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미인대회에서 생긴 일…'잘생긴 여자'
<잘생긴 여자>는 한국 최초의 미인선발대회를 소재로 한, 연극 실황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이다. 올해 14회를 맞이한 경남독립영화제의 개막작이다. 비록 소재는 과거 사실에 기초하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영화다. 특히 자세한 정보의 부재에도,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관객의 공감을 이끈 이수지 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 독립영화 발전 없이는 한국 영화의 지속적 성장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영화에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잘생긴 여자>는 미인대회 신청자가 없자, 주최측이 대회 운영을 위해 동네 요정과 단골 술집 마담 및 미용실 원장까지 동원해 대회를 치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최초 미인대회인 '여성경염대회'가 소재
「부산을 읽는 키워드 기네스 125선」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미인선발대회가 1953년 5월에 부산에서 열렸다. 대회의 공식 명칭은 ‘제1회 여성경염대회(女性競艶大會)’이다. 경염(競艶)이란 예쁨을 서로 다툰다는 뜻이다(네이버 한자 사전). 부산에서 창간된 중앙일보(현재 중앙일보 아님)가 어두운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 대회를 개최하였다. 본선 진출자는 10명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미인 심사 방법은 예선과 본선 심사로 이루어졌는데, 예선 심사의 조건은 7가지였다.미혼 여성일 것, 키는 다섯 자(151.515cm) 정도일 것, 몸매는 키에 맞춰 깡마르거나 뚱뚱하지 않을 것, 얼굴의 형태는 둥그스름하고 복이 있다고 느껴질 것, 옷을 입었을 때 등이 반듯하고 걸음을 걸었을 때 다리가 휘어지지 않을 것, 웃을 때 이가 반듯하고 하얗게 반짝거릴 것과 전체적인 몸의 균형은 장래 현모양처로서 품위가 있을 것이었다. 객관적인 심사기준으로 보긴 어렵지만, 그 시대 미의 기준을 엿볼 수 있다.
시대 관통하는 '어머니'의 역할과 굴레
<잘생긴 여자>에서 하이라이트는 참가자 개인들의 솔직한 고백 장면이었다. 6명 모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인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대회 참가를 통해 엄마로, 아내로 때로는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오던 기혼자들은 지금껏 잊고 살았던 자신과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반면에 미혼자들은 자신의 젊음, 건강함과 긍정성을 앞세우며 자신이 미인으로 뽑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결과를 발표하기도 전에 참가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리를 떠나게 된다.
최초의 미인선발대회가 개최된 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부여한 어머니 역할에 대한 규범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라는 호칭이 부여되는 순간,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양보하기를 요구받는 것 같다. 물론 시대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잘생긴 여자>는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1950년대의 배경이 무대에 잘 구현되었고, 지금은 사라진 대한늬우스까지 들을 수 반갑기도했다. 배우들의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잘생긴 여자>가 실제 연극 상황을 촬영해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제작비와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최선의 선택이었고, 독립영화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한, 개막작을 보는 동안 소리가 너무 커서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영화 상영 전 사전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독립영화, 영화발전의 밑거름이지만 관객 감소로 위기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4관왕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삼성호암상(예술상) 상금 3억원을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 기부했다. 이 사실은 한국 영화에 있어 독립영화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내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독립영화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신선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 결과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이러한 독립영화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영화진흥위)’을 보면, 2020년에는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부진이 뚜렷했다. 2014년에 전체 영화 관객 수의 2.6%를 차지하던 한국 독립·예술영화 관객 수가 2018년에는 0.5%로 떨어지면서 이미 경종을 울렸다. 한국 독립·예술영화 관객 수는 2014년 약 561만명에서 2020년 75만 7천명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참조). 이렇게 관객 수 감소 폭이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상영 기회 자체 감소와 1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한국 독립·예술영화가 한 편뿐이라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언급되었다. 정부의 지원과 관객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잘생긴 여자>의 여성들은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자신을 숨기거나, 혹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다가 우연히 참가한 미인대회에서 자신의 열정과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은 잠재된 자아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임을 새삼 깨닫는다. 끝으로 이수지 감독과 영화사 소금이 제작한 다른 장편영화를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