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에 주맹증 상상력 입힌 팩션 사극 영화

<올빼미>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극 스릴러였다. 이런 사극영화를 관람한 기억이 없다. <인조실록>의 소현세자(김성철) 죽음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를 등장시켜 영화를 긴장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침술사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 낮에는 볼 수 없지만, 밤이 되면 볼 수 있다. 침술사가 궁에서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목격자이자 용의자가 된다. 맹인 침술사 류준열과 왕이 된 유해진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이다. 영화 관람 후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게 한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출처: MOVIE&NEW 무비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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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면 재미가 두 배  

영화 속 인조의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조는 조선의 16대 왕이다. 그는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선조의 손자이나 적통은 아니다. 아버지인 정원군이 후궁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왕위 계승의 정통성에 부족함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병자호란(음력 1636년 12월 ~ 1637년 1월) 당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다-를 하는 치욕을 겪었다. 왕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영화 <남한산성>에 이 전쟁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병자호란 참패로 청나라에 잡혀갔던 세자의 귀환이 그리 반가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인조가 그의 아들을 죽였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인조가 처한 상황,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인조에게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과 소현세자가 가져온 청나라 문물의 수용은 불가한 것이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아마도 감독은 이점에 착안해서 인조가 어의 이용익(최무성)을 사주하여 자식인 소현세자를 죽였으리라 상상했던 것 같다. 어의 이용익도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 사람이었다. 인조는 추후에 자신을 독살할 역모죄로 엮어 세자빈 강씨와 원손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인조는 차남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했고, 나중에 효종이 되었다.

출처: MOVIE&NEW 무비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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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사극에 스릴러 장르 접목 

<올빼미>는 역사적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 사극이다. 사료에 기반하면서 맹인 침술사를 가미한 기발한 스릴러물이다. 포스터를 보면서 상상했던 사극영화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 사극 중에 스릴러 장르를 내세운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엄청난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2005), <관상>(2012),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비롯하여 <남한산성>(2017), <궁합>(2018), <명당>(2018), 그리고 최근작 <자산어보>(2021)는 드라마 장르다. <창궐>(2018)을 스릴러 장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주요 장르는 액션(좀비물)이다. 

이 점에서 최근 사극영화에서 스릴러를 주 장르로 내세운 건 <올빼미>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나 스스로도 사극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몰입을 하고 가슴을 졸이면서 본적이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조실록에서 찾아낸 한 줄의 글귀로 이렇게 살아 숨 쉬는 듯한 상상력을 내뿜다니 대단하다. 

조선왕조실록(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 6월 27일)에는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라고 적혀있다. 

출처: MOVIE&NEW 무비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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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 관객을 돌파한 <올빼미>에는 류준열과 유해진 배우의 힘도 있겠지만, 신선한 소재와 긴박하고 박진감 있는 전개 또한 기여했다. 지루할 틈새가 없다.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의 흔적이 지속된다. <올빼미>를 연출한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에 조연출로 참여하였다.

두 배우의 연기 도전

<올빼미>를 보기 전 나의 주요 관심사는 2가지였다. 류준열이 맹인 침술사 역할을 무난히 해낼 것인가와 유해진이 인조의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지였다. 영화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류준열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주맹증(밤에는 보인다) 환자라는 설정이 이런 나의 우려를 없앴다. 아마 류준열도 이런 점에서 좀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낮에는 보이지 않는 연기를 했지만, 연기는 무난하고 자연스러웠다. 경수가 보게 된 비밀과 궁의 권모술수,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침술사의 의지가 매력이다.

출처: MOVIE&NEW 무비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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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를 연기한 유해진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평소에 코미디 역할을 많이 맡는 그가 폭주하는 왕의 연기도 훌륭하게 해냈다. 기자 간담회에서 유해진은 이전에 연극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단지 아쉬운 점은 그가 나오는 분량이 적었다는 점이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더 많은 것을 기대했는데 좀 아쉬웠다. 

‘유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를 보았다. 유해진은 과거에 35살까지 연기를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영화와 TV를 오가면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왕의 남자>에서 뙤약볕 아래 엎드려서 뜨거운 열기를 받으며 연기했던 자신이 <올빼미>에서는 왕이 되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그의 노력이 보답받았다고 생각했다. 

출처: MOVIE&NEW 무비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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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인조와 최대감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 결탁하는 그 장면은 굉장히 익숙하다. 비록 이야기는 과거에 있으나, 이런 사실은 현재 진행형이다. 자신들의 권력과 이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불의와 결탁하고, 이전의 과오는 잊혀지고 사라진다. 자신의 세손이 자신의 권력과 안위에 위험이 된다면 그냥 하나의 걸림돌에 불과하다. 그가 죽던지 살던지 관심 없다. 아니 죽기를 바랄 것이다. 침술사 경수는 목숨을 걸고 세손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본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의 소망(사필귀정)을 들어준 것인지 모른다. 침술사 경수는 운 좋게 살아남아 명의가 되었다. 그는 마침내 인조의 병을 고치기 위해 불려가고, 그곳에서 그를 죽인다. 그리고 죽은 이유도 세자와 같이 학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도 인조의 죽음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련 역사를 찾아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인조반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이 궁금해졌다. 조선왕조실록 내용이 왕별로 분류되고 연도별 날짜별로 번역되어, 온라인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놀랐다. 이제는 본인이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과거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도 매우 쉽다. 우리는 정말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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