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오,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카르멘위의 곡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보듯이 모두 오페라입니다. 오페라도 그냥 오페라가 아니라 매우 유명한 오페라입니다. 작곡자의 유명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는 작가 부일리의 원작을 토대로 독일인 베토벤이 평생 딱 하나 남긴 오페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의 질서를 과거로 돌리기 위해 소집된 빈 회의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는 보마르셰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인 로시니가 작곡한 오페라이며, 그 줄거리가 이어지는 2부 속편과도 같
드디어 닻은 올려지고 돛은 펴졌습니다. 콜럼버스의 배가 인도로 향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1492년 8월의 일입니다. 그는 세비야에서 과달키비르 강을 타고 내려가 바다와 만나는 항구 도시 카디스에서 기함인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멤버들과 합류해 대서양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모두가 동쪽으로 갈 때 유일하게 반대편인 서쪽으로 향한 것입니다. 이윽고 그와 그의 선단은 아무도 간 적 없는 대서양을 건너 그가 생각하는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70일간의 항해 끝에 이루어 낸 결과였습니다. 그 기간엔 아프리카 북서부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1992년은 세계 엑스포(만국박람회) 역사상 가장 바쁜 전무후무한 해였습니다. 무려 한 해에 3개의 엑스포가 열렸으니까요. 그것도 모두 유럽에서 열렸습니다. 스페인의 세비야, 이탈리아의 제노바, 그리고 네덜란드의 주테르메이르에서 열렸습니다. 이들 중 주테르메이르 엑스포는 성격이 다른 원예박람회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비야와 제노바는 똑같은 기치를 걸고 전 세계 모든 엑스포를 주관하는 국제박람회기구(BIE)에 유치를 신청했습니다. 두 도시 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서 엑스포를 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신청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그를 알아본 평생의 후원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구엘 백작입니다. 그가 건축 박람회에 전시된 기묘한 작품을 보고 반해 출품한 건축가를 수배했는데 그의 앞에 가우디가 나타난 것입니다. 마치 그때부터 400년 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소년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보고 그를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처럼 그 둘은 어느 날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로, 때론 건축가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그리고 구엘이라는 후원자의 이름도 가우디에
2024년 3월 중순, 카탈루냐와 안달루시아를 비롯해 지중해 연안에 흔치 않게 많은 양을 퍼부운 스페인의 비는 오랜 가뭄을 해갈하는 반가운 봄비라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스페인에 첫 발을 내디딘 3월의 그날도 그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방문지인 바르셀로나에 착륙하자마자 그 나라에서 가장 먼저 몸으로 저를 맞이해준 것은 비였습니다. 농부에겐 아니겠지만 여행객에게 비는 좋은 자연의 산물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그날 제가 맞은 비는 체온까지 떨어트려 몸을 으슬으슬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머릿속에서 그려오던 쨍한 태양의 나라
"사라져가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이리라."정확히 100페이지, 소설 (민음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는 1970년대 유랑극단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과 각 단원들의 개인사를 밀도 있게 다룬 한수산 작가의 소설로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최고 출세작입니다. 위의 문장은 우리나라가 수출 100억불, 1인당 국민소득 1000불을 목표로 대망의 1980년대를 향해 달려가던 1970년대 유랑극단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2024년 저는 첫 책으로
이 14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작가, 소설가, 베스트셀러 소설작가... 어떻게 불러지든 꽤나 유명세가 있는 작가들입니다. 이들 옆에 그들이 쓴 다수의 작품들까지 열거하면 꽤나 긴 줄을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문학의 장르 중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될 수 없는 것은 작가들마다의 개성과 결, 탐구하는 주제의식, 이데올로기,
조선시대 종묘제례(종묘대제) 기일이 되면 왕과 세자는 종묘에 입장하게 됩니다. 신령한 곳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을 것입니다. 경내로 들어서면 그들에겐 각자의 길이 따로 있었습니다. 지상의 왕이지만 종묘에서만은 지하의 왕인 선왕들에게 밀려 걷는 길이 달랐던 것입니다. 본채라 할 수 있는 정전(正殿)과 별채 격인 영녕전(永寧殿)으로 향하는 흙길 가운데로 돌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돌길 중앙은 볼록하게 솟아 있습니다. 신로라 불리는 그 길은 혼백이 된 선왕들이 걷는 길입니다. 제사를 받으러 그들도 와야 했으니까요. 왕과 세자는 그 볼록
지난 12월 친애하는 후배의 독창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소프라노 가수입니다. 그 음악회엔 여러 흥미 요소가 있었는데 일단 열린 장소가 미술관이었습니다. 초행길인 서울대학교 미술관이었습니다. 과연 그곳은 개관한 지 20년이 채 안 된 미술관답게 안팎으로 조형미가 가득한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런 공간적인 어드밴티지가 더해서인가 시간을 달려가는 그녀의 독창회는 그곳을 공감각적인 장소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연주한 아리아는 청아하고 낭랑하게 울려 퍼져 그 높은 천장까지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노래 사이사이 그 곡
지난 2023년 추석 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의 종착지는 수도 도쿄였습니다. 일본은 이런저런 일로 수차례 방문하였지만 도쿄는 1992년 당시 재직하던 광고회사 오리콤에서 연수로 간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그땐 우리나라와 일본이 모든 면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였던 시기였기에 당시 30여 명의 연수단인 입사 동기들은 저를 포함하여 마치 촌사람이 서울에 상경하듯 경이감을 안고 도쿄에 입성하였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1989년 처음으로 실시되었으니 거의 모든 멤
천년 가문어떤 한 가문이 천년 가까이 한 지역을 다스리거나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역이라 함은 도시도 해당되고 확장해서 국가로 넓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경우 총 역사가 2,200년을 넘겼지만 위의 조건엔 부합하지 않습니다. 395년 제국이 동서로 쪼개지고 수도는 그 이전 로마에서 오늘날 이스탄불로 천도해서도 그렇지만 공화정이든 제정이든 한 가문이 다스린 것은 천년의 역사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도시와 가문이 일치될 정도로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메디치 가문도 1743년 마지막 메디치
12월 8일 서울 영상 17도.한겨울임에도 더운 서울입니다. 서울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다 몇 발자국 못 걷고 돌아섰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고 입은 옷이었지만 문밖을 나서니 그 이상으로 더워 그 옷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 것입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좀 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섰습니다. 그날은 단순하게 따뜻한 날이 아니고 아예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버스 차창 밖으로 길 옆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화사함이 창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
제가 중학교 재학 시절 참고서의 왕은 시리즈였습니다. 파란색 표지에 교과서 중 사이즈가 컸던 지리부도나 미술책만한 그 참고서는 학년별 과목별로 모두 나와 학교 앞 서점 매대를 파랗게 도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참고서 표지엔 외국의 역사적인 한 인물이 당시 모든 대한민국 중학생들에게 무언가 명령하는 듯한 격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나를 따르라'는 동작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그는 책 표지 위에서 말을 타고 알프스를 정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가 그를 따르라고 한 말의 근거는 "내 사전엔 불가능이
중세 끝, 근세 시작역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이어받은 근세와 근대는 그 시대적 구분이 애매합니다. 그래서 크게 근대를 나누어 근세(early modern period)와 근대(late modern period)로 부르기도 합니다. 9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1291년 종결되고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바다를 통해 외부 세계로 나가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고 내부에선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기독교가 절대적이었던 천년 중세의 시대가 마감되고 새로운 질서인 근세가 시작된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지면서 그 도시는 이제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라틴어로 콘스탄티노폴리스라 불린 그 도시를 오스만어(튀르키예어)인 콘스탄티니예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 통일해서 쓰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은 영어명입니다. 그때부터 이스탄불로도 불렸지만 그 이름은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이 되기 전까지 공식 도시명으로는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이스탄불이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기 전 수도는 마르마라해 남부 아시아 지역에 있는 부르사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승자 술탄 메흐메
머리 위 하늘과 발 아래 바다가 누가 더 파란지 경쟁을 할 정도로 화창한 가을날 저는 페리에 올라 해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세기의 바람에 맞추어 하늘엔 이름 모를 새가 비행하고 바다엔 오색빛을 띤 요트들이 레이스를 하고 있어 그 배들이 밀어내는 물결과 함께 이국적인 느낌이 몰려왔습니다. 맞습니다. 이곳은 이국입니다.유럽인지 아시아인지 모를 어느 바다 위.. 그 와중에 날씨가 좋아 다행이란 생각도 불현듯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1주일 전 제가 그 바다를 반대 방향으로 건널 때엔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땐 나쁜 날씨로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일본을 여행했습니다. 현지에서 버스가 아니라 철길을 따라 이동하는 기차 여행이었습니다. 시작점은 규슈의 나가사키로 그곳에서 북상하며 혼슈 북단의 아키타까지 종단했습니다. 코로나 영향으로 아직까지 나가사키 공항이 닫혀 있어 후쿠오카 공항을 이용해 기차로 남쪽 나가사키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같은 길로 다시 북상하며 진행한 여행이었습니다. 아마 코로나 이전처럼 규슈 남쪽 끝인 가고시마까지 비행기가 운항을 했더라면 최남단인 그곳을 시작점으로 온전하게 규슈와 혼슈를 종단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시간이 되고 여유가
규슈의 나가사키는 17세기부터 일본에서 서양으로 통하는 관문이라 불렸습니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도쿄)에 무사정권인 막부를 열면서 서양의 배들은 나가사키의 인공섬인 데지마를 통해서만이 일본에 들어올 수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당시 막부는 그 항구의 사용권을 네덜란드와 독점으로 계약하여 서양의 문명과 물자는 네덜란드의 꼬리표를 달고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식자층에서 유행했던 서양의 학문이 난학(蘭學)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 시절 동양에 온 네덜란드인들은 과거 네덜란드가 독립국 지위를 얻기 전 거점 지역인 홀란드
킹덤 오브 헤븐 예루살렘영화 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사물인 은 중세 말 유럽의 중심을 레반트라 불린 동방으로 이동시켰던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예루살렘 왕국을 사수하려는 기독교 세력과 그것을 차지하려는 이슬람교 세력 간의 치고받는 공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유럽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의 부름으로 전 유럽이 결집해 2세기에 걸쳐 9차례의 원정을 감행했음에도 실패한 전쟁입니다. 은 이중 1차 원정 후 기독교도가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데 전투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타작마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마당엔 사과나무가 있어 매년 가을이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데 그 마당 정원을 가꾸는 주인이 스피노자를 좋아하여 그와 똑같은 심경으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 타작마당에 심어진 사과나무는 쉬지 않고 계속 아름드리 성장할 것입니다. 그 미래의 사과를 타작하기 위해 그 마당의 주인은 오늘도 스피노자처럼 열심히 사과나무를 가꾸고 있으니까요. 아참, 타작마당은 통섭형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곳입니다.위의 글은 제가 약 2년 전인 2021년 12월 이곳 뉴스버스에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