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5대를 잇는 한국화 화맥 DNA의 무게를 극복하다

‘허진 작가’하면 그의 대표 작품 이미지들이 떠 오른다. 화폭 속 대상인 동물과 사람들이 부유한다. 이들은 빙빙 도는(whirl around) 듯이 보인다. 상호 관계를 갖지 않아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떠돈다. (포유)동물은 크게 집중되어 가죽과 피부의 질감까지 표현된다. 인간은 단색으로 하나의 유닛(unit)이 되어 화면 곳곳에 떠다닌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18-4 145×112cm×2개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8년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18-4 145×112cm×2개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8년  

동물 이미지는 각종 영상물, 사진 등 매체에서 가져온다.

작가의 대표 이미지를 방해하는 키워드들도 어른거린다. 키워드와 연관된 메시지가 이미지의 진면목을 방해한다.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뒤따르면 작품의 본질은 사라지고 만다. 허진의 작품과 (대부분) 타인들이 생산한 (문어체의) 언어들은 보완적이지 않고 충돌한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 1915>이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을 직감했지만,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미술사는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의 의미를 ‘언어로 정리하기 위해 며칠간 식음을 전폐 했다’고 알려준다.

모든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개념 또는 언어로 명료하게 정리되어지길 원한다. 

10여년 전 허진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불편했다. ‘불편’은, 미학적 관점에서는 다른 잣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편하게 눈에 들어오는 풍경화가 아니다.

유목동물+인간문명 2020-10 130.5×97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0 
유목동물+인간문명 2020-10 130.5×97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0 

지난 22일 성북동 그의 작업실에서 본 그의 작품은 ‘밝아졌다’이다. 색을 중심으로 확연히 변화가 커 보였다. 

작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물질 문명 비판’이라는 공통의 메시지가 이미지를 압도하는 게 아닌가?” 그는 이를 인정하였다.

서른 두 번의 개인전을 하는 동안 스스로 또는 평단에서는 시기별로 시리즈 이름을 붙였다. 필자에게는 다중인간, 현대인의 자화상, 익명인간, 유목 동물 등은 동일한 주제의 유사 반복의 키워드로 읽혔다.

가계(家系)

허진은 자신의 가계(家系)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으나 세월은 주변과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된 그 무게에 적응되게 만든 듯도 하다. 그는 분명 서양화 작업을 하면서도 “한국화(동양화)는 여백이 있고 함축적인데…”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 강박증을 가지고 있고 대학에서는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한국화 전공 교수이기도 하다.

허진은 부친을 이어 법대를 진학하고자 했으나 고 1때 미대 진학으로 방향을 정하고 방학 때면 목포로 내려가 할아버지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8~1987)에게 사군자를 배웠고 서울에서는 화실을 다녔다.

대학을 회화과로 입학했다. 석고 데생은 공통 과목이었으며 수채화, 동양화 전공으로 나뉘었다. 자신은 수채화를 선택했다.

의외였다. 가계와 어긋나는 (동양화를 선택하지 않은) 방향으로 인해 5대째 한국화 맥을 잇는다는 자존감을 가질 수 없었다고 말한다.

대학 졸업 후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 그는 모교 대학원 시험에 2년 연속 낙방했다. 그 기간 동안 문학과 철학, 기독교 등에 탐닉하였다. ‘묵시’, ‘유전’ 등 초창기 작품들은 이 때의 학습에 영향 받았다. 소재가 뻔한 문인화(한국화)는 인문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전 15,3600×340cm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1992
유전 15,3600×340cm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1992

추상은 잠시 시도했으나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곧 알았다. 타인들의 추상 작품에서도 감흥을 못 느낀다. 그에게는 소위 ‘추상 충동’이 없었다.

독일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 는 알로이스 리글(1858~1905)의 ‘예술 욕구’를 ‘감정 이입 충동’과 ‘추상 충동’으로 구분했다.

결핍, 화풍으로 정립

가계와 더불어 그가 숙명으로 끌어안고 가는 것은 청각 장애이다. 결핍은 부딪히는 인간 관계에 있어 파편적인 것들도 전부 알아야 하는 노력이 뒤따랐다. 

일대일로 상대방과 소통할 때는 계속 물어볼 수 있지만, 다자간의 대화는 힘들다. 소리가 들려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 대화를 보충하는 정보와 자료는 찾아보게 된다.

이러한 게 그의 그림에서는 도상(圖像)들로 나타난다. 그는 늘 사람에 집중한다. 난청은 언어 장애로 이어지기에 상대의 입 모양을 살피다 보면 사람을 관찰 할 수 밖에 없다.

동물은 표정이 없는데 인간만이 표정이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표정을 만들 수 있는 근육은 포유동물 중 인간에게만 있다.

유목동물+인간문명 2010-36, 162×13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0
유목동물+인간문명 2010-36, 162×13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0

시각예술가는 눈에 보이는 인물과 사물들에 대한 관찰은 기본이다. 그 또한 훈련이 중요한데 자신의 조건이 도리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도시에 사는 집합동물로서의 인간 군상의 탐구로 이어져 서사와 형상 중심의 구상에 매달리게 했다.

그는 지난 해 10월 부인 고(故) 김소연님을 잃었다. 그의 인생 전체 버팀목이 무너져 버렸다. 지난 10월의 서른 두 번째 전시 <뫼비우스 노마드>는 고인을 추모하는 1주기 전시이기도 했다.

허진은 자신의 DNA 자체이기도 한 한국화를 시에 비유한다. 시어는 간결하다. 여백은 상상력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의 고조(古祖) 소치 허련(小痴 許鍊,1808~1893)의 작품 <매화서옥도, 梅花書屋圖>에서의 여백은 동장군의 맹위(猛威)를 떨치고 매화가 핀 듯 하다.

그는 현대 미술에서는 ‘화면 가득 채우기’ 또한 여백일 수 있다고 본다. 

허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동굴(Spielraum= 놀이Spiel + 공간Raum)에서 자막 나오는 텔레비전과 영화에 매몰되었다. 가계의 출발지인 전남 진도와 목포 해안가를 다녔던 기억은 예술혼이 발아되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 서걱거리는 갈대 소리에 피는 해무(海霧)는 그 자체로 그림 공부가 되었다.

중학 2학년, 서울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에 자주 영화를 보러 갔다. 어느 날은 출입구에서 입장을 막았다. 우여곡절 끝에 본 영화는 프랑수와 트뤼포 (François Truffaut, 1932~1984) 감독의 <쥴 앤 짐>(Jules et Jim)이었다.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는 자유로운 만남에서 시작해 소유와 집착의 단계를 거쳐 절망적으로 끝나는 사랑의 극단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무언가 확 찌르는 것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그게 ‘푼크툼’(Punctum)이라는 걸 알았다. 푼크툼은 롤랑바르트 (Roland Barthes)가 정립한 개념으로 '주관적 해석'이다. 리글이 말한 ‘예술 욕구’이다.

1995년 그의 세 번째 개인전의 그림 속 주인공은 썬글라스 낀 남성이다. 각종 영화와 뉴스의 스토리와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에 여과 없이 등장한다. 

한국화의 현대화에 대한 허진의 고민은 필기구에 대한 관심으로도 옮아갔다. (은)인터펜에 대한 재미를 붙였고, 먹 바탕에 두 개의 펜을 평행되게 긋는 맛이 있었다. 

밀레비치는 <검은 사각형> 관련, ‘세계 속 대상을 붓이 아닌 펜으로 실험하게 된다. 붓은 이미 낡았다’며 펜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은행원이었던 허진의 부친은 펜으로 쓰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펜 글씨 또한 경륜에 따른 내공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묵은 ‘서화일치’(書畵一致)를 지향한다. 모든 것은 붓에서 시작한다. 사군자는 선의 이해가 기본이고 다음이 먹이다. 손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되는 주류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손 맛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2008년 서울시 공모에 <동대문의 지역성과 역사성에 관련된 11가지 추억>이 당선되었다. 높이 6미터, 길이 1km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미지들은 포토샵 작업을 거쳐 출력하였다. 수개월 뒤 철거되었다. DDP 설계자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조감도나 투시도 등을 이미지화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으나 이미 반영하였다. 시장의 업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철거의 이유로 짐작한다.

유목동물+인간 문명 2016-26(동학혁명 운동 이야기) 130×162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6
유목동물+인간 문명 2016-26(동학혁명 운동 이야기) 130×162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6

2019년 서울 통인 갤러리에서의 전시 <기억의 다중적 해석>에서는 동학혁명을 이끈 전봉준과 김개남 등의 한자(漢字) 이름과 창을 든 농민들, 일본 군인, 그의 최근 시그니처인 ‘유목동물’을 걸었다. 허진은 초창기 작업에서도 김구, 안창호 등 한국 현대사의 인물 작업을 하였다. 

과제

허진은 산수화를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연히 현대적 풍경이며 고전 산수를 전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40~1950년대 남농은 목포에서 활동하면서도 중앙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산수화풍을 정립한다.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화맥 5대의 작품 전시를 기획했으나, 남농 만의 전시를 강하게 주장해 성사시켰다. 남농의 독창적 화풍을 좀 더 알려야 된다고 본다. 전남 광주에서는 점차 잊어버리는 이들이 많아 화맥을 주제로 전시를 가졌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13-2, 162×130×2개 한지에 수묵 및 아크릴 2013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13-2, 162×130×2개 한지에 수묵 및 아크릴 2013

1995년 결혼 후 직장이 있는 전남 광주에서 7년여를 생활하면서 주말마다 호남을 중심으로 경남, 충청권을 여행하며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산수화는 유래를 보면 어차피 판타지이며 가상현실이다. 혼란기에 되레 문화융성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사조가 탄생한다.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 노자(老子), 장자(莊子),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결합시킨 현학(玄學)이 나오면서 산수화가 등장한다. 산수화는 남농처럼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묻혀 버리고 만다.

전남 진도의 운림산방(雲林山房)은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련이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이다. 소치는 32세에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서화가이자 조선의 금석학(金石學)을 학문의 반열로 끌어올린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제자가 된다.

소치의 넷째 아들이 목포의 최초화가 미산 허형(米山 許瀅,1862~1938)이다. 또 그의 4남인 남농 허건은 운림산방을 복원한 호남 전통화파의 상징적 고봉으로 평가받는다. 남농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인 허진은 목포의 기념관 리모델링 계획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개념미술은 콘티를 짜서 작품을 제작 의뢰한다. 이런 시대에 한국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은 난제이다.

허진은 자신의 대에서 직계 화맥을 단절시켰다. 큰 아들은 레지던트 2년차이며 둘째 아들은 역사를 좋아하는 컴퓨터 공학도이다. 

허진은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며, 남농 허건의 장손이라는 무게를 견디면서도 이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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