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외압 정점’ 윤석열 등 12명 기소…채상병 순직 855일만
수사 착수 142일 만에 피의자 12명 불구속 기소 윤석열·이종섭 등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적용 “수사권 침해 넘어 조직적 보복…중대 권력 범죄”
순직해병(故채수근 상병) 관련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수사 개시 142일 만인 21일 윤석열 등 12명을 기소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이 발생한 2023년 7월 19일로부터는 855일 지난 날이다.
특검팀은 이날 언론 브리핑을 열고 “순직해병 사망 사건 관련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변경하기 위해 외압을 행사한 윤석열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 등 관계자 12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오늘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외압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물들에는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신범철 국방부 전 차관, 전하규 전 대변인, 허태근 전 정책실장,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동혁 전 검찰단장,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유균혜 전 기획관리관, 이모 조직총괄담당관 등이 포함됐다.
윤석열은 채상병 순직 이후 해당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뒤집기 위해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특검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용서류무효죄를 적용했다.
특검의 조사 내용에 따르면 채상병이 사망한 직후 해병대 수사단은 당일부터 신속한 수사에 착수해 열흘 간 80여명을 조사하고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등을 혐의자로 판단했다.
이 같은 수사 결과는 당시 해병대 사령관, 해군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순차적으로 보고됐고 이견 없이 결제가 이뤄졌으며 언론 발표 및 국회 설명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2023년 7월 31일 이른바 ‘VIP 격노설’이라고 불린 사건이 발생하며 대통령실 및 국방부 고위직들의 조직적인 직권남용 범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특검팀의 판단이다.
당시 국가 안보실 회의에서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석열이 격노하며 ‘사단장까지 처벌하는 것’을 강하게 질책했고, 이 전 국방부장관이 수사 결과를 변경하기 위해 수사 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위법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일선에서는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이 해병대 수사단에게, 박진희 군사보좌관이 해병대 사령관에게 각각 연락해 수사 결과를 변경하도록 압박했다.
하지만 해병대 수사단이 상부의 위법한 지시에 따르지 않고 채상병 사건 기록을 경찰에 보내자, 윤석열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사건 기록의 회수를 국방부에 지시했다.
또 신범철 전 국방부차관은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과 항명 수사 등을 지시했고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보직해임을 이행했다.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은 박정훈 대령을 집단 항명 수괴죄로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사건은 국방부장관 직속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관됐다. 조사본부 역시 재조사 결과 임성근 전 사단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냈지만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임성근 사단장으로 혐의자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수사 결과를 변경시켰다.
특검팀은 이 같은 혐의자들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특검팀은 박정훈 대령에 대한 일련의 보복 조치들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검찰단의 두 차례 체포영장 청구와 한 차례 구속 영장 청구 과정에서 직권남용과 감금,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범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특검팀은 군 검찰이 편파적 수사와 증거 제출 등을 통해 공소권을 남용,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 및 상관 명예 훼손죄로 기소·항소한 것으로 봤다. 이에 특검팀은 억울한 누명을 쓴 박정훈 대령의 조속한 신분 회복을 위해 항소를 취하했다는 설명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이 사건은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권한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직무를 수행했던 해병대 수사단에게 국방부가 조직적인 보복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권력형 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검은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수사 외압 행위를 엄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이 사건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특검팀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이 수사에 성실히 임해 조력한 점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또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됐지만 혐의가 확인되지 않아 불기소 결정했다.