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과 멍때리기에서 출발

작가들은 작품을 ‘건다’는 표현을 한다. 벽면에 작품을 디스플레이 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서서 무엇을 보는 행위는 중력(gravity)의 원리에 체화 되어 있듯이 ‘건다’는 행위 또한 사물로서 미술 작품도 보이지 않는 중력의 원리에 놓인다.

Resonance 54 paper yarn 85×110cm / 비트리 갤러리 제공

무엇인가 미묘하지만 캔버스(판넬)를 걸지 않고 바닥에 (엇비슷하게) 놓고 평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조원아 작가의 경우가 그렇다. 

작업은 캔버스를 골반정도 높이 책상에 놓고 작업한다. 캔버스를 세워놓고 작업했으면 지금의 밀도나 디테일이 나오지 않았을 듯하다.

작업 조건이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조원아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3년여 전부터의 작업인 resonance(공명) 시리즈의 모티프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계속되어야 하는 일상, 중간 중간의 멍 때리기에서 시작되었다.

도심의 강이나 천의 흐르는 물은 도로 아래, 지하철 교각 다리 아래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무심히 바라보던 작가는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물의 파장(파문, 波紋)에 마음이 끌렸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몸부터 먼저 움직였다. 논리와 생각의 틀을 갖추고 나서 행위로 옮겨 무언가를 구현하려면 영감을 놓칠 듯 해서이다.

구상에 적합한 재료를 찾는 등 비주얼 작업을 하면서 이내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현상에도 관심이 옮겨갔다. 

작업은 정형의 반복되는 패턴의 이미지뿐 아니라 비정형으로도 나타난다. 조원아 작품의 특징인 화폭에 반복되는 파문의 패턴에서 물리 현상을 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 공식 ‘E=MC²’에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광속이다. 물체가 질량을 가졌다면 그만큼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반대로 파동이나 빛과 같은 순수 에너지가 입자로 변환될 수도 있다. 에너지는 비물질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조원아 작품에서 파문과 파동은 텍스츄어를 드러내고 시선에 따른 일루젼 (illusion)을 불러 일으킨다.

대부분의 작업은 작가 내면에 흐르는 의식을 반영한다. 약 3년전부터 시작한 시리즈는 작가 어머니의 지병과 점차 악화되는 병세와 무관하지 않다. 소멸과 시작은 물결의 파문과도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작가는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존재이다. 화폭 속 공간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말한 비일상(非日常·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 (Hétérotopies)이다. 실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이다.

화폭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사이 균열과 틈새를 종이 실로 꽁꽁 싸매어 봉합, 정지시킨다. 생의 출발인 흔적과도 같은 화폭의 기준선을 묻어버리려는 행위이다.

Resonance 52 paper yarn 85×110cm 2022 / 비트리 갤러리 제공

작품 이미지의 드러난 단면을 근접해서 보면 마치 원단을 꼼꼼히 박음질한 듯한 일정한 패턴의 반복이 보인다. 이는 먼저 박은 자국을 노루발(재봉틀 톱니 위에서 바느질감을 누르는 부위)이 타고 다른 골을 또 박는 전통적인 바느질인 ‘누비’ 방식보다도 서너 배는 촘촘히 박음질한 방식으로 보인다. 이미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무엇을 매개로 삼아 보느냐도 중요하다, 가상현실이 현실이 되어버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특정 공간에서의 실물 작품이 풍기는 아우라는 미디어가 전달하지 못하는 또 다른 본질임에는 변함이 없다.

공예적 기법이 들어간 조원아 ‘공명’ 시리즈는, 화소를 근간으로 하는 사진이나 디지털 미디어로 본 이미지가 더 본질에 가깝다. 공예적 손맛이 인위적으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작가의 감정이 묻어나는 붓질을 없애기 위해 캔버스 자체를 편평하게, 딴딴하게 한다. 금속 조각에서 표면의 광택을 극대화한 슬릭테크(slick-tech·반질반질하게 만드는 기술)와 같은 기법을 응용한다.

작가가 구현해 낸 회화적 이미지에 대한 해석은 작가가 국내 대학원 시절까지 전공한 섬유예술과 맞닿아 있다.

섬유 공예 분야에서는 색상을 포함한 디자인 보다도 작업 과정이 미학적 가치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Resonance 53 paper yarn 85×110cm 2022 / 비트리 갤러리 제공

조원아 작품은 결과물로 캔버스 위에 정형(定型)의 또는 비정형(非定型)의 이미지 도출을 목표로 하기에 회화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드로잉으로 수평의 또는 수직의 기준 선만을 잡고 일정한 길이의 ‘종이 실’ (paper yarn, 대만산)을 꼬면서 섬유 접착제로 붙여 나가다 보면 실의 종단(終端)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곡선이 나온다. 

비정형 작업은 꺾이는 지점이 훨씬 많고 그 각도가 다양하다. 정형 작업과 달리 비정형은 디자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비정형의 원리는 물감을 흩뿌리는 추상 회화의 지향점과도 같다. 

‘종이 실’은 섬유(텍스타일)의 보송보송한 질감 또는 감촉(texture), 색이나 온도, 조명에 따라서는 반짝이고 매끄러운 표면의 느낌도 난다.

이미 생산된 종이 실의 칼라 선택에 따라 또는 향후 기름먹인 한지 등 재료 개발을 통해 마치 금속 표면의 슬릭 테크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종이 붙이기(파피에 콜레·papier colle)'는 이미 1세기 전인 1920년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와 피카소가 시작한 큐비즘(cubism)에서도 사용된 표현 기법이다. 물론 장력과 유연성에서 종이(실)는 신문이나 잡지의 종이 파편을 응용한 파피에 콜레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것도 캔버스에 ‘붙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한편으로는 캔버스가 전후, 좌우의 프레임(틀)이 가는 실을 붙들어 매주는 듯한 착시 현상도 가져온다. 여기서 캔버스는 외부지향의 육면체 공간 구조를 가진다. 작가가 실을 접착제로 캔버스 면, 실과 실을 이어 붙인다는 관념을 배제할 때 인식 가능하다. 트릭 아트 (trick art) 속성을 가지는 이유이면서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의 틀을 깨기도 한다. 

조원아는 독일 뮌헨 국립 조형 예술 대학에서는 전공을 조소로 바꾸었다. 직조와 염색 등 기법에만 치우친 섬유예술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뮌헨대에서 지도교수는 장르, 학습 진도에 대해 어떠한 간섭도 없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일주일에 한번 크리틱을 하는 수업 방식이 진행되었다. 크리틱은 학생의 작업과 유사한, 도움이 될 다른 작가들을 알려주었다. 한국의 미술 대학에서 화석으로 굳어진 수업 지도 방식, ‘서로를 닮지 말라’는 게 얼마나 허구인지를 깨닫았다.

폴리에스터(5mm), 독일 뮌헨 가변설치 / 제공 = 조원아 작가

2012년과 2013년 연속해서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한번은 상업 갤러리, 한번은 쇼윈도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다. 갤러리에 포트폴리오를 보내어 성공한 경우였다.

6년여 독일에서의 공부와 체류는 작가들이면 누구나 꿈꾸는 대형 현장 설치 작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폴리에스터(5mm) 독일 뮌헨 Loden Frey 백화점 가변설치 / 제공 =조원아 직가

뮌휀 도심의 고급 백화점 로덴프라이(Loden Frey)에서 설치작품 요청이 들어와 한달 간 약 15미터 너비의 로비와 쇼윈도 8군데에서 전시가 단독으로 진행되었다.

뮌헨공과대학교에 전시 및 소장된 설치 작품은 공모에 지원한 것으로 높이는 약 12미터에 이른다.

작가에게 ‘건다’는 의미는 기차가 중간역에 들어선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조원아 작가에게는 캔버스 프레임을 활용한 작업 외에도 공공미술 영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봄직하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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