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섬가이즈>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습을 웃음과 함께 풍자한다. 두 남자의 험상궂은 외모와 분위기는 오해를 야기하고, 황당한 죽음을 부른다. 게다가 염소 귀신의 등장과 퇴치 과정은 끊임없는 웃음을 보태고 있다. 보편성(외모에 대한 편견)에 한국적 독특함을 더한 성공한 리메이크 사례다.
<탈주>는 북한 탈주병 규남에게 자신을 대입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새 규남(이제훈)을 응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왜 그처럼 살지 않았는지 반문한다. 실패할 자유를 외치는 그 앞에서 초라해지는 것은 현상(구교환)만이 아니다. 실패나 남의 시선이 무서워, 혹은 지금의 안정된 생활의 파괴가 두려워 현실에 안주한 개인에게 일갈하는 작품이다. <핸섬가이즈>는 제 3자적 입장에서 느긋하게 즐겼다면, <탈주>는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한방 맞은 느낌이다.
현실 풍자 <핸섬가이즈>
<핸섬가이즈>는 기대 이상이다. 남동협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잘 생겼는가, 복장은 깔끔한가, 옷을 잘 입었는가, 무슨 차를 모는가 등의 기준을 통쾌하게 비웃는다. 어느 사회이고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래서 원작 <터커 & 데일 Vs 이블>도 외모와 여러 가지 상황적 요인으로 인해 살인마로 오해받는 두 남자를 얘기한다. 이 영화는 엘리 크레이그가 감독했고, 미국과 캐나다 공동제작 영화다.<핸섬가이즈>는 원작의 주요 설정은 가져오면서도 염소 귀신이라는 한국적 오컬트 요소를 추가한다.
재필(이상민)과 상구(이희준)는 험악한 외모에 정이 가지 않는 옷차림, 낡고 오래된 트럭, 그곳에 실린 위협적인 장비에 염소 사체까지 엮이면서 살인마로 오인된다. 조회 결과 아무 죄가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최소장(박지환)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박지환은 등장 자체가 즐거움이다.
물에 빠진 미나(공승연)를 구하지만, 이 또한 납치로 오해받는다. 미나를 구하기보단 자신의 휴대폰 회수가 급했던 이성빈(장동주) 일행은 재필과 상구의 집을 감시한다. 마침내 일행 중 일부가 각자 재필과 상구와 대면하지만, 우연히 사고를 당한다. 이들이 죽는 방식은 다양하고도 잔인하지만, 표현 수위를 조절해 심한 공포를 주진 않는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한 염소 귀신은 차라리 귀엽다. 이 귀신은 소름 끼치거나 아주 무섭지는 않다. 두 남자가 이사 온 시골집에 얽혀있는 귀신 이야기를 이성빈과 연결하여 재미있게 풀었다(천만원짜리 부적 모습, 부적의 무력함 등). 염소 귀신은 생소하지만, 한국 샤머니즘에서 염소는 주로 제사나 의식을 행할 때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폭소 장면)는 가톨릭 신부와 관련된 장면들이다. 외국인 베이커 신부가 떠나며 남긴 중요한 메시지를 어린 소년 요한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영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요한은 자라서 신부가 됐지만 이젠 나이가 많다.
염소 귀신 공격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요한 신부가 하는 영어 대사는 아마도 한국인만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를 오랫동안 배웠지만 회화를 못하는 한국인의 영어를 놀릴 때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이 대사를 듣고 공감하는 관객이 많을 것 같다. 이러한 풍자를 곳곳에 잘 녹였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려 들거나 교육하려 하지 않는다. 이 점이 매력이다.
현실에 안주한 개인에 일침을 주는 <탈주>
<탈주>라는 영화 제목과 내용을 들었을 때 보고 싶은 생각 적었다. 이제훈과 구교환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북한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얘기가 더 남았나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2000)도, 8백만명 이상이 본 <웰컴투 동막골>(2005)도, <의형제>(2010)도 있다. 최근 영화로 <공작>(2018)과 <공조>(2017), <공조2: 인터내셔날>(2022)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탈주>는 단순히 북한을 탈주하는 병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영화다. 특히 나에겐 그랬다. 규남(이제훈)의 목숨을 건 탈주는 많은 점을 사유하게 한다. 탈주에 성공해도 규남에겐 주어진 확실한 미래가 없다. 아니, 규남은 그를 쫓는 현상(구교환)으로 인해 살아서 남한에 갈 확률조차 희박하다.
그런데도 규남은 그 무모한 실행을 감행한다. 그도 알고 있다. 그가 남한에 간다고 해서 보장된 미래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남은 실패하고 싶어서 남한에 간다고 한다. 북한은 실패할 자유조차 주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엔딩에 아문센 탐험가 책 위에 손으로 쓴 문구가 이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해준다. 죽음보다 의미없는 삶이 더 두렵다고.
<탈주>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 이유는 규남의 탈주 노력 외에 그를 잡으려고 추격하는 현상의 복잡한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현상(구교환)은 탁월한 피아노 연주가였지만, 이를 포기하고 보위부 장교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피아노 연주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끝내는 규남을 살려주지 않았을까.
이제훈 배우가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았다. 영화 촬영 내내 구르고, 뛰고, 늪에 빠지고, 총탄 세례를 받고 결국은 총에 맞는다. 규남의 살고자 하는 욕망이, 그리고 스스로 결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스크린을 넘어 전해져온온다.
<핸섬가이즈>와 <탈주>를 이끌어 가는 힘, 추동력은 이성민과 이희준 그리고 이제훈과 구교환이다. <핸섬가이즈>는 원작 영화에 대한 평가가 좋지만, 원작이 훌륭하다고 리메이크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핸섬가이즈> 예고편에서 서로를 보면서 잘 생겼다고 칭찬하는 부분이 있다. 어설픈 배우들이 연기했다면, 이 장면은 지금만큼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극장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 시퀀스다. 이제훈과 구교환 모두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다.
<탈주> 관람 후 <고속도로 가족>(2022)을 우연히 보게 됐다. 학교에 가고 싶은 10살 딸이 아빠에게 말한다.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그러자 아빠는 답한다. 다녀봤는데 별거 없더라고. 다시 딸이 말한다. 자기도 다녀보고서 말하고 싶다고. 10살 소녀도 직접 해보고 결과를 알기를 원한다. 이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규남이는 얼마나 스스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을까? 늦었다 생각 말고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보자.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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