이 발표했던 자동안정화장치,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 등 연금 개혁안의 큰 방향은 그대로 담겼다.
정부는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해도 기존 연금액보다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생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실질 연금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연금 수급자의 절반 이상이 월 40만원도 못받는데, 윤 대통령의 개혁안이 그대로 실행되면 '국민 용돈' 수준도 안 되는 허울뿐인 연금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연금 전문가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하면 지금도 낮은 국민연금액을 더 삭감해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수십년 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식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할 경우 평균소득자의 총연금 수령액이 17% 감소한다"며 "자동안정화장치는 결국 '연금 삭감 장치'"라고 비판했다. 1980년생(44세)과 1992년생(32세)의 총연금액은 기존 연금 수급액 대비 각각 79.77%와 80.72%로 떨어진다는 추계 결과도 제시했다.
① 저출생 대응: 현재 둘째 자녀부터 인정해주는 '출산 크레딧'을 첫째 자녀부터 인정해준다. 출산 크레딧이란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에 둘째 자녀는 가입 기간을 12개월 더해주고, 셋째부터는 자녀 1인당 18개월을 추가해주는 제도다. 앞으로 이 혜택을 첫째 자녀부터 12개월씩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군(軍) 복무 기간 중 6개월만 추가 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되던 현행 군 복무 크레딧 제도도 군 복무 기간 전체(육군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② 자동 재정안정화장치: 연금 지급액은 임금과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올라가는 구조로 돼 있다. 자동안정화장치는 출생아 감소, 기대수명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를 반영해 연금을 조정하는 장치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기금 고갈에 맞닥뜨린 일본 독일 핀란드 등이 도입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생애 총급여액을 고정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조정한다. 한마디로 수급 연령을 늦추거나 연금액을 깎는 등 연금 상승을 억제하는 장치인 셈이다.
③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차등화: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4%포인트 인상하되, 20대는 매년 0.25%포인트씩 16년간 인상하고 50대는 1.0%포인트씩 4년간 인상하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세대 구분 없이 보험료율을 일괄적으로 인상하면 앞으로 보험료를 낼 시간이 많이 남은 청년 세대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만큼 청년층의 인상폭은 작게, 중장년층은 높게 하겠다는 것이다.
고재학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일하며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올해 6월 뉴스버스 공동대표로 합류해 경제 부문을 맡고 있다. 뉴스버스TV에서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해주는 ‘고재학의 경제버스’를 진행한다. 스테디셀러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을 비롯해 <절벽사회>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 등의 책을 썼다. 우직하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힘을 믿는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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