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성남은 왜 영화 ‘아수라’의 안남시가 됐을까
지역 자생 조직과 지역 정치인의 공생관계 형성 '경호경비연합회' 회장이 지역정치인에게 조폭 소개
“형 여기 오면 안 된다니까, 형이랑 나랑 적군이라고 적군”
“시의회가 반대해버리면 공사가 안 된다니까요”
“밀당을 해야 한다니까요, 밀당을. 진짜 정치를 모르네”
영화 아수라에서 나오는 한 장면의 대사다. 시장과 시의원들이 재개발을 두고 논의하는 자리 끝에 시장의 정치자금을 대주는 조직폭력배가 나타난다. 시장이 외관상 적군으로 보여야 하는데, 왜 왔느냐는 식으로 타박하자 조직폭력배는 시의회가 반대하면 공사가 무산될 수 있다고 하소연하고, 시장은 시의회와 밀당 중이라고 한다. 비리 시장과 부패 경찰, 조직폭력배 등이 이권을 놓고 서로 한데 엮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은수미 성남시장과 부패 경찰, 조직폭력배가 얽혀 성남시에서 일어난 일들은 영화 ‘아수라’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직폭력배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이자 건실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 이모씨가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지원하고, 수사를 맡은 경찰은 은 시장에게 수사정보를 빼주는 대가로 이권과 인사를 청탁해 성사시킨다. 또 수사를 맡은 경찰 역시 은 시장에게 불법자금을 댄 조직폭력배 사업가와 오랜 친분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재명 대선후보와 은수미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진출하던 시절, 이들을 도왔던 선거운동 캠프 및 자원봉사 조직원들은 성남시와 산하기관에 진출하거나 부정채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영화 아수라의 ‘안남시’에 비유될 정도로 성남시에서 불거진 이 같은 구조적 비리의 근본 원인은 뭘까? 선거 승리를 위해 조직이 필요한 정치인, 그리고 당선된 정치인을 통해 이권과 일자리를 보장받는 선거 지원조직간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가 구조적 비리를 낳고 있는 것이다.
1. 선거를 이용해 세력화한 지역 자생조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10년 성남시장에 진출할 때나 은수미 현 성남시장이 2018년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성남의 자생적 지역 조직은 두 사람을 당선시키는 선거운동 지원 역할을 했다.
은 시장의 당선을 도왔던 자원봉사조직은 ‘해피바이러스’였다. 해피바이러스의 운영자인 김모씨는 2018년 선거 때 은수미 캠프의 종합상황실 부실장으로 활동하면서 청년 자원봉사자 관리를 총괄했다. 은수미 캠프에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은 의무적으로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 텔레그램 대화방이 ‘해피바이러스’ 조직의 소통 플랫폼이었다.
이 단체 대화방에서는 주로 은 시장의 일정에 맞춰 인원을 동원하는 지시가 내려왔다. 은수미 캠프에서 활동한 관계자는 “은수미 캠프에 들어갔더니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초대됐다”며 “김씨의 지시를 받아 활동했고, 주로 은수미 후보의 선거운동에 머릿수를 채우라는 지시였다”고 말했다. 이 방 참여자는 자원봉사자로 통했지만, 사실상 비공식 선거조직원들이었다.
당시 이 방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이 때문에 텔레그램 대화방이 ‘폭파’되고 개설되는 과정이 수시로 반복됐다”고 말했다.
이후 은 시장이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엔 운영자 김씨는 성남시장 비서실의 비서가 됐고, 해피바이러스 구성원이나 해피바이러스에서 선거운동을 한 자원봉사자들 20여명도 성남시 공무직, 임기제 공무원 등이 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공개채용 절차를 거쳤지만, 사전 내정 형식을 통한 부정 채용으로 드러났다.
해피바이러스가 성남지역 선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16년 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다. 해피바이러스는 2016년 10월 무렵부터 2017년 4월까지 진행된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대선후보(당시 성남시장)를 지지했다. 이 후보가 전국 순회 강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등을 할 때 해피바이러스는 이 후보와 함께 전국을 돌며 지지 활동을 벌였다.
해피바이러스는 지지 활동뿐만 아니라 경호도 맡았다. 2017년 이 후보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에 따르면, 이 후보는 해피바이러스 회원이 운영하는 경호업체 D사에 2017년 2월 21일부터 2017년 4월 21일까지 5,800여만원의 경호비를 지급했다.
이번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이 후보 경호 역시 해피바이러스 출신 회원들이 맡았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이 후보 경호를 맡았던 해피바이러스 회원들은 당시 D사 소속이었다가 이번엔 W사 소속으로 바꿨다. D사에서 W사로 회사 이름과 대표자는 바뀌었는데, 실제 이 후보 경호 수행은 같은 인물들이 하고 있었다. W사는 지난 7월 6일 설립됐다. 10월 6일까지 4개월간 이 후보 측이 W사에 지출한 경호비는 1억6,000여만원이다.
해피바이러스 조직원들이 은수미 시장의 선거운동도 지원하고, 이재명 후보의 경호까지 맡아온 것이다.
2. 철거‧경호 용역단체 ‘경호경비연합회’가 자생조직의 뿌리
이 같은 성남 지역 정치인과 선거운동 지원조직의 공생 관계는 10여년 전부터 형성됐다. 김씨가 운영한 해피바이러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운 ‘성남 경호경비연합회’가 뿌리다.
2008년 4월 설립된 성남지역 경비, 철거 용역업자들의 모임 경호경비연합회는 선거에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언제든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탁월한 조직동원력은 지역 정치인 입장에선 탐낼 만한 지점이었다. 이 후보의 2017, 2021년 대선 경선 경호를 맡은 D사와 W사 대표와 직원들도 경호경비연합회 출신들이다.
경호경비연합회 회장이었던 특별경호단 단장 이모씨는 민주당 성남지역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고 취업 자리를 알선한 ‘원조 브로커’다. 이씨는 특별경호단이라는 무허가 경호 경비업체를 운영하다 2008년 4월 성남지역 철거 경호 경비 청소 등 용역업체와 단체를 규합해 경호경비연합회를 만들었다.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는 2010년 당시 성남시장 선거에 나선 이재명 후보의 수행을 총괄했다. 해피바이러스 운영자인 김씨도 당시 이씨의 직원으로 이 후보의 수행을 직접 맡았다. 역시 이씨의 직원으로 해피바이라스 운영자 김씨의 친형인 또 다른 김모씨는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수행을 맡았다.
이 후보뿐만이 아니다. 이씨는 2011년 치러진 민주당의 성남 수정구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나온 당시 민주당 청년위원장 이상호(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씨의 수행도 맡았다. 당시 김씨 형제는 물론 2010년 선거에서 이 후보의 수행을 했던 박모씨, 김혜경씨를 수행했던 최모씨, 새롭게 합류한 나모씨 등 이씨의 특별경호단 직원들이 수행원으로 활동했다.
선거 후 형 김씨는 2012년 6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수행비서가 된 뒤 현재까지 이 후보의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나씨는 2012년 8월, 최씨는 2013년 2월, 박씨는 2014년 8월 각각 성남시 맑은물관리사업소에 취업했다. 동생 김씨는 2013년부터 성남시 지원을 받는 중원구 노인회 관리부장으로 일하다가, 은수미 시장이 취임한 뒤 성남시장 비서실에 들어갔다.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는 2010년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직후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사단법인 ‘새싹지킴이’라는 단체의 단장으로도 활동했다. 이 후보도 이 단체가 행사를 할 때마다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냈고, 2011년에는 성남시가 두 차례에 걸쳐 사회단체보조금 4,29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3. 성남 정치인 ‘조폭연루설’ 진원지도 ‘경호경비연합회’
경호경비연합회 단장 이모씨가 '원조 브로커'
이재명 후보, 은수미 시장 등이 성남지역 폭력조직 ‘국제마피아파’와 연관됐다는 의혹의 출발점도 경호경비연합회 회장이었던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다.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 후보에게, 그리고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자 코마트레이드 대표인 또 다른 이모씨를 소개한 사람도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였다.
성남시는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자 코마트레이드 대표인 이씨와 지난 2015년 10월 성남시와 ‘복지시설 환경개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이 후보는 “이△△ 대표님, 100만 성남시민을 대표해 감사드린다”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가 2018년 조폭 연루설에 휩싸이기도했다. 2016년 8월 성남시 채무탕감 캠페인에 코마트레이드가 800만원을 후원하고, 코마트레이드 대표 이씨는 이 후보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코마트레이드 전직 임원은 “코마트레이드 대표 이씨를 이재명 후보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라며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는 2015년 당시 코마트레이드를 홍보하려는 코마트레이드 대표 이씨 측의 부탁을 받고 성남시와 업무협약을 주선했다. 이 때 이 후보가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자 코마트레이드 대표인 이씨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장에는 은 시장이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를 통해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이자 코마트레이드 대표인 이씨를 소개받은 경위가 드러나 있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은 시장)은 제19대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 12월 30일경 피고인의 사무실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이OO(특별경호단 단장)으로부터 성남시에서 중국 샤오미 한국총판 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코마트레이드 대표인 이△△를 ‘의원님을 지지하는 동생들입니다’라고 소개받았다”고 적혀있다.
4. '경호경비연합회'는 용역깡패들간 분쟁 대신 타협의 산물
경호경비연합회와 같은 조직이 탄생해 정치인의 선거를 돕고 이권과 일자리를 챙기는 악순환은 성남이라는 도시의 형성과 근본적인 연관이 있다.
지난 1966년 서울시는 급격한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계천 일대 무허가 판자촌 5만채 정도를 경기도 광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다. 1969년 1월 8일 밤 서울시는 일방적인 철거 통보와 함께 기습 철거를 감행했고, 당시 광주 대단지로 불리던 벌판에 철거민들이 강제 이주됐다.
1971년 8월경 거주 인구만 15만명이 넘었고, 1973년 7월 1일 광주 대단지는 성남시로 승격됐다. 새로운 도시의 탄생은 곧 개발로 이어졌고, 과거 소위 ‘용역깡패’로 불렸던 경비·철거 용역업자들이 득세했다. 도시의 형성은 자생적 시장 난립으로도 이어졌다. 1970년대 성남시에는 여러 시장이 세워졌다. 모란시장, 중앙시장, 성호시장은 여전히 성남시 3대 재래시장으로 꼽힌다. 이러한 환경은 상인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기는 폭력조직이 만들어지기 좋은 구조였다.
지난 2003년 정부가 판교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성남의 용역업자들은 크고 작은 분쟁을 겪었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이권을 뺏고 뺏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수년을 다투던 성남의 용역업자들은 갈등이 아닌 타협을 선택했고, 이렇게 탄생한 조직이 바로 ‘성남시 경호경비연합회’다.
그리고 이들은 겉모습을 바꿔가며 성남 지역 정치인의 선거운동 지원조직으로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했다. 성남시 경호경비연합회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연합회는 일감을 두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잘 나눠 먹자는 뜻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선거운동 조직이 될 거라고는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