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 개인전 'Pure Splendor' 비트리갤러리서 12월 3일까지

본 연재는 작품론(論), 한 발 더 들어가 작가론을 추구한다. 필자는 미술 시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해왔다. 작가군(群)이 시장에 앞선다 보았다. 김지희 작가는 스스로가 아티스트, 기획자, 마케터이기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난 5월 김지희 작품 12점이 홈쇼핑 생방송 개시 1분 만에 모두 팔렸다. 홈쇼핑은 이미 알려진 브랜드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유통 채널이다. 김지희 작품은 유통 매체의 특성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었기에 품목으로 선택된 것이다. 김지희 이름 자체가 미술계를 넘어 적정 수준의 브랜드가 되었다.

Sealed smile, 2022, Colored on Korean paper, 193ⅹ130cm / 제공 = 비트리 갤러리
Sealed smile, 2022, Colored on Korean paper, 193ⅹ130cm / 제공 = 비트리 갤러리

김지희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안경과 치아 교정기를 낀 소녀 이미지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시리즈로 꾸준히 이름을 알렸다.

지난 10일 서울 비트리 갤러리에서 시작한 <Pure Splendor> 전에는 화려한 배경과 대조되는 피에타 도상(圖像)의 선글라스를 낀 소녀, 코끼리와 블랙재규어도 화려한 안경을 쓰고 있다.  작가는 다이아몬드, 루비와 같은 보석 원석과 주술적 영험의 상징인 동물들을 등장시켰다.

김지희 작품에서 안경은 가면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인간이 가면 뒤 숨는 행위는 결핍에서 나온다. 가면은 천재성과 광기를 동시에 가진 인간의 상징 이기도 하다.

근대(Modernism)의 상징, 트렁크

19세기 산업혁명기, 증기 기관차가 발명되고 증기선이 만들어졌다. 기차 타고 교외 나들이 가면서 여가 생활도 달라졌고 사람들의 인식에도 '속도'가 자리잡았다. 소위 ‘부르주아’는 효율적 여행을 위해 대형 가방, 트렁크가 필요했다.

미술사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나뉘어진다. 톰 울프(Tom Wolfe, 1931~2018)는 소수의 '문화적인' 부르주아들이 다른 '속물' 부르주아들과 달라 보이기 위한 욕구를 채워 주는 게 현대 추상 미술이라고 보았다. <현대미술의 상실. 초판 1975년, 2003년 번역>

김지희는 근대 부르주아 상징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현대의 부르주아들을 겨냥해서 ‘벽에 거는 (회화)트렁크’ 시리즈 작품을 발표했다. 이 시리즈는 캔버스와 액자를 결합한 형식의 작품이 되었다. 작품 가격은 호당 기준에서 벗어나 S, M, L로 구분하고 규격화하였다.

The Fancy Spirit-Trunk(M), 2022, Diamond and crystal, Acrylic on canvas, 50ⅹ50cm / 제공 =비트리 갤러리
The Fancy Spirit-Trunk(M), 2022, Diamond and crystal, Acrylic on canvas, 50ⅹ50cm / 제공 =비트리 갤러리

작가는 순수한 화려함 자체의 표현을 통해 욕망의 퇴행성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희망을 끄집어 내었다고 말하나 안경(선글라스)이 당초 ‘인간 본질 숨기기’에서 미디엄(medium)의 층(layer)이 늘어나면서 역할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안경은 이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인 ‘페르소나(persona)'와 상반된 인격인 ‘지킬과 하이드(Jekyll and Hyde)'를 동시에 포함한다.

김지희는 크레파스를 손에 잡은 시절부터 그림이 너무 재미있었다. 미술관 공간과 어우러진 클로드 모네의 작품은 아름답고 슬프고 숭고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설사 가난해도 화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강력한 초심은 2008년 첫 전시회 이후 15년 가까이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없는 에너지가 되었다.

욕망 아이템 치아교정기

전시회에는 머리에 꽃을 꽂고 눈물 흘리는 소녀 그림 한 켠에 양의 머리를 한 주인공이 치아 교정기를 끼고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교정기를 끼었으니 웃음이 자연스러울 수 없다. 

한국 사회 동시대 중산층은 1998년 IMF 경제기에 구조조정을 거친 뒤 대부분 부동산 자산 가치가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30여년전부터 치아 교정기는 ‘피아노 교습’과 함께 부모가 성장기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초보 단계 욕망 아이템이다. 교정기는 건강뿐 아니라 외모가 경쟁력이 된 시대를 반영한다. 중산층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부모들의 자기만족의 기제(機制)이기도 하다.

2010년 전시에서는, 알록달록한 캔디 컬러와 교정기, 오드아이(odd eye 양쪽 홍채 색깔이 다른 눈)가 어우러진 화면의 작품을 걸었다. 이 때부터 작가는, 작품 옆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직접 언론에 등장한다.

2013년 전시에는 신작 ‘버진 허트’('Virgin heart) 시리즈를 공개했다. 시리즈는 반지 속에 갇힌 다이아의 형상을 의인화하였다. 다양한 표현기법의 변주가 시작되었다.

같은 해 인기 걸 그룹과 무대 의상 협업을 하였다. 무대도 미술적 조형 언어의 하나인 '인터랙티브’(interactive·상호작용)가 가능한 작품이라고 보았다.

작가는 일상의 현상을 늘 들여다 보고 귀 기울여야 창작 의지를 유지할 수 있다. 김지희는 물 한잔을 마실 때의 동작, 지나가는 상점의 간판 하나도 세심히 관찰하려고 한다.

김지희는 매체에 미술 시장 관련 기고문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시장을 분석하였고, 시장을 주도하는 유명 작가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2016년, 홍콩 중심가 부동산 기업 소유의 대형쇼핑몰과 협업, 몰 공간 전체를 작가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이미지 컨셉으로 채웠다. 김지희는 중국의 대형 화장품 회사와의 협업 등으로 대만,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중화권 미술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월, 2022아트타이페이에 출품한 12점이 솔드아웃 되는 등 올해 5번의 대만 전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욕망을 응시하라

2017년 전시, <Sealed smile> 시리즈는 영원성을 가진 욕망의 상징인 보석과 유한한 시간을 사는 꽃, 벌, 나비 등의 도상들이 표현되었다.

작가는 인간의 유한성을 역설적으로 욕망과 대비시켜 인간의 최대 비극인 죽음을 화두로 던졌다.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죽음’은 전형적인 마케팅 아이템으로 소비된 지 오래이다. 

영국 작가이며 기획자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1962~ ), 거슬러 올라가면 앤디 워홀, 파블로 피카소도 (떼)죽음을 화두로 던지며 대중적인 작가로 자리잡았다. 김지희는 이들 작가처럼 무경계를 지향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서브 컬처에서 모티프를 잡는 무라카미는 1,500만 달러 짜리 작품부터 캐릭터를 본뜬 피규어나 티셔츠, 인형 등 상품까지 고급과 하위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라카미는 지난 2000년 ‘현대 미술 저널’(Journal of Contemporary Art)과의 인터뷰에서 미술 시장에서 살아남는 단계별 성공 규칙들(1. 독특한 위치→ 2. 아름다움 표현→ 3. 섹슈얼리티→ 4. 죽음→ 1~4 사이클의 반복)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지희는 '성공의 규칙'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는 않았으나 무라카미의 행보와 비슷하다는 평가에 일부 동의하였다. 아직 30대인 작가는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조형언어를 발견하고 끈기 있게 뿌리를 내리며 가지를 확장해가고 있다. 

The Fancy Spirit-Trunk(M), 2022, Natural ruby and crystal, Acrylic on Canvas, 50ⅹ50cm  / 제공 =비트리 갤러리 
The Fancy Spirit-Trunk(M), 2022, Natural ruby and crystal, Acrylic on Canvas, 50ⅹ50cm  / 제공 =비트리 갤러리 

김지희는 2019년부터는 주변부에 머물렀던 동물 도상을 정면에 배치하고 있다. 코끼리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상징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주인공 리즈(쥴리아 로버츠)가 인도 아쉬람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는 중 코끼리를 만난다.

Seaeled smile. 2019. Color on Korean paper. 193x390cm / 제공 = 김지희 작가
Seaeled smile. 2019. Color on Korean paper. 193x390cm / 제공 = 김지희 작가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희망의 경계에 대한 담론 장에 동물들을 매개로 사용한다. 작품 스스로 종종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길을 낸다. 동물을 그릴 것 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여전히 2020년 전시에서도 허무보다는 희망하고 욕망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모든 순간을 한 편의 랩소디(rhapsody·모음기악곡)처럼 표현하였고 이번 전시도 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판타즈마고리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근현대의 도시를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판타즈마고리아(Phantasmagoria·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는 장면)에 비유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빛과 색, 꿈과 신비, 소비 욕망 충족 장소로서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 대도시에 대한 벤야민의 서정과 시각을 상징한다.

자본주의 욕망이 만든 환상인 판타즈마고리아는 보이는 무언가를 제공할 뿐, 손에 잡히는 실체는 아니다. 

김지희는 벤야민이 파리, 베를린을 관찰했듯이, 시대를 가로질러 자본주의 욕망이 깃든 서울이라는 버내큘러 (vernacular·지역성)에 유령처럼 흘러 들어온 판타즈마고리아를 마주하며 살고 있다.

 The Fancy Spirit-Trunk(M), 2022, Natural sapphire and crystal, Acrylic on Canvas, 50ⅹ50츠 / 제공 = 비트리 갤러리
 The Fancy Spirit-Trunk(M), 2022, Natural sapphire and crystal, Acrylic on Canvas, 50ⅹ50츠 / 제공 = 비트리 갤러리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찍혀 있다. 내면의 세계에 더 천착하는 이가 있고, 시대의 흐름 자체를 앞서서 잘 드러내는 이도 있다.

1960년대 앤디 워홀은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반복된 재현'을 통해 '달라진 매체, 스케일, 컨텍스트로 인해 특별해진' 무언가로 의도적으로 대중과 시장에 맞부딪쳤고 미술계를 넘어 문화계의 권력이 되었다.

“양식이 역사적인 것은 그것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미술 철학사 1: 권력과 욕망 이광래 미메시스 2016>

무엇을 새로움으로 볼 것이냐는 철학적 명제이기도 하다. 김지희에게 ‘새로움’은 작가로서의 성실한 태도에 방점이 찍힌다. 김지희는 쉬지 않고 다작을 해왔다. 작품은 결과물이면서 마스터피스를 향해가는 연습이자 여정으로 본다.

작업 양이 많다 보니 반복된 재현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스스로에게 작업은 매일을 설레게 하는 새로움이다.

예술 장르의 경계 구분 의식이 없는 김지희는 작업의 처음부터 미술품과 상품을 하나의 카테고리, 즉 전체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은 대상을 그 부분들의 지각을 종합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체’로 인식한다 -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는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의 통찰이다.”<김정운> 

<오페라의 유령>에서 보았듯 소설 텍스트는 다양한 컨텐츠로 변주되어 소비된다. 컨텐츠는 탄탄한 극적 스토리, 서사가 받쳐주어야 지속성을 지닌다. 서사에는 작가 자신도 포함된다.

김지희는 작품을 컨텐츠 자산으로 보는 듯 하다. 유명 브랜드에 작품 이미지를 제공, 상품 카테고리, 카테고리의 세부 버전으로 구분해서 저작권을 확보했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 및 작품이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

김지희 작가 / 제공 = 김지희 작가 
김지희 작가 / 제공 = 김지희 작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을 작품과 병렬된 비주얼 이미지(사진)로 독자나 관객에게 드러내어 작품과 관객과의 관계성을 중재하기도 한다. 어쩌면 작가 김지희는 관객들에게 작품을 매개로 인간 욕망의 최상위 단계에 있는 ‘컬렉션’이라는 욕망을 추동하고 있는 마케터 일수도 있다.

김지희 개인전 <Pure Splendor>는 서울 비트리 갤러리에서 12월 3일 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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