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심정택의 미술작가 평론 '미술 딜라이트'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 켄 로치(Ken Loach·1936~ ) 감독, 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 주연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은 700여년 아일랜드를 지배한 영국이 제국주의 원흉이라고 폭로한다. 

아일랜드 시인 로버트 조이스(Robert Dwyer Joyce·1830–1883)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온 영화는, 영국군에게 죽은 17살 미하일의 장례식에 그의 할머니가 슬프고 처연하게 동명(同名)의 노래를 부른다.

 2021-1 황맥 벌판 227.3X181.8㎝ 순지5배접, 2021년

서울내기인 이숙자(81세)는 열 살 무렵, 전쟁으로 인한 피란길에 머문 충북 옥천 암곶말에서 보리밭을 맞닥뜨렸다.

“10리 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 새파란 하늘 아래 보리밭을 보며 전쟁이 또 오나하는 걱정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보리가 다 자라) 쳐들어 오는게 낫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켄 로치의 ‘보리밭’은 핏빛을 상징한다. 전쟁의 상흔에서 살아남은 넘실대는 보리밭을 마주한 어린 소녀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원하였다. 

약 25년여가 지난 1977년 봄 경기도 포천, 이숙자는 나지막한 능선에 드넓게 펼쳐진 청록의 보리밭을 보고 감전되듯 전율했다. 슬프도록 아름다왔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1882~1941)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인공 스티븐은 해변의 소녀의 모습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의 앞에는 한 소녀가 개울 가운데 혼자 서서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술에 걸려 신기하고 아름다운 바다새(seabird)의 모습으로 변모한 듯한 소녀였다. (...) 오, 이럴 수가! 독신(瀆神)적인 환희의 폭발 속에서 스티븐의 영혼은 절규했다.” (265p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상옥 옮김. 민음사)

소설에 묘사된 광경은 하나의 계시(啓示)처럼 주인공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을 조이스는 에피파니(Epiphany)라고 했다. 우리 말은 ‘현현’(顯現)이다. 구약시대 호렙산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나타났듯, 영어 ‘Epiphany’는 신의 출현이나 강림을 뜻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24일 일산의 작업실에서 이숙자 작가와 2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강림한 보리밭  

이숙자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화실과 1971년 천경자(1924~2015) 화실 ‘노아노아’를 다녔다. 1972~1973년 박생광(1904~1985), 월전 장우성(1912~2005)도 사사하는 등 다양한 화풍을 습득하려고 했다. 

특히 박생광은 전통회화의 뿌리를 민속(무속)에서 찾았고 불화와 민화 형식에서 그 모델을 발굴하였다. 구도에 있어 웅장한 상황 전개와 굵은 윤곽선에 의한 대상의 파악이 이숙자가 박생광 사사이후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전에서 수상하고 추천 작가, 초대 작가가 되는 것은 1960년대~1970년대 미술계에서 화가로 인정 받는 통과의례였다. 이숙자는 1976년까지 국선에 입선 10번과 특선 1번을 했다. 1979년에 <고찰>로 특선이 되고, 1980년에 <작업>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추천작가가 됐다. 본격적인 화업(畵業)의 길에 나선 것이다.

1981-1,기원(祈願) 145.5X112.1㎝ 순지5배접, 암채 1981년.
1981-1,기원(祈願) 145.5X112.1㎝ 순지5배접, 암채 1981년.

“재능은 타고 난 것이고, 노력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여성)인물화는 3개월이면 작업이 끝난다.”

“포천에서 보리밭을 접한 감흥을 그리고 싶었다. 많은 공을 들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첫 작품 ‘청맥’(100호, 1977년)을 출품했으나 또 입선이었다.”

“1980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목표로 작업하였다. 천명이 응모했다. 중앙미술대전에서 '황맥 들판'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눈 앞에 가로막힌 만리장성이 없어진듯한 기분이었다.”

1980-1, 맥파(麥波)-황맥(黃麥) 227.3X181.8cm 순지5배접, 암채 1980년

이후 이숙자는 ‘보리밭 작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석채(石彩)와 암채(岩彩)가 다른것인지 물었다. 

“같은 말이다. 암채는 일본에서 쓰는 용어이다. 초기 수간 채색 중에는 분홍, 보라색 등은 퇴색되어 밝은 회색으로 변한다. 색이 광선이나 조명에 바래지도 않고 물에 색이 빠지지도 않는다.” 

“일본에서 개발한 암채를 써보니 좋다는걸 알았다. 한국화와 일본화를 떠나서 수백년을 가야 할 그림이 바래서는 안된다.”

일본 도쿄예대에서 재료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김식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현대 이전 천연 석채는 10가지가 되지 않았다. 1950년대 일본은 인조 안료가 개발되면서 인조 석채 연구가 활발했다", 

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면서 3차원의 동적인 표현을 2차원 평면에 어떻게 구현하나 숱한 고민을 하였을듯 하다.  

“ ‘청맥’, '황맥 들판'은 동적 움직임을 염두에 두었으나 구성같은 느낌이 난다. 작업하다 느낌이 나지 않아 포천 보리밭에 달려가니 보리가 다 익어 누렇게 되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은 혼자보기 아까웠다. 어린왕자가 왕관 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근경 중심으로 구도를 잡고 바람을 그린다는게 구성같이 되더라. 원래 취향은 아니지만 (지평선 등) 원경까지 그리게 되었다.”

대학원 졸업후 화실에서 박생광에게 집중적으로 배운 구도(구성)가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이후 ‘이브의 보리밭’ 연작’에서 보이는 정태적이고 관념적이기 조차한 화면은 정면성(正面性)을 강조하는 구성의 산물이다.

한국성의 추구 

보리밭과 백두산이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지를 물었다. 

“보리밭을 그만 그려야겠다고 여러 번 마음 먹었으나 잘되지 않았다. 보리밭 사생을 위해 농촌에 가면 소를 만난다. 1984년부터 보리밭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소를 그렸다. 첫 작품이 150호이다.”

1987-1 군우-얼룩소1 / 1987-2, 군우-얼룩소2, 각 150F(227.3X181.8㎝)×2, 순지5배접, 암채 1987년 

1994년 전시는 ‘시대적 배경 위에 보리와 탈, 학과 같은 농촌의 풍경을 예전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 소재의 탐색과 변화는 큰 상을 받은 공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이 생겼기에 가능했다. 

“쉰 살(1992년)이 되자, 인생이 다갔구나 생각들었다. 내가 이것만 해서 되겠나는 자각이 생겼다.”

기념비적인 작품을 염두에 두었다. 송파 화실에서 150호 5개를 이어붙인 백두산 작업은 상상력만으로는 그릴수 없었다. 1999년, 권옥연(1923~2011), 하종현 등과 방북하였다. 실제적인 초청자는 평화자동차였다. 작가들은 비용 충당을 위해 작품을 내놓았다.

“그냥 자연 경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싶었던 소재를 찾은 것이다. 스케치를 했고, 사진을 찍었다.”

“기존 작업을 꺼내놓고 보니 괜찮더라. 새로 구도를 짜고 캔버스 5개에 3개를 더해 8폭 짜리로 만들었다.”

2001-2, 백두산 천지 227.3 x 1454.4cm (150F x 8개) 순지5배접, 암채1991~2001년

초대형 화면 속의 백두산은 푸른 천지와 붉은 노을빛이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민족의 영산(靈山) 이미지를 장엄하게 구현하였다. 종이 바탕에 순금분과 석채로 그려 전시에 내놓았다. 

2001년 전시는 “보리밭을 바탕으로 훈민정음과 같은 문자와 휘날리는 만장을 끌어들였고 우리 민족의 기본 정서인 신화의 세계를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두산 천지>와 같이 작업을 시작한 <백두성산>(白頭聖山)은 흰 ‘백’(白)이름 가진 백두산의 눈 덮인 모습을 해와 달을 거느린 초월적인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의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2016-1, 백두성산 227.3 x 909.0㎝ (150F x 5개)순지5배접, 암채, 제작년도 : 2000, 2014~2016

“하나만 더하자 마음먹었던 작품은 2014년 3월에 시작되어 2년이나 걸렸다. (지지부진해지자) 작품에 혼령이 생긴듯하면서 그림이 내게 ‘노력해봐’, ‘50년 기량 가지고 잘해봐’라고 하면서 말을 거는듯 했다.”

“망가지려고하는 부분을 고쳐서 완성했다. 할만큼 했다는 생각 들었다.” 

이숙자에게 보리밭과 백두산은 민족성과 한국성의 기호이자 초현실적이며 작가 내면의 분출이기도 하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초록빛 환영_이숙자>전에서, “한국화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미술사에서의 “채색화의 정통성 수립”을 이숙자 작품 세계의 화두로 평가하였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5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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