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딜라이트

“대학 때(1960년대)는 데생 능력이 강조되었다. 후배들과 데생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주도해서 누드크로키를 그렸다. 실기실에 모델을 초빙하려면 돈이드니 서로 돌아가면서 모델을 섰다.”

“서로 벗지 않으려해 다같이 벗자고 제안했다. 한 명씩 단상에 나가 포즈를 취했다.” 

그렇게 여성누드 군상 <나부들>(1969, 1970)이 나왔다.

1970-1, 나부들 162.1X130.3㎝ 순지5배접, 분채, 암채 1970년 
1970-1, 나부들 162.1X130.3㎝ 순지5배접, 분채, 암채 1970년 

두번째 군사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대학가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양상도 격렬하였다. 학내에서는 시위 끝에 극단적인 분신 자살도 있었다. 몸에 기름을 부은뒤 불을 지르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힘들었다. 

“강단에 선 선생으로서 시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참 힘들고 고단한 세대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미술가들이 현대미술이랍시고 추상에 매달리는 게 표피적으로 보였고, 학생들 보기에 미안하였다.”

1980년대는 병영 국가체제였다. 대학 1,2학년 남학생들에게는 필수 과목으로 교련이 있었다. 1학년 때는 합숙훈련이 2학년 때는 전방 철책 근무가 의무로 주어졌다.

교련복을 입은 대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캠퍼스-훈련생’(1982)은 시위 진압 전경과 탈춤꾼을 함께 배치한 ‘얼쑤! 알싸!’(1991)와 짝을 이루어 고통스런 시대상을 담고 있다.

1982-13, 캠퍼스-훈련생 210.0X152.0㎝ 순지5배접, 암채 1982년
1982-13, 캠퍼스-훈련생 210.0X152.0㎝ 순지5배접, 암채 1982년

시대를 관통하는 담론, ‘이브의 보리밭’ 

이러한 모순되고 억압된 구조속에 시선이 내면으로 흐른게 <이브의 보리밭> 연작이다. 통상 여성 예술가의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르인 누드와 내부자 시선(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20대인 1960년대 후반에 11남매의 장남과 결혼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동생을 서울 신접 살립집으로 모셔 함께 살았다.<p105 ‘이브의 보리밭’ 이숙자 지음 1991년 나남>

이숙자는 보리밭을 꾸준히 그리면서도 누드 드로잉을 그만 둔 적이 없다. 모델들을 화실로 불러 그렸다. 

“보리밭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를 그렸지만 인물화의 연장선으로 누드를 생각해 왔다. 보리밭을 그만하려는 부담감과 누드 그림에 자신감이 생긴건 엇비슷한 시기였다.”

“멋있는 누드 포즈를 보면서 배경을 보리밭으로 한 번 해보자 했다. 화단 선배들과는 다른 감각, 감성과 맞아떨어졌다.”  

“보리밭에 이브를 집어넣으며 보리밭을 그만하려는 갈등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이숙자는 1989년 ‘씩씩한 근육질 여성’이 주인공인 <이브의 보리밭> 시리즈를 시작하였다. 젊었으니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완성작이 마음에 들었다.

1989-6, 이브의 보리밭89 200X150㎝ 순지5배접, 암채 1989년
1989-6, 이브의 보리밭89 200X150㎝ 순지5배접, 암채 1989년

1990년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현대 백화점 미술관에 연작 다섯 점을 처음으로 출품하였다. 작품을 사려는 이가 생겼다. 

작가는 이미 그때로부터 10여년 전 H대 국문학과 홍모 교수에게서 민담처럼 들려오는 ‘보리밭 로맨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 `비단 속곳 입고 보리밭 매러 간다`, `보리밭 머리만 잘 지키면 일 년 농사 거뜬하다`는 속담 등은 청춘 남녀가 보리밭에서 로맨스를 즐겼고, 남의 눈에 띄면 입막음용으로 곡식을 퍼다 주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브의 보리밭’ 연작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마른 몸을 가진 여성의 경직된 자세나 극도로 세밀한 체모의 묘사, 핏기 없는 피부, 무엇보다도 관객을 응시하는 정면성(正面性)이 특징이다. 작가는 여성(의 몸)을 향한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을 비판하고 있다. 

 2010-1, 이브의 보리밭-몽환 145.5X112.0cm 순지5배접, 암채 2010년
 2010-1, 이브의 보리밭-몽환 145.5X112.0cm 순지5배접, 암채 2010년

(이숙자는) 여성 작가들을 ‘여류화가’로 칭하던 시절, 순결을 강요당하고, 경제적 자립이 어려우며, 결혼을 통해 남성에게 귀속되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여성상에 의문을 가졌다.(송윤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1939~ )의 설치 작품 <디너파티 Dinner Party, 1974~1979>는 페미니즘 미술사에서 아이콘이 된다. 삼각형의 금색 도자타일 바닥 위에 삼각형의 식탁이 놓여진 형태다. 식탁에 놓인 접시의 모양은 여성의 성기를 묘사하였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페미니즘(Feminism·여성주의)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부터 젠더(Gender) 등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으로 발전한다. 여성 작가들에 의해 페미니즘 미술은 미국 현대 미술의 중심 사조로 진입한다.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여성들의 불행을 숙명, 운명의 굴레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습에 저항하며 도전하는 여인상 그 것이 내 화면 속의 이브의 모습이다.(...) 예술가는 한 시대를 앞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근육질의 벌거벗은 이브는 그런 면에서 여성 해방의 기수로서(...) 혁명적 투사이기도 하다,” <p107 ‘이브의 보리밭’ 이숙자 지음 1991년 나남>    

‘이브의 보리밭’ 연작은 ‘토속적 에로티시즘’이라는 ‘언설’(discourse)이 붙여져 본격적인 사회적 담론으로 발전하지 못한듯 하다. 사람들이 각자 내뱉는 언설에는 권력관계가 숨어 있고, 자신을 과장하거나 숨기면서 연극적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1980년대 한국 영화는 소위 ‘토속적 에로티시즘’이 유행이었다. 그 영화들은 일제 강점기의 농촌을 무대의 배경으로 삼는 근대문학을 원전으로 한다. 

1980년대는 영화인이나 미술인은 예술가가 아닌 여전히 소위 딴따라로 취급받던 시절이다. ‘토속적 에로티시즘’은 마초이즘적인 남성 주류 시각에서는 뭔가 불편하기에 순수 예술 영역에서 배제하려한 프레임이다. 작품을 진지한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도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제시한 서구인들의 편견과 왜곡이 창작해낸 헛된 이미지중 하나가 앙리 마티스(1869~1954)가 그린 수십 점의 ‘오달리스크’(Odalisque)이다. 오달리스크는 오스만 제국 시절 궁전에서 왕의 시중을 들던 궁녀들을 지칭한다.  

마티스는 동성애에 빠진 오달리스크를 배경으로 바로크식 벽지를 그려넣었다. 장식적인 벽지는 (서구인의 관점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숙자는 여성 해방의 기수, 혁명적 투사로 이브를 상징하기에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으므로 배경에 보리밭을 끌어들인듯도 보인다.

1990-6, 이브의 보리밭 90-6 162.1X130.3㎝ 순지5배접, 암채 1990년
1990-6, 이브의 보리밭 90-6 162.1X130.3㎝ 순지5배접, 암채 1990년

이숙자는 실제 한국인 여성을 모델로 삼았으나 작품의 이브는 서구인의 모습이다. 이브를 동양 여성으로 그리지 않은 작가의 회화적 장치의 의도가 보인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인 스스로가 서구인의 시선과 잣대로 자신을 해석하고 인식하는 모습에 주목하기도 했다.

작가는 부수적으로 아름다움의 극치인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타파를 목표로 삼기도 했다.

“발가벗은 모습을 이상하지 않은 눈으로, 보통 사람 얼굴 보듯이 낯이 익었으면 좋겠다."

미술에서의 담론은 역량있는 비평가 그룹과 비평을 게재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매체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미디어는 디지털 시대의 플랫폼 역할을 하지 않나. 작가가 뛰어난 직관력으로 시대를 꿰뚫더라도 홀로 담론을 생산하지 못한다. 작가 홀로, 작가적 역량만으로 한국을 떠나 세계 현대 미술의 중심에 들어갈 수는 없다.

2022-1, 청보리 벌판 227.3X181.8㎝ 순지5배접, 암채 2022년
2022-1, 청보리 벌판 227.3X181.8㎝ 순지5배접, 암채 2022년

(누드없는) 보리밭 연작은 2010년도 이후 화면 상단에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소실점이 사라지고 실낱보다 더 가는 보리수염이 모여 허공에 일렁이는 색면을 형성하고 있다.

이 글 상편에서 언급했듯 보리밭은 핏빛 이다. 마초이즘적인 남성 주류 사회를 관통해온 이숙자의 보리밭 역시 또 다른 의미의 핏빛을 머금고 있다.    

작업실 한가운데는, 보리밭에 처참하게 깡마른, 피골이 상접한 이브가 특유의 정면성(正面) 구도로 앉아있는 그림이 놓여있었다.

웬지 가수 문정선이 불러야 제 맛인 노래 <보리밭>의 운율이 들려오며, 말년에 가톨릭에 귀의한 소설가 박경리의 시어가 떠오른다.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박경리 ‘우주 만상 속의 당신’ 중>

풍성한 서사를 간직해온 작가의 작품이 무한대의 시공간이 펼쳐진 디지털 세계와 만나 꽃을 피우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 김경연의 이숙자 구술록 <1970년대 한국화에 대한 기억>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5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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