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붕괴' 평가 기업은행, 차기 행장 ‘외부 출신 기용론’ 급부상

‘부행장 출신 회전문 인사 고착화’…온정주의, 끼리끼리 문화 '내부 통제 붕괴' 김형일 전무 등 내부 3인, "책임론에 얽히거나 쇄신 적임자로 보기 힘들어" 관료 출신 또는 외부 민간 인사 발탁 가능성...도규상 전 금융위 부위원장 물망

2025-11-24     최기수 기자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사진=연합뉴스)


내년 1월 초 임기가 끝나는 김성태 IBK기업은행장 후임에 외부 인사 기용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내에선 최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장과 수출입은행장에 잇따라 내부 인사가 발탁되자 차기 행장에 내부 인사가 기용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온다. 최근 15년 동안 5명의 행장 중 4명(23대 조준희, 24대 권선주, 25대 김도진, 27대 김성태)이 내부 출신인 점도 '내부 승계론'의 배경이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기업은행이 국책은행 가운데 내부통제 등 구조적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평가 탓이다. 기업은행의 누적된 내부통제 실패와 온정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쇄신 필요성 등으로 외부 인사 기용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내부통제 붕괴’와 이에 대한 책임론이 차기 기업은행장 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은 올해 1월 자체 감사 결과 전·현직 직원과 가족 등이 연루된 부당대출 규모를 240억 원으로 신고했으나 금융감독원 조사에서는 그 규모가 3배 이상인 882억 원으로 파악됐다. 또 조사 과정에서 직원들이 메신저·문서 271건을 삭제하는 조직적 은폐 정황까지 드러났다. 뒤이어 6월에도 40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추가로 적발됐다. 

이런 내부통제 실패 문제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질타의 대상이 됐다. 금융업계에선 “기업은행의 내부통제가 이미 구조적으로 무너졌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징계자에 대한 부적절한 인사 관리 등 온정적인 조직문화도 ‘내부 승계’보다 ‘외부 기용’에 힘을 보태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성 비위 등으로 징계받은 직원에게 성과평가에서 1등급 등 높은 등급을 부여하거나 고액의 성과금을 지급하는 관행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 음주운전·성비위·금품수수 등으로 정직·감봉을 받은 직원 168명에게까지 11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기강이 붕괴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최근 내부 출신 은행장이 다수였다는 점이 온정적인 조직문화를 강화했고, 징계자 성과금 지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의 ‘부행장-계열사 사장’ 순환 구조도 ‘외부 인사 기용론’에 명분을 주는 대목이다. 기업은행은 최근 10여년간 주요 계열사 사장·부사장 자리 대부분을 부행장 출신으로 채워왔다. 문창환 IBK캐피탈 사장, 전규백 IBK자산운용 사장, 전병성 IBK저축은행 사장, 서정학 IBK투자증권 사장, 최광진 IBK투자증권 부사장 등이 부행장 출신이다. 특히, 서정학 사장은 IBK저축은행 사장을 지낸 뒤 다시 계열사 수장이 됐고, 현 김성태 은행장 역시 IBK캐피탈 사장, 기업은행 전무, 은행장 코스를 밟았다.

기업은행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 CEO는 사실상 기업은행 부행장들의 자리였다”며 “기업은행의 순혈주의, 끼리끼리, 온정주의 문화가 고착돼 내부 자정 기능을 마비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행장 출신의 계열사 낙하산 및 회전문 인사가 제 식구를 감싸는 문화와 반복된 내부통제 실패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차기 은행장 물망에 오른 내부 인사들이 "‘내부통제 붕괴’에 책임이 있거나 기업은행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가 아니다"라는 부정적 평가가 나온다. 거론되는 내부 후보는 김형일 IBK기업은행 전무, 서정학 IBK투자증권 사장, 양춘근 전 IBK연금보험 사장 등 3명이다. 

김형일 전무는 1992년 입행해 전략기획부장, 글로벌사업부장 등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전략통이다. 하지만 연속 발생한 부당대출 사태 당시 서열 2위로서 내부 통제라인에 있었던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평가다.  기업은행 부행장 출신인 서정학 사장은 복합금융 경험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재임 중 증권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공개(IPO) 실적이 부진한데다 직원들의 성비위 사건 등의 리스크가 부담이다. 양춘근 전 사장은 현장 경험이 강점이지만 조직이 요구하는 ‘개혁형 리더’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만큼은 내부 후보 누구를 올려도 '책임 논란'을 피하기 어렵고, 기업은행을 새롭게 이끌어나갈 능력과 자질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기업은행의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 내부 출신 후보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더해지면서 외부 인사인 도규상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도 전 부위원장은 금융위·금감원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금융정책 전문가로 조직 안정과 개혁 이미지를 동시에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누적된 내부 통제 실패로 신뢰가 흔들린 기업은행을 ‘정상화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한 경력도 힘을 싣는 요인이다. 

민간 금융권 출신 인사들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도 전 부위원장 등 관료 이외에도 외부의 민간 인사가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깜짝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번 기업은행장 인선은 정부가 누적된 내부통제 실패에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윤곽은 내달 중순 이후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