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절반도 안돼 이념에 포획된 말기적 국정운영
방송장악, 청문회 제도 훼손 등…尹, 정상궤도 이탈
윤석열 대통령이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MBC KBS EBS 이사진 선임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방통위원장으로서 결격 사유는 다 덮어두고, 그를 앞세워 방송 장악을 기도하고 있다.
여야간 정쟁이 방송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킨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논란의 시작점이 어딘지, 또 책임의 경중이 누구에 있는 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노골적인 방송장악 기도가 그 원인이다. 과거 편향적 인사로 방송을 망가뜨린 인사들이 하수인 노릇을 하며 보복극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후과가 커지고 있다.
청문회에서 확인된 이진숙의 언론관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극우 편향의 인식과 무지를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방통위원장 취임을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언론노조에 장악당한 공영방송을 제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주장이다. 그가 MBC 간부 시절 추진했던 민영화 및 사원 감시 등은 공정방송과 거리가 멀다. 방송사 노조의 존립 근거와 이들의 방송 콘텐츠 감시 활동은 정당한 절차이다. 개별 노조의 과도한 행동은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게 논란거리라면 노조가 있는 전 세계 방송사는 모두 좌파 방송이 된다.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허위 주장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펼치는 사람을 방송정책의 수장으로 굳이 임명한 윤석열 정부의 수준을 드러낸다.
시민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도덕성이었다. 이 위원장은 대전MBC 사장 당시 공적인 업무에 한해 엄격히 써야 할 법인카드를 함부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주말이나 휴일 등에 때로는 자신의 집 근처 등에서 여러 차례 썼다. 2015년 3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법인카드로 모두 1억 4,279만 원을 썼는데, 이중 접대비 명목으로 지출된 돈이 6,682만원이었다. 그런데 어디에 썼는지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내부 규정에 맞게 썼다”거나 “개인을 위해 쓴 건 한 푼도 없다”고 우겼다. 서울 종로구 주유소에서 1회 주유비로 200만 원을 한꺼번에 결제한 것이나 관계회사 접대를 이유로 1,559만원 상당의 와인을 대량 구매한 것은 법인카드 유용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그렇게 법인카드를 썼다가는 감사를 받고 징계받는다고 시민들이 혀를 차고 있다. 그런 사람을 장관급에 기용한 것에 시민들이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그의 전력과 인식도 상식을 벗어났다.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없는, ‘태극기 부대’의 극우 편향적 시각 그대로였다. 심지어 그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여부)는 논쟁적인 사안”이라며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본군 성노예는 유엔 등 국제사회가 확인한 전쟁범죄로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반인권적 인식을 가진 사람을 대한민국의 공직자, 그것도 공정과 상식을 철칙으로 삼아야 할 방송통신 정책의 최고 책임자로 두는 것은 국가적인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그의 임명을 강행했다. 근근이 명맥이나마 유지하던 청문회 제도도 파괴한 것이다. 그리고 이 위원장은 보란 듯이 그날 첫 행보로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과 KBS 이사진 선임안을 의결했다. 지난 달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이 사임 후 방송위 2명 체제가 무너지자 또다시 비정상적인 2인 체제를 만들어놓고 의결을 강행했다. 2시간 동안 80명의 이사 후보를 놓고 토의했단다. 그래놓고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했노라고 했다. 오죽하면 보수 신문조차 “임기가 보름 이상 남은 MBC와 KBS 이사 선임이 통상 절차를 생략해야 할 만큼 부득이하고 긴급한 안건일 리 없다”며 “야당의 탄핵안 표결에 앞서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당에 유리하게 바꿔놓으려는 꼼수라 해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을까.
무리수는 또다른 무리수를 부른다. 민주당이 이 위원장 탄핵에 나섰다.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에서 시작해 김홍일을 거쳐 이진숙으로 이어지는 탄핵 추진은 유감스럽다. 비정상 국정운영에 대결로 맞서기만 하는 것은 하책이며, 민주당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야 모두 냉정을 찾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게 맞다. 그 첫단추는 역시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바꾸기는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지난 1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을 노동부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정치 편력 끝에 태극기 부대와 함께 극우적 행보를 보여왔다.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국민통합을 생각한다면 노동부장관으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노동 개혁’을 위해 기용한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이미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총선 후 민의를 수용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결국 허언이 되었다. 시민들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은 정권의 안위를 위협하는 심각한 징후이다. 윤 대통령의 통치 철학의 부재와 국정 운영 능력의 실종을 입증한다. 이진숙과 김문수 지명이 윤석열 정권의 마지막 비명처럼 들렸다면 지나친 말일까? 신중한 시민들조차 대통령 탄핵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허물어지는 민생을 위해이 폭주를 멈춰야 하는데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2024년 퇴직했다.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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