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광용 인문교양 기행 ]

저기 피아노 한 대 놓여 있습니다. 꼭 무대 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실내의 중앙이나 안쪽에 사람이 모이는 곳에 악기가 한 대 보인다면 그것은 피아노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자리에 클라리넷이나 첼로, 또는 팀파니 등 다른 악기보다 놓여 있을 개연성이 훨씬 높은 악기라는 것입니다. 영업을 위한 레스토랑이나 카페이든, 아님 일반 대중을 위한 공공 홀이든 피아노는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종교 시설이나 학교에도 음악적 목적성을 갖는 장소라면 그 악기는 웬만하면 그곳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음악만을 위한 장소인 콘서트홀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연주가 끝난 후 연주자와 함께 모든 악기들이 다 떠나가도 그만이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말입니다.

가히 악기의 제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왕이라면 모든 국민을 차별하지 않고 대해야 하듯 피아노는 프로나 아마추어 연주자, 그리고 그들의 연주를 감상하는 일반 청중 모두에게 친근하게 개방되어 있는 악기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풍채나 위엄에서 보듯 외모에서도 다른 악기들을 압도합니다. 그의 능력은 또 어떤가요? 다른 악기와는 달리 혼자서도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악기 아닌가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받쳐 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때론 오히려 다른 악기에게 도움을 주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가 아무리 멋진 솔로 연주를 들려주어도 거기에 피아노 반주가 없다면 일반인인 우리조차도 뭔가의 부족함을 느끼곤 하니까요. 혼자서도 문제없이 잘하고, 남과는 잘 어울려 모두에게 꼭 필요한 악기, 피아노는 악기의 제왕 맞습니다.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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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가 이 악기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됩니다. 그만큼 접근성이 수월해진 악기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타의적인 시작이 더 많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끌려 소위 레슨이라 불리는 과정에 피아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첫 건반을 누르는 순간부터 흥미도와 소질에 따라 아이마다 진도의 빠르기가 결정되고, 단계별로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그 진도의 맨 앞에 선 아이는 피아노와 일생을 함께하는 프로 연주자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피아노로 밥을 먹고사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아이는 아마추어로 남아 그때 터득한 연주 실력으로 교양과 취미로 피아노를 가까이하며 살거나, 혹자는 아예 적성과 흥미가 안 맞아 그 악기를 잊고 살게 됩니다.

물론 요즘 세대라고 모두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접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이가 성장하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악기임은 분명할 것입니다. 아이를 반드시 피아니스트로 키우려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아버지 같은 부모가 아니라 하더라도 작금의 우리나라 부모에게 피아노는 아이의 조기 교육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통과시키는 보편적 가치가 있는 악기로 인식되고 있으니까요.

피아노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부자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격이 만만하지 않은 악기이긴 합니다. 집에 그만한 공간도 있어야 하고요.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저의 국민학교 시절에 그때는 왜 그렇게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의 집안 살림을 궁금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해 새 학년이 시작되면 담임 선생님께서 가전제품이 빼곡히 적혀있는 유인물을 한 장씩 나눠주고 집에 있는 것에 동그라미를 쳐오라고 하였습니다. TV, 전화, 냉장고, 전축.. 이런 물품들이 그 리스트의 상위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피아노는 가장 꼭대기에 랭크되어 있었습니다. 자가용은 언감생심 아예 표에 있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인천의 공립학교라 그랬나요? 나중에 서울의 사립학교 출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리스트가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

아무튼 피아노는 당시 그 정도로 귀하게 쳐주는 악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아노를 배우는 레슨 비용 부담도 커서 요즘처럼 그 또래에 한 번쯤은 거쳐가는 악기가 아니라 배우고 싶어도 접하기 힘든 악기였습니다. 그런 악기가 지금은 이렇게 보편적인 악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피아노의 관심도와 보급률을 나타내는 피아노 지수라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도 선진국을 가늠하는 예술적 지표에 충분히 들어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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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위의 피아노에 누군가가 다가섰네요. 둘러보니 그곳은 콘서트홀은 아니고 펍이나 카페 같은 곳입니다. 그가 앉아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 위에 손을 얹는데 바라보는 주변 사람에게도 그의 긴장감과 떨림이 전해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마추어 연주자이니까요. 설사 그곳에 루빈스타인이나 임동민이 왔다 하더라도 대개의 프로는 무대가 갖춰지지 않으면 등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함께 온 지인들이 홀에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고 나가서 한 번 치라는 성화를 못 이기고 얼떨결에 밀려 나온 것입니다. 그가 왕년에 피아노를 배워 그 악기를 좀 다룰 줄 안다는 것을 아는 지인들입니다. 근데 저 피아노는 조율이 제대로 되어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면 주변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집니다. 피아노맨의 출현입니다.

피아노맨(piano man)은 피아니스트(pianist)보다 왠지 전문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사전을 찾아봐도 피아노맨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나오지 않지만 어감상 피아니스트는 프로 연주자의 냄새가 나고 피아노맨은 아마추어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레슨의 과정으로 보면 피아노맨은 중도에 레슨이나 연습을 그만 두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피아노맨 중 혹자는 피아노 시작의 정석인 바이엘 교본을 아예 본 적도 없는 연주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를 칠 때면 언제나 즐거운 사람입니다. 피아니스트는 즐겁지 않을 때에도 직업상 피아노를 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관객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든, 피아노맨이 연주하든 피아노 소리가 즐거운 사람들입니다. 층간 피아노 소음으로 고통 받는 이웃이 아니라면요.

음악 역사상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유명 피아니스트도 세계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로 두드러진 공적을 쌓지 못한 피아노맨이 알려지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 이름을 크게 남긴 유명인 중에 우리가 몰랐던 피아노맨들은 있습니다. 그들은 실력으로 치면 피아니스트에 버금가는 피아노맨일지도 모릅니다.     

세기의 피아노맨 사르트르 & 니체

장 폴 사르트르, 그는 매일 피아노를 쳤습니다.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의 집에서, 자라서는 엄마의 집에서, 늙어서는 딸의 집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사유재산을 부정한 그는 집에서 살지 않고 주로 호텔에서 거주했기에 피아노가 있는 여인의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평생 피아노를 칠 정도로 피아노를 사랑한 그는 초견으로 즉흥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를 피아니스트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를 주창한 철학자로서, 문학적 문제작 '구토'의 작가로서, 또 행동하는 좌파 지식 사상가로서, 노벨상 수상 거부자로서, 그리고 시몬 드 보브와르와의 아주 이상한 결혼 등으로 우선 알려져 있습니다. 아, 위에서 얘기한 딸은 수양딸입니다. 그의 이력서 어디에서도 피아노는 발견하기 힘듭니다.

피아니스트도 되고픈 그의 열망과는 별개로 그의 실력이 거기까지는 못 미쳐서 안 된 것일까요? 아님 피아니스트로서 평가받는 필수 코스인 콩쿠르나 무대 공연이 부족해서 일까요. 어쩌면 화려한 그의 이력서에서 보듯 너무 뛰어난 것이 많은 그였기에 잘난 것의 하이어라키에 밀려 그것까지 평가를 못 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다방면의 복잡한 일들을 다발로 풀어 나가는 그의 일상 속에서도 그만의 혼자 세계로 오면 그에게 1순위는 피아노였습니다. 때론 현업을 물리치고라서도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천재의 좌뇌로 처리해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우뇌에는 피아노 하나만 있어 보인 그였습니다.

사르트르에게 있어 피아노는 무엇이었을까요? 일종의 현실 도피처, 쉼터 등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또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 후에까지도 항상 주변에 여인들이 있었음에도 그가 꿈꾸는 터치 하고픈 어떤 여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튜브에 가면 그가 좋아했던 쇼팽의 녹턴을 직접 연주하는 흑백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도 한 여인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르트르(1905~1980)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르트르(1905~1980)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오줌 쌌다". 사르트르가 니체를 신봉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물을 끼얹으며 외친 말입니다. 위대한 선배 철학자 니체를 역설적으로 오마쥬한 것일까요? 사르트르가 그를 의식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철학과 사상은 다를지라도 난해한 그들이 공유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피아노였습니다. 니체도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라면 샤르트르에 앞서면 앞섰지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쇼팽을 애정했던 그는 게다가 작곡 능력까지 갖추어 무려 70여 곡에 달하는 가곡, 합창곡, 교향곡 등 여러 장르의 곡을 직접 썼습니다. 과연 세기의 천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되고팠고 듣고팠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뛰어난 것이 많은 그였음에도 작곡과 피아노로 모두 명성을 날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꽤나 부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음악 없는 삶은 오류다"라고 말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컸습니다. 외할아버지 집에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사르트르와는 달리 니체는 할머니 집에서 9세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았습니다. 2년 만에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정도로 그는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니체는 자신이 들었던 곡 중 좋다고 생각한 곡은 피아노로 편곡해 직접 연주할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했습니다. 비제의 카르멘 같은 대작 오페라도 좋아한 만큼 여러 번 직관하고 마침내 피아노 한 대로 편곡해 연주할 정도였습니다. 피아노를 좋아도 했지만 그만큼 작곡 능력과 연주 능력이 뛰어났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선가 말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있을 때에도 그는 하루에 2시간씩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그 연주가 하도 멋들어져 혹시 제정신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니체에게 있어 피아노는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그에겐 혼미한 그의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치유제이거나, 죽은 그의 신 대신 그를 구원해주는 구원자가 아니었을까요? 신봉했던 바그너와의 절교와 떨치지 못한 애증, 루 살로메와의 아주 이상한 동거와 이별에 이어지는 배신감 등을 잊게 하는.. 유튜브에 가면 사르트르보다 더 많은 니체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니체(1844~1900)
피아노를 연주하는 니체(1844~1900)

좀 전에 홀 중앙에 나와 연주한 피아노맨이 니체나 사르트르일 수도 있습니다. 생전에 피아노가 있는 무대가 절실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피아노를 곁에 두고 산 그들, 과연 진정한 피아노맨입니다. 사르트르와 니체의 피아노 이야기는 얼마 전 읽은 프랑수아 누델만의 '건반 위의 철학자'란 책(시간의흐름 출판 / 이미연 번역 / 아래 ※참조)을 통해 알게 되어 인용을 하였습니다. 비화처럼 놀라운 이야기, 초인인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경외감을 표합니다. 그러고 나서 지난주 요즘 저의 최애 TV 프로그램인 jtbc의 슈퍼밴드2에서 오래간만에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을 듣게 됩니다. 무명의 신선한 젊은 연주자들, 너무 잘했고 매우 좋았습니다. 집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청중이 예복을 차려입고 예의를 지키며 조용히 앉아 감상하지만 피아노맨의 연주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왁자지껄하며 술잔도 기울이고 때론 일어서서 환호성도 지릅니다. 피아노가 나왔던 근자의 영화 '그린북'에서는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가 연주하지만, '라라랜드'에서는 피아노맨인 라이언 고슬링이 연주합니다. 같은 피아노이지만 연주장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빌리 조엘의 히트곡 피아노맨은 자신의 옛 경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명 시절 첫 앨범을 실패하고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조릅니다. 거기에 노래까지 불러달라고 하지요. 이윽고 피아노맨의 연주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연주를 들으며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행복해하고, 현재의 슬픔과 고통을 피아노 소리에 흘려보냅니다. 일순 그들은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다 같이 떼창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 라~라~ 라~, 디~다~다~.. (Oh, la la la, di da da..). 축제와 같은 그곳, 환상의 라라랜드로 변했습니다. 피아노맨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Bravo! You're the Piano Man.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 음반, 1973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 음반, 1973

※ 그 역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철학 교수인 프랑수아 누델만의 책에는 사르트르와 니체 이외에도 롤랑 바르트라는 건반 위의 철학자가 한 명 더 나옵니다. 역시 난해한 철학자인 그도 매일 피아노를 쳤습니다.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모두 부정(父情)이 부재한 상태로 성장했습니다. 작가는 이들을 프로에 버금가는 아마추어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는 기량이 부족한 연주자가 아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연주할 뿐이다."

건반 위의 철학자, 시간의 흐름. 2021
건반 위의 철학자, 시간의 흐름. 2021

 

하광용은 대학 졸업 후 오리콤 이노션 등에서 광고인 한 길로만 가다가 50세가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사 이때 저때, 이곳 저곳, 이것 저것, 이사람 저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많다. 박학다식한 사람은 깊이가 약하다는 편견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을 존경하고 지향한다. 박학과 광고는 어찌보면 ‘넓다’라는 측면에서 동일성을 지닌다. 최근 ‘지명에서 이순으로의 기행’이라는 인문교양 에세이집을 출간한 그는 태평양인문학교실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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