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아주 친숙한 아주 낯선’은 충남 아산시 아산코미디홀에서 11일 까지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Broken Flowrs, 2005)는 난해하다. 크리스토퍼 미소(Christopher H. Measor) 작가에게는 한 가지 단서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는 사례였다.

주인공 돈 존스턴에게 발신인 불명의 옛 연인에게서 온 분홍색 편지는 자신에게 아들이 있으며 그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수수께끼의 단서를 쥐고 있을지 모르는 옛 연인들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Rock Cats Indie Band / 제공=갤러리 거제
Rock Cats Indie Band / 제공=갤러리 거제

미소 작가에게는 답이 없는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분홍색 편지’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편지 내용과 단서를 알 수 없어도 영화 전체를 특징짓는 부분들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것이 <인디록 밴드 고양이들, Rock Cats Indie Band >이다. 

이 작품은 또한 워스 앤더슨 감독의 코미디 영화 ‘로열텐나바움’(The Royal Tannenbaums)이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도깨비   불’’ ( Le Feu Follet , Will O' The Wisp, 1963)에서 차용한 미술적 장치들을 오마주했다.

각 영화들의 캐릭터들은 주변 사물들과의 '인터랙티브'(상호관계·interactive)를 통해 규정된다.

음악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가 연인을 위해 작곡한 노래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1897)’는 그의 사후 38년만에 영화 ‘도깨비 불’에 삽입되면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미소 작가는 음악을 조형 언어의 하나로 본다. 요즘은 보 버넘(Bo Burnham, 1990~ )이 만든 인사이드(Inside) OST와 캐나다 인디밴드인 아일랜즈(Islands) 음악 등을 주로 들으며 작업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밥 딜런(Bob Dylan)의 음악처럼 옛날 이야기를 차용하여 현재를 표현하면 좋겠다. 나는 형상으로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 <작가노트>

미소 작가는 영화 ‘브로큰 플라워’가 표현하는 스토리텔링 방식과 영화 ‘로열텐나바움’, ‘도깨비 불’의 미술적 장치들을 작품에 투영시켰다. 그림의 출발은 분홍색 편지 한 장이었다.

이러한 구도와 공간 구성은 최초의 팝 아트 작가로 불리는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 1922 ~ 2011)의 작품,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Just what was it that made yester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Digital print on paper, 1956년) 에서도 보여진다.

작품의 대상 또는 화폭 안 소품인 전자 제품 등을 '발견된 오브제(objet trouve)'라고 부른다.

미소는 영국계 캐나다 작가이다. 고교 시절인2000년 초, 일본의 애니메니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동양 문화 전반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후 일본 도쿄의 무사시노 예술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전설이야기나 고전, 현대적 영화와 음악에 심취하였다. 유럽의 민화나 고전들의 풍자와 철학이 담긴 그만의 해석과 영상에서 본 스토리를 응용해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다.

무사시노에서 김경진씨를 만나 6년간 일본 체류를 끝내고 국내로 이주하였다. 작가 활동을 한국 부산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김경진은 부산비엔날레, 아시아문화전당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그니처이자 스토리를 전개하는 동물 캐릭터는 현실의 문제와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을 팝 아트 장르로 편입시키는 요소로 오인된다. 작가 스스로 일러스트레이션 성향이 강한 편이라면서 팝아트 영역에 속하는걸 거부한다.

19th Century Worker, Acrylic on panel, 30×30cm 2022 / 제공=갤러리 거제
19th Century Worker, Acrylic on panel, 30×30cm 2022 / 제공=갤러리 거제

작품 속 동물 캐릭터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분신인 화자(話者) 또는 안내자이다. 작가는 사람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을 직접 표현하면 인종, 계급, 연령, 성 정체성이 드러나 작품의 본질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동물 캐릭터는 관객으로부터 관심을 끌어내며 공감을 이끄는 매개이다.

작가는 캔버스가 아닌 딱딱한 나무 판넬에 그린다. 마치 물감의 물성을 강조하지 않으려 스쳐 지나가듯 그리지만 밀도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무는 가볍고 강하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평면성이 뛰어나다. 습기나 온도에 따라 변형이 가능한 원목보다 합판을 선호한다.

과연 한 시대를, 부유한 계급과 가난한(=노동자) 계급으로 양분할 수 있을까? 필자는 오히려 동물 캐릭터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경제 문제(불평등)라는 핵심적 논쟁을 피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미소 작가에게 전했다.

18th Century Labouring, Acrylic on panel, 72.8×60.5cm 2022
18th Century Labouring, Acrylic on panel, 72.8×60.5cm 2022

“좌파 정치에는 ‘계급 환원주의(class reductionism)’가 있다. 삶의 문제를 경제적 이유에만 집중시키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이 무시된다”

다만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정체성은 위험하다.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정체성 정치’는 억압받는 개인으로서 인정을 획득하는 것으로 정치를 환원시켰다. 개인들은 ‘누가 더 약자인지’ 경쟁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대립하며, 그 결과 “정체성 정치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비판하고자 했던 바로 그 규범을 강화하고 만다”<오인된 정체성, 아사드 하이더 지음. 두번째테제> 

“삶의 문제는 경제 때문일 수도, 인종주의가 관련된 사회적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크리스토퍼 미소) 미소 작가의 부자 고양이와 가난한 고양이 시리즈는 ‘경제적 비판’이 메시지였기에 ‘계급 환원주의자’(a class-reductionist)로서의 고양이를 표현하였다.

작가가 역사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역사에는 드러나지 않은 사실과 새로운 각도로 해석 가능한 영역이 남아있어서이다.  

고양이 시리즈는 100년전 근대를 배경으로 한 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다운튼 애비’는 자수성가한 사람(self-made man)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12년 타이타닉 침몰에서 시작해 시즌 6의 1925년까지 스토리가 진행 되었다. 배경은 전기, 전화 등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신분제나 여성들의 지위에도 큰 변화가 생기는 시대이다. 시대상을 다운튼 애비 저택의 위층 사람들 (귀족)과 아래층 사람들(하인), 마을 사람들(중산층)의 모습을 통해 표현했다.

동서고금 모든 역사에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거나 왜곡된 사실이 있다. 시각 이미지는 텍스트와 달리 쉬워야 하며 또한 강렬하기에 핵심이 드러나야 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 관객에게 보여지는 미소 작품에서는 이를 알 수가 없다. 

한 폭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은 (한국인의) 보편적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서양 역사나 문화에 상상력을 더했기 때문이다. 관람객과의 소통 및 공감 확대가 한국 미술 시장에서의 생존을 보장할 것이다.

The Battle of Woof Bay Acrylic on panel, 51×73cm 2018
The Battle of Woof Bay Acrylic on panel, 51×73cm 2018

동물을 소재로 한 <우프베이의 전투, The Battle of Woof Bay>, <훈드버그의 약탈> 등 시리즈는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역사적인 그림에 대한 포스트모던주의적인 논평이다.

그림 <우프베이의 전투>는 패자와 승자의 양면에 묘사된 흉포와 비극은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허구로 만들어진 ‘개의 사회’에서 개 캐릭터 자신들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 보고 있는지, 스스로 자기들의 세상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을 그리고 싶어할까를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우리는 선정적이고 편향된 방식으로 역사적 사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폴 버호벤(Paul Verhoeven)의 “로보캅(Robocop)” 영화에서 보듯 감독은 본인이 생각하는 로봇 이미지보다도 “로보캅”이라는 로봇의 존재들이 자신들을 표현했을 때 ‘이런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에서 영감을 얻어 시리즈를 작업하게 되었다고 본다.

한 가지 예를 더 든다. “스펀지밥”의 오징어 캐릭터들은 인간의 시각에서 본 오징어의 모습이 아니라, 오징어들 스스로 그린 자화상은 인간이 생각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판이하다. 미소 작가는 작품 속 캐릭터 자체에 동화되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이해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미지로 표현되는 동물 캐릭터는 자칫 우화를 인용했다는 선입견이 작용할 수도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만남과 협약을 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작가는 개의 사회(서양)가 고양이 마을 주민들과 무역협정을 위한 첫 만남을 상상하며 표현했다.

Meeting Acrylic on panel, 162×97cm 2022
Meeting Acrylic on panel, 162×97cm 2022

그림의 오른쪽 배경이 되는 성(城)은 비잔틴 시대 가톨릭 건물을 모델로 하였고, 중국풍을 가미했다.

마을의 배경이 되는 산은 작가가 가장 익숙하게 보고 자란 미국 북쪽에 있다. 배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실제 사용했던 배 디자인을 참고하여 15세기말의 시대상이 잘 느껴질 수 있도록 표현해 보았다.

크리스토퍼 미소의 작품들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아산코미디홀에서 갤러리거제 주관의 전시 ‘아주 친숙한 아주 낯선’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 11일 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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