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경도 불투명한 반실용 정책, 곳곳에서 후과 초래

美 대선서 사라진 북핵 대응…강경 일변도 정책의 결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1주년 한미일 협력 성과 등 현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1주년 한미일 협력 성과 등 현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외 외교안보 환경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이 보내는 오물풍선 때문에 장병과 공무원들이 수시로 하늘을 쳐다봐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군과 당국은 길거리의 CCTV와 연동해 공중에서 풍선을 탐지·요격하는 방안을 강구했다고 밝혔다. 대일 정책은 광복절을 두개로 쪼개는 등 전에 없는 국내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대선이 치러지는 미국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 공화 양당이 집권 후 실행에 옮길 정강정책에서 북핵 대응 방안을 제외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부정적인 결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다. “보여주기식 남북 대화는 하지 않겠다”거나 “북한에 굴종하는 평화는 안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지극히 온당하다. 과거 일부 민주당 정권에서 과도하게 북한에 유화적인 정책이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북한과 끊임없이 적대적 상황을 조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부가 하는 것이라곤 북한 적대시뿐이다. ‘보여주기식 남북 대화’가 잘못됐다면 그 반대로 ‘실제로 도움이 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면 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제 나름대로 남북 관계를 개선할 대안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과 수단으로 들어가보면 더욱 한심하다. 내놓은 것이라곤 오로지 북한에 대한 비난과 조롱, 그리고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내부에 대한 비판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렇게 북한을 비난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신의주 등에 대대적인 홍수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도움을 제안했다. 과거 1970~1980년대에도 이런 장난같은 제안은 없었다. 명분이 없으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 남측 주민들이 보기에도 진정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북한이 어떻게 응하겠는가. 윤 정부가 역대 보수 정권이 견지했던 최소한의 합리성과 일관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일본 정책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양보여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잇딴 ‘전향적 조치’에도 전혀 호응하지 않고 있다.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광복절 다음날 일본의 과거사 반성에 대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게 과연 진정한가”라고 말했다. 제정신인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정치는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 일을 강요하는 힘이라는 기본적 정의조차 망각한 논리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선의에 기댄 평화’는 안된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선의에만 기댄 조치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또 걱정스러운 것은 윤 정부의 불투명성이다. 지난달 한·미·일 국방장관이 도쿄에서 만나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 협력 각서’에 서명했다. 1년 전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발표한 3국 협력 선언을 실행에 옮길 구체적 계획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한·미·일이 군사 동맹 수준으로 행동하기로 약속한 3국 안보 협력 각서에 서명하고도 원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원식 당시 국방장관은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 인터뷰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3국 국방장관이 서명한 ‘불가역적 문서’로 정권이나 국내 정치 사정에 따라 되돌릴 수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안보 조약에 대해서는 국회가 비준동의권을 갖는다는 원칙도 무시한 채 비밀리에 3국 군사 협력 방안의 수위를 높이고, 그것도 되돌릴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전혀 밝히지 않은 내용을 일본 언론에 공개했다. 북한 해역으로 넘어갔다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전 정부 국방부장관까지 구속하며 진상을 밝힌다는 정부가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비밀에 붙인다니 어이가 없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이 정책 지향점과 목표를 밝히는 문서에서 북핵을 제외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북 비핵화가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북핵에 대한 대응이 장기 과제로 넘겨졌다고 보는 게 옳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비한다며 미국을 향해 대응 수단을 강구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런데 대선을 앞두고 미국이 북핵 대응을 뒷전으로 미뤄놨다는 것은 윤 정부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북핵 폐기를 포함해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안해야 하는데, 이를 포기하니 덩달아 미국의 관심이 멀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며 핵 폐기 노력은 도외시한 채 핵무기 공격만 막으려고 미국에 핵 우산 제공을 요구만 하다 벌어진 일이다. 적대시 정책으로 일관하다 북한 핵 개발을 촉진한 꼴이 되었다. 경제 개발을 통해 살려고 발버퉁치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다는 판단을 굳히도록 한 것이 누구인가. 

문정인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이 좁은 한반도의 외교안보에서 보수 정책이 어디 있고, 진보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당대의 외교전략가로 통하는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한국의 외교도 이제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정권에 따라 외교안보 정책이 크게 흔들리면 안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즉, “민주당이 집권하면 1시에 시침을 맞추고, 보수당이 정권을 맡으면 3시에 맞춰놓고 그 사이를 오가는 정도의 탄력을 보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상식과 합리성을 담보한, 그리고 투명한 외교안보정책이 필요하다. 이 원칙을 서둘러 회복하지 못하면 외교안보에서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뒷받침해야 한다. 서명운동에라도 나서고 싶은 심정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2024년 퇴직했다.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저작권자 © 뉴스버스(Newsvers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